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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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 남성 육아휴직 신청 급증...여성 앞질러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지난해 역사상 처음으로 남성 육아휴직자가 여성을 앞질렀다. 

 

코레일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코레일의 총 육아휴직자 수는 707명으로, 이 중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50.8%를 달성하며 여성을 앞질렀다. 이는 우리나라 공공기관 전체 남성 육아휴직 비율(23.5%)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과거 5년간 코레일의 남성 육아휴직자 수는 꾸준히 증가해 왔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남성 육아휴직자 비율은 점차 상승하여, 지난해에는 50.8%에 이르렀다. 이 중에서도 근속연수 10년 미만의 저연차 직원들의 육아휴직 비율이 높았으며, 특히 지난해에는 약 70%가 이에 해당하는 남성 직원들이었다.

 

연령별로는 40대 남성 비율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큰 폭으로 감소했으며, 이는 30대 남성의 비율이 상승하는 추세와 일치한다.

 

또한 코레일은 '3+3 육아휴직제' 시행으로 남성 직원의 육아휴직 신청이 많이 증가했는데, 이는 생후 12개월 내의 자녀를 돌보기 위해 부모가 동시에 또는 순차적으로 육아휴직을 할 경우 첫 3개월간 통상임금의 100%를 보장하는 제도다.

 

코레일 관계자는 "내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일·가정 양립 노력' 항목이 별도 지표로 평가될 예정이며, 출산 장려 및 육아 부담 경감을 위한 제도와 조직문화를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은과 도자기의 충돌…운암산 가마터의 비극

규모의 분청사기 가마가 밀집해 있었으며, 이는 곧 일본군에게 거부할 수 없는 표적이 되었다. 흔히 임진왜란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개인적 야욕이나 내부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방편으로 이해하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당시 국제 경제의 패권을 쥐고 있던 '은'과 '도자기'를 둘러싼 거대한 충돌이 자리 잡고 있었다.당시 동북아시아의 경제 질서는 명나라를 중심으로 한 조공 무역 체제가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16세기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약탈하듯 캐낸 은은 유럽을 거쳐 명나라로 흘러 들어갔다. 명나라의 비단과 도자기는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최고의 사치품이었고, 은을 기축통화로 사용하던 명나라는 전 세계의 은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 역할을 했다. 세금조차 은으로 납부하게 했던 명나라의 경제 체제는 주변국들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이러한 명 중심의 독점적 무역 구도에 균열을 낸 것은 일본의 비약적인 은 생산량 증가였다. 1526년 일본 시네마현의 이와미 은광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일본은 단숨에 전 세계 은 생산량의 약 30%를 차지하는 은 강국으로 부상했다. 연간 20만kg에 달하는 은을 손에 쥔 일본은 이를 바탕으로 명나라 중심의 경제 질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명나라가 해금 정책을 통해 직접 교역을 통제하자, 일본은 무역로를 확보하고 경제적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한 돌파구로 전쟁을 선택했다.이 거대한 경제 전쟁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었던 것이 바로 도자기다. 당시 도자기는 단순한 그릇을 넘어 오늘날의 반도체와 같은 고부가가치 수출 품목이었다. 일본은 은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고품질의 도자기로 바꿀 기술력이 부족했다. 반면 조선은 고흥 운암산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세계 최고 수준의 분청사기 제작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일본이 임진왜란을 통해 수많은 도공을 납치하고 가마터를 파괴한 것은 경제적 부를 창출할 '기술 자본'을 확보하려는 치밀한 계산이었다.고흥 운암산 가마터는 이러한 비극적 역사의 산증인이다. 왜군은 남해안과 인접한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운암산의 분청사기 생산 기반을 철저히 유린했다. 이곳에서 생산되던 분청사기는 조선 특유의 소박하면서도 역동적인 미감을 갖추고 있어 일본 다도인들 사이에서 보물 대접을 받았다. 전쟁의 이면에 숨겨진 은과 도자기의 상관관계를 이해할 때, 고흥의 가마터가 왜 그토록 처참하게 파괴되고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오늘날 운암산 가마터에 대한 재조명은 임진왜란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한층 넓혀준다. 단순한 침략과 방어의 역사를 넘어,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국제 통화인 은을 매개로 충돌했던 거대한 경제사적 사건으로 전쟁을 재해석하게 한다. 고흥군은 현재 산재한 가마터 유적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그 가치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잊혔던 분청사기의 고향 운암산은 이제 400여 년 전 국제 정세의 파고를 증언하는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거듭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