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타임

스포츠타임

손흥민 빠진 토트넘, 유로파리그 결승행 '반 발짝'

 명단에서 제외된 손흥민이 경기장을 찾아 응원을 보낸 가운데, 토트넘 훗스퍼가 2008년 이후 첫 공식대회 우승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토트넘은 2일 오전 4시(한국시간) 홈구장인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4-25시즌 UEFA 유로파리그(UEL) 4강 1차전에서 노르웨이의 보되/글림트를 상대로 3-1 완승을 거두며 결승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이날 토트넘은 부상으로 인해 주장 손흥민이 빠진 채 비카리오, 우도기, 판 더 펜, 로메로, 포로, 매디슨, 벤탄쿠르, 비수마, 히샬리송, 솔란케, 존슨이 선발로 나섰다. 부상으로 결장한 손흥민은 직접 경기장을 찾아 동료들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 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경기는 시작과 동시에 토트넘의 폭발적인 공격으로 시작됐다. 전반 1분 만에 브레넌 존슨이 히샬리송의 크로스를 정확한 헤더로 연결해 선제골을 터뜨렸다. 초반부터 기선을 제압한 토트넘은 이후에도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전반 34분에는 페드로 포로의 패스를 받은 제임스 매디슨이 추가골을 성공시키며 전반을 2-0으로 마무리했다.

 

후반전에 들어서도 토트넘의 공격은 계속됐다. 후반 13분, 크리스티안 로메로가 페널티 박스 안에서 파울을 당해 얻어낸 페널티킥을 도미닉 솔란케가 침착하게 성공시키며 스코어를 3-0으로 벌렸다. 보되/글림트는 후반 37분 울릭 살트네스의 만회골로 한 점을 따라붙었지만, 경기는 결국 토트넘의 3-1 승리로 끝났다.

 


승리의 기쁨 속에서도 우려되는 점은 부상자 속출이다. 이미 손흥민이 부상으로 결장한 상황에서 후반 20분에는 제임스 매디슨이, 후반 29분에는 도미닉 솔란케가 각각 부상으로 교체되며 팀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솔란케는 최근 좋은 골 감각을 유지하던 상황이라 부상 정도에 따라 팀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이번 승리로 토트넘은 오는 9일 노르웨이 원정으로 치러질 2차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만약 토트넘이 최종 우승에 성공한다면, 2008년 리그컵 이후 17년 만에 공식 대회 우승컵을 들어 올리게 된다.

 

앙헬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경기 후 "선수들이 경기 초반부터 집중력을 발휘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며 "하지만 아직 2차전이 남아있고, 부상 선수들의 상태도 확인해야 한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또한 "손흥민이 경기에 뛰지 못했지만 팀을 응원하러 온 모습이 선수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됐다"고 덧붙였다.

 

토트넘은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보이고 있지만, 유로파리그 우승을 통해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확보하고 오랜 트로피 가뭄도 끝내겠다는 각오다. 특히 부상으로 고생 중인 주장 손흥민에게 우승 트로피를 선물하겠다는 의지가 선수들 사이에서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황산벌에 핀 고려의 꿈…개태사 왕건 동상의 비밀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으로, 백제 말기 계백 장군이 이끄는 결사대가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황산벌 전투의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산봉우리가 길게 이어지는 형상 때문에 연산이라는 지명이 붙은 이 일대는 한반도 고대사와 중세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하는 중요한 공간이다.개태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명을 내려 창건한 국가적인 사찰이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 신검의 군대를 이곳 황산벌에서 최종적으로 제압하며 기나긴 전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부처의 은혜와 하늘의 도움으로 통일을 이루었다고 여겨 산의 이름을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의 천호산으로 바꾸고, 태평성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4년의 대공사 끝에 개태사를 완공했다. 이후 이 사찰은 약 450년간 고려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번영을 누렸다.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고려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어진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에 안치된 왕건의 청동상은 의자에 걸터앉아 두 발을 바닥에 내리고 있는 독특한 의좌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불교 미술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언제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미륵보살의 모습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 양식이다. 개태사 어진전의 왕건 동상이 이 같은 자세를 취한 것은 그가 전란을 끝내고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준 구원자이자 태평성대를 이끄는 군주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해석된다.개태사 곳곳에는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고려 초기의 단정하고 안정적인 비례미를 보여주는 오층 석탑과 더불어, 사찰 창건 당시 승려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했던 지름 3미터 크기의 거대한 무쇠 솥인 철확이 눈길을 끈다. 특히 철확은 사찰이 폐허가 된 후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일제강점기 시절 박람회에 전시되는 등 숱한 수난을 겪은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유물로, 개태사의 굴곡진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극락대보전에 모셔진 장중한 규모의 석조여래삼존입상 역시 고려 초기 새 왕조의 강인한 기상과 호국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걸작이다.고려 왕실의 상징이었던 개태사는 조선 시대에 접어들어 억불숭유 정책의 여파로 쇠락의 길을 걷다 결국 폐사지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오랜 세월 텅 빈 벌판으로 방치되었던 절터는 1934년에 이르러서야 옛터의 중심부에 사찰을 다시 세우며 명맥을 잇게 되었다. 현재 복원된 개태사의 규모는 과거 화려했던 고려 시대의 도량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사찰 주변의 넓은 농경지와 마을 땅속에는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고려 시대 개태사의 거대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오랜 세월을 거치며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개태사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찰 입구에 세워진 빛바랜 안내판은 1960년대 초 개태사지에서 발굴되었으나 외부로 유출된 국보 금동대탑의 반환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한 사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물에 대해 사찰 측은 반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1년 법원은 소유권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한 바 있다. 개태사의 옛터에서 출토된 핵심 유물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지역 사회의 역사적 자긍심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