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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변 늦는 바나나, 과학자들이 만들었다!

 바나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과일 중 하나지만, 빠른 갈변 현상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골칫거리가 되어왔다. 바나나를 구매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껍질에 갈색 반점이 생기고, 과육이 물러지면서 결국 쓰레기통행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이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혁신적인 돌파구가 마련되었다. 영국의 생명공학 기업이 유전자 교정 기술을 활용해 갈변을 억제한 바나나를 개발했으며, 이는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음식물 쓰레기 감소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노리치에 위치한 생명공학 기업 '트로픽(Tropic)'은 바나나가 오랫동안 신선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혁신적인 유전자 교정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의 핵심은 바나나의 갈변을 유발하는 주범인 '폴리페놀 산화효소(polyphenol oxidase)'를 분비하는 유전자를 비활성화하는 것이다.

 

바나나가 갈변하는 과정은 복잡한 생화학적 반응의 결과다. 바나나 세포가 손상되면 폴리페놀 산화효소가 산소와 반응하여 페놀 화합물을 산화시키고, 이로 인해 갈색 색소인 멜라닌이 생성된다. 이 과정이 바나나 표면에 갈색 반점을 형성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과육이 물러지는 과숙성 상태로 진행된다.

 

트로픽의 연구팀은 CRISPR-Cas9과 같은 첨단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활용하여 이 과정에 관여하는 특정 유전자를 정확히 타겟팅했다. 유전자 교정을 통해 폴리페놀 산화효소의 생산을 억제함으로써, 바나나가 갈변하는 속도를 현저히 늦출 수 있게 된 것이다.

 

트로픽이 개발한 유전자 교정 바나나는 기존 바나나와 비교해 놀라운 차이를 보여준다. 일반적인 바나나는 껍질을 벗긴 후 짧은 시간 내에 갈변이 시작되지만, 새롭게 개발된 바나나는 껍질을 벗긴 상태에서도 12시간 동안 신선도와 노란색을 그대로 유지했다.

 

또한 이 기술은 바나나가 수확되어 운송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리적 충격으로 인한 갈색 반점의 발생 확률도 현저히 낮추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바나나의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크게 줄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길라드 거슨 트로픽 최고경영자(CEO)는 "바나나는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이 수확되는 작물이자 부패 가능성이 높은 작물"이라며, "일부 추정치에 따르면 재배된 바나나의 무려 50%가 폐기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음식물 쓰레기는 온실가스 배출의 큰 원인 중 하나"라며, 새로운 바나나 품종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로픽이 개발한 '느리게 숙성되는 바나나'는 이미 미국, 캐나다, 필리핀, 콜롬비아, 온두라스 등 여러 국가에서 판매 허가를 받았으며, 올해 말부터 시장에 출시될 예정이다. 트로픽은 영국 내에서도 유전자 기술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판매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혁신적인 바나나가 시장에 출시되면 소비자들은 더 오랫동안 신선한 바나나를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유통업체들도 바나나의 유통 기한이 늘어남에 따라 폐기율을 줄이고 수익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로픽은 바나나에만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식품에 유전자 교정 기술을 적용하는 연구를 확대하고 있다. 현재 트로픽 내 또 다른 연구팀은 멍이 덜 드는 사과와 감자, 천천히 시드는 상추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또한 포도와 블루베리가 시드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를 밝혀내는 연구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폴리페놀 산화효소를 분비하는 유전자 외에도, 과일의 과숙성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유전자들이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 위치한 칼리파 유전공학·생명공학센터는 과일이 녹색을 유지하도록 만드는 유전자와 과일에서 방출되는 에틸렌 가스 분비에 관여하는 유전자 등을 조사하여 과숙성을 억제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또한 과일 표면을 덮고 있는 왁스와 같은 보호층인 큐티클 관련 유전자도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큐티클 층이 두꺼워지면 사과가 곰팡이에 감염되는 것을 방지하고, 포도나 블루베리처럼 껍질이 부드러운 과일의 균열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세인스버리연구소의 조나단 존스 교수는 "농업과 식량 관련 문제는 유전학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며, "유전자 교정은 이러한 문제를 빠르고 집중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접근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유전자 교정 기술은 식량 안보, 지속 가능한 농업, 기후 변화 대응 등 인류가 직면한 여러 과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음식물 쓰레기 감소를 통한 온실가스 배출 저감은 기후 변화 대응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유전자 교정 식품의 상용화에는 여전히 규제와 소비자 수용성이라는 과제가 남아있다. 많은 국가에서 유전자 교정 식품에 대한 규제 체계가 아직 명확하게 확립되지 않았으며, 일부 소비자들은 이러한 기술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로픽의 갈변 억제 바나나 개발 사례는 유전자 교정 기술이 식품 산업과 환경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와 소통을 통해 유전자 교정 식품이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