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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희, '굿데이' 치트기로 등극..역대급 케미로 매력 폭발

황광희가 예능계의 새로운 치트키로서 존재감을 확실히 입증했다. MBC 예능 프로그램인 '굿데이'에서 고정 출연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중심적인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그가 가진 재치와 인간적인 매력을 다시 한 번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황광희는 데뷔 16년 차의 롱런 엔터테이너로서 예능계에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고 있다.

 

'굿데이'는 김태호 PD가 복귀한 작품으로, 지드래곤이 프로듀서로 참여해 그 해를 대표하는 인물들과 함께 한 해를 기록할 음악을 만드는 프로젝트이다. 프로그램은 현재까지 3회 방송되었으며, 음악 프로젝트보다는 고정 출연진과 게스트 간의 케미스트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구성 속에서 황광희는 예상외로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진에는 지드래곤, 정형돈, 데프콘, 조세호, 코드 쿤스트가 포함되어 있으며, 또한 1988년생 스타들인 김수현, 임시완, 정해인, 이수혁 등이 출연하면서 이른바 ‘88즈’의 멤버들이 주목을 끌었다. 그 중에서도 황광희는 유일한 예능인으로서 ‘88즈’의 중심축을 맡으며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자처했다.

 

작품 활동에 집중해온 배우들과 달리,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해온 황광희는 프로그램의 초반부터 불편할 수 있는 어색한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88즈 멤버들 간의 어색함을 풀어줄 수 있는 인물로 기대된 광희는 그 부담을 안고도 뛰어난 친화력과 유머로 분위기를 주도하며 원활한 진행을 도왔다.

 

 

 

그는 평소 화려하고 친근한 이미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낯을 많이 가리고 다소 소심한 성격으로도 유명하다. ‘굿데이’에서도 톱스타들 앞에서 긴장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의 순발력과 넉살은 그런 긴장감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모습은 예능에서의 진정성과 꾸밈없는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황광희는 ‘굿데이’를 통해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 오랜만에 복귀했다. 방송에서 그는 "요즘 왜 안 보이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며, 환경 프로그램과 NGO 활동 등 다양한 사회적 기여를 해왔음을 밝혔다. 단순히 화제성 높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이 아니라, 소외된 분야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왔다. 이는 그가 예능을 넘어 진정성 있는 연예인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그의 예능계 여정은 ‘성형 고백’과 솔직한 입담으로 독특한 캐릭터를 구축한 시점부터 시작되었다. 이제 그는 단순히 예능 캐릭터로 남지 않고, 자신만의 영역을 확립한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꾸밈없는 모습, 최선을 다하는 태도, 그리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인간적인 매력은 오랜 시간 대중에게 사랑받는 비결로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황광희의 활약으로 주목을 받은 '굿데이'가 이제는 단순한 예능을 넘어서, 본래의 음악 프로젝트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상승세를 탈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예능계의 치트키로서 황광희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그의 향후 활동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