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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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무용 끝판왕' 바디콘서트, 콜드플레이까지 사로잡은 이유

 예술 분야 중에서도 특히 대중화가 어려운 현대무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온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특별한 무대를 선보였다. 바로 그들의 대표작 ‘바디콘서트’ 15주년 기념 공연이다. 현대무용계에서 무용단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인데, 초연 이후 재연과 삼연을 이어가며 15년간 무대를 지속할 수 있었다는 점은 기적 같은 성과다. 보통 주말을 낀 짧은 공연 일정이 일반적인데, 이번 공연은 1000석 규모의 극장에서 15일 동안 이어지는 과감한 도전으로 더욱 눈길을 끌었다. 공연 현장은 무용수들의 열정과 강렬한 에너지가 객석에 그대로 전해지는 뜨거운 분위기였다. 이 작품이 한국 현대무용사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와 함께, 이번 무대 역시 오랫동안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2010년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초연된 ‘바디콘서트’는 ‘일반인을 위한 현대무용 입문서’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공연은 다프트 펑크의 ‘슈퍼히어로’로 시작해 MC해머, 비욘세, 헨델 등 다양한 시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11곡의 음악에 맞춰 춤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생동감 넘치는 안무와 혁신적인 움직임을 통해 춤의 본질을 탐구하는 이 작품은 초연 당시 ‘평론가가 뽑은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이후 2012년 국제현대무용제(모다페)에 공식 초청되며 국내 주요 무용 페스티벌에서도 주목받았고, 이제는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지난달 28일 열린 공연에서도 ‘바디콘서트’만의 다채로운 매력이 돋보였다. 초반의 흥겨운 리듬에서 출발한 춤은 점점 강렬해지며 극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다. 특히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에 맞춰 펼쳐진 장면에서는 무용수들이 수년간 쌓아온 기량의 극한을 보여주며 객석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순수한 감정의 고양을 통해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마지막에는 무용수가 무대 바닥을 구르고 기다 일어서는 장면이 이어지며 앰비규어스 특유의 강렬한 춤 세계를 보여줬다.

 

앰비규어스를 이끄는 김보람 예술감독은 무용계에서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가수 엄정화 등의 백댄서로 활동하다가 무용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TV에서 가수 현진영의 춤을 보고 무용에 매료되었고, 고등학교 시절 서울로 올라와 방송댄스팀에서 활동했다. 이후 여러 유명 가수들의 백댄서로 활동하다가 서울예대에서 본격적으로 무용을 공부한 후 2008년 앰비규어스를 창단했다. 창단 이듬해 CJ영페스티벌에서 ‘에브리바디 시즌Ⅲ 볼레로’로 최우수작품상을 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2010년 ‘바디콘서트’를 발표하며 현대무용계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바디콘서트’가 탄생한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연습실이 없어 공사장과 잠수교, 여의나루를 전전하며 연습을 이어갔다. 비 오는 날에는 굴다리 밑에서, 새벽에는 잠수교에서 해 뜨는 모습을 보며 연습을 끝마쳤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15년간 사랑받으며 현대무용의 대중화를 이끄는 대표작이 되었다.

 

이번 15주년 기념 공연은 기업 협찬이나 공적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진행되었으며, 무용 공연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큰 극장에서 열렸다. 티켓 가격도 최고 10만 원으로 책정되었지만, 관객들은 그 이상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었다. 김보람 예술감독은 언론 시연회에서 “무모한 도전이지만 더 큰 가능성을 생각했다”며 “많은 사람들이 현대무용을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는 현대무용의 한계를 넘어 ‘K-무용’의 대표주자로 자리 잡았다. 2020년 한국관광공사의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캠페인으로 세계적으로 주목받았고, 2021년에는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며 글로벌 인지도를 더욱 높였다. 김보람 감독은 유럽의 여러 단체와 협업을 진행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 오리야크 거리예술축제에서 전통음악과 현대적 비트를 결합한 ‘피버’를 선보였으며, 올해도 ‘바디콘서트’ 공연이 끝난 후 4월까지 프랑스와 스위스 5개 도시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국제적으로는 인정받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현대무용을 접하는 관객이 많지 않다. 김보람 감독은 “99.9%의 사람들은 평생 현대무용을 한 번도 보지 않는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현대무용을 경험하고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바디콘서트는 ‘좋다, 나쁘다’를 떠나 한 인간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극한의 표현을 목격할 수 있는 작품”이라며 “누구나 와서 그 명장면을 보고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3월 9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공연은 현대무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도전과 열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판소리와 포크의 만남…구례 가을밤 울린 ‘시인의 마을’

추임새와 박수가 이어졌다. 전통 판소리의 깊은 울림에 이어 익숙한 포크음악이 흐르자 관객들은 노래와 함께 호흡하며 구례의 가을밤을 즐겼다.지난 17일 밤 열린 구례 동편제소리축제에서는 지역 명창들의 판소리와 가수 정태춘·박은옥 부부의 공연이 한자리에서 펼쳐졌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전통 소리와 한국 대중음악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노래가 어우러지며 관객들에게 특별한 무대를 선사했다.이날 구례 명창들의 공연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끈 무대는 박정선 명창의 ‘적벽가’였다. 박 명창은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가 다급하게 달아나는 장면을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 힘 있는 소리로 풀어냈다. 긴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대목에서는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고, 관객들은 추임새와 박수로 소리꾼의 무대에 호응했다. 판소리 특유의 해학과 긴장감이 무대를 채우면서 관객들은 이야기 속 장면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몰입감을 느꼈다. 소리꾼의 목소리와 몸짓에 관객의 반응이 더해지며 공연은 무대 위에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객석과 함께 만들어지는 경험으로 이어졌다.공연의 분위기는 정태춘·박은옥 부부가 무대에 오르면서 또 한 번 달라졌다. 오랜 시간 삶과 시대의 이야기를 노래해 온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자 객석의 시선이 집중됐다. 대표곡 가운데 하나인 ‘시인의 마을’의 연주가 시작되자 관객석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노래의 첫 소절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반응에는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노래에 대한 반가움이 담겼다. 앞선 판소리 무대에서 추임새로 공연에 참여했던 관객들은 이번에는 익숙한 선율을 따라가며 노래가 전하는 감정에 집중했다. 한 곡의 노래가 오랜 세월 쌓인 기억을 불러내고, 무대와 객석 사이에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순간이었다.정태춘·박은옥은 ‘북한강에서’ 등 자신들의 노래를 들려주며 공연의 여운을 이어갔다. 화려한 무대 연출 속에서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결국 노래에 담긴 이야기와 이를 전하는 목소리였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다시 듣고 싶은 노래가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지자 객석은 박수로 화답했다.판소리와 포크음악은 표현 방식과 음악적 형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사람들의 삶과 시대를 이야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판소리는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을 소리와 이야기로 전해왔다. 정태춘·박은옥의 노래 역시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사회의 모습을 담아내며 청중과 소통해 왔다.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이 한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었던 이유다.구례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품은 지역으로, 동편제 판소리 문화가 이어져 온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지역 명창들의 전통 소리를 감상한 뒤 정태춘·박은옥의 노래를 만나는 구성은 이번 축제의 특별한 장면으로 남았다. 지역의 전통문화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가 한자리에서 만났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첨단 조명과 대형 LED 화면이 설치된 무대 위에서는 오래된 판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어 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을 담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전통과 현대를 구분하는 경계보다 서로 다른 음악이 관객에게 어떤 감동을 전하는지가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 무대였다.전통문화는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서만 의미를 찾는 것은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나고 새로운 장르와 어우러질 때, 전통은 또 다른 방식으로 생명력을 얻는다. 판소리의 추임새와 대중가요를 향한 박수가 같은 밤에 이어진 것은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구례 동편제소리축제의 가을밤은 그렇게 전통과 현대의 음악이 함께 만드는 공연장으로 변했다. 명창의 소리에 관객들은 “얼씨구”와 “좋다”를 외쳤고, ‘시인의 마을’이 시작되자 큰 박수로 화답했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장르에서 출발한 음악은 사람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통해 하나로 이어졌고, 관객들은 그 울림을 함께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