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Travel

SNS 인플루언서들이 몰래 찾는 '극락의 계단'... 사진 찍으면 연애운 급상승?

 경상남도 사천시 와룡산 자락에 위치한 청룡사가 봄의 절정을 알리는 '제4회 청룡사 겹벚꽃 축제'를 개최한다. 이번 축제는 겹벚꽃의 개화 시기에 맞춰 오는 20일까지 진행되며, 매년 하루 평균 2,000여 명의 방문객이 찾는 사천의 대표적인 봄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반 벚꽃보다 개화 시기가 다소 늦은 겹벚꽃은 4월 중순경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특징이 있다. 일반 벚꽃이 5장의 꽃잎을 가진 것과 달리, 겹벚꽃은 이름 그대로 꽃잎이 여러 겹으로 겹쳐 있어 더욱 풍성하고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이러한 겹벚꽃의 독특한 매력을 감상하기 위해 매년 많은 관광객들이 청룡사를 찾고 있다.

 

올해 축제는 예년보다 더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기존의 인기 포토존인 '극락의 계단'과 함께 새롭게 추가된 색다른 포토존들은 방문객들에게 인생 사진을 남길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터널 형태로 조성된 겹벚꽃 길은 마치 분홍빛 꽃구름 속을 걷는 듯한 환상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오는 13일에 열리는 호국승병재와 겹벚꽃음악회다. 호국승병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와룡산에서 활약했던 승군들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행사로,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다. 이어지는 겹벚꽃음악회에서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의 선율이 방문객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축제 기간 동안에는 '겹벚꽃×릴랙스 위크' 마켓도 운영된다. 이 마켓에서는 도자기, 다구(차 도구), 서각 작품, 싱잉볼(울림그릇) 등 다양한 수공예품과 예술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방문객들은 아름다운 겹벚꽃을 감상하면서 독특한 상품들을 구경하고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청룡사의 역사적 배경도 주목할 만하다. 현재의 청룡사는 와룡산 와룡사의 산내 암자였던 진불암의 옛터에 자리하고 있다. 약 40년 전, 장룡스님이 청룡사를 설립할 당시 사찰 진입로부터 터널 형식으로 직접 겹벚꽃을 심었다고 한다. 이 겹벚꽃들은 세월이 흐르며 성장해 지금의 장관을 이루게 되었으며, 스님의 오랜 노력과 정성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결실로 볼 수 있다.

 

청룡사 관계자는 "연둣빛 와룡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겹벚꽃의 향연은 자연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며 "이번 축제를 통해 방문객들이 일상의 스트레스를 잠시 내려놓고 마음의 위로와 행복을 만끽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봄기운이 완연한 4월, 사천 와룡산 청룡사의 겹벚꽃 축제는 화려한 꽃의 향연과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어우러진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일반 벚꽃보다 조금 늦게 피어나는 겹벚꽃의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오는 20일까지 사천 청룡사를 방문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황산벌에 핀 고려의 꿈…개태사 왕건 동상의 비밀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으로, 백제 말기 계백 장군이 이끄는 결사대가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황산벌 전투의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산봉우리가 길게 이어지는 형상 때문에 연산이라는 지명이 붙은 이 일대는 한반도 고대사와 중세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하는 중요한 공간이다.개태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명을 내려 창건한 국가적인 사찰이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 신검의 군대를 이곳 황산벌에서 최종적으로 제압하며 기나긴 전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부처의 은혜와 하늘의 도움으로 통일을 이루었다고 여겨 산의 이름을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의 천호산으로 바꾸고, 태평성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4년의 대공사 끝에 개태사를 완공했다. 이후 이 사찰은 약 450년간 고려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번영을 누렸다.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고려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어진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에 안치된 왕건의 청동상은 의자에 걸터앉아 두 발을 바닥에 내리고 있는 독특한 의좌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불교 미술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언제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미륵보살의 모습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 양식이다. 개태사 어진전의 왕건 동상이 이 같은 자세를 취한 것은 그가 전란을 끝내고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준 구원자이자 태평성대를 이끄는 군주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해석된다.개태사 곳곳에는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고려 초기의 단정하고 안정적인 비례미를 보여주는 오층 석탑과 더불어, 사찰 창건 당시 승려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했던 지름 3미터 크기의 거대한 무쇠 솥인 철확이 눈길을 끈다. 특히 철확은 사찰이 폐허가 된 후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일제강점기 시절 박람회에 전시되는 등 숱한 수난을 겪은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유물로, 개태사의 굴곡진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극락대보전에 모셔진 장중한 규모의 석조여래삼존입상 역시 고려 초기 새 왕조의 강인한 기상과 호국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걸작이다.고려 왕실의 상징이었던 개태사는 조선 시대에 접어들어 억불숭유 정책의 여파로 쇠락의 길을 걷다 결국 폐사지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오랜 세월 텅 빈 벌판으로 방치되었던 절터는 1934년에 이르러서야 옛터의 중심부에 사찰을 다시 세우며 명맥을 잇게 되었다. 현재 복원된 개태사의 규모는 과거 화려했던 고려 시대의 도량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사찰 주변의 넓은 농경지와 마을 땅속에는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고려 시대 개태사의 거대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오랜 세월을 거치며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개태사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찰 입구에 세워진 빛바랜 안내판은 1960년대 초 개태사지에서 발굴되었으나 외부로 유출된 국보 금동대탑의 반환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한 사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물에 대해 사찰 측은 반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1년 법원은 소유권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한 바 있다. 개태사의 옛터에서 출토된 핵심 유물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지역 사회의 역사적 자긍심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