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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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 악연'이 만든 참사..방화범 '가만 안 둔다' 협박

 지난 21일 오전,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방화 용의자인 60대 남성 A씨가 사망하고, 아파트에 거주하던 80대 여성 두 명이 전신 화상을 입는 등 총 6명이 다치는 참극이 벌어졌다. A씨는 이 아파트뿐 아니라, 자신이 최근까지 거주했던 빌라 인근 3곳에도 연쇄적으로 불을 지른 것으로 밝혀져 사회적 충격을 주고 있다. 사건 당일 A씨는 오전 8시경, 모친과 딸에게 유서를 남기고 집을 나섰다. 유서에는 “엄마 미안하다”, “할머니를 잘 모셔라”는 문구와 함께 딸에게 전한 현금 5만 원이 동봉돼 있었다. 그 직후 A씨는 자신의 집 근처 빌라 세 곳에 연이어 불을 질렀다. 첫 번째 타깃은 A씨와 공사 소음 문제로 갈등을 빚은 빌라였다. 그는 기름통을 들고 빌라 주변을 돌며 종이박스 더미에 기름을 붓고, 농약 살포기를 개조해 만든 화염 분사기를 사용해 불을 붙였다. 인근 주민에 따르면 “처음엔 소독약을 뿌리는 줄 알았지만, 이내 불이 나기 시작했고 세 군데서 동시에 펑펑 터지며 난리가 났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A씨는 옆 빌라 현관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르려 했으며, 현관문을 열던 주민이 불을 쏘는 A씨를 보고 급히 도망치는 장면도 포착됐다. A씨는 또 다른 빌라의 가스 배관에도 불을 붙여 창살이 녹아내릴 정도의 큰 화재를 일으켰다. 연쇄 방화를 마친 A씨는 오전 8시 10분경, 기름통 두 개를 싣고 오토바이를 타고 과거 거주하던 아파트로 이동했다. 이 아파트는 과거 A씨가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과 심한 갈등을 겪었던 곳이었다. A씨는 지하주차장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4층으로 올라가, 갈등 대상이었던 401호와 404호에 차례로 불을 질렀다. 주민들에 따르면 “위층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펑 소리가 났고, 곧이어 연기와 함께 ‘살려달라’는 비명이 울렸다”고 전했다.

 

 

 

이 불로 인해 80대 여성 두 명이 전신 화상을 입었으며, 다른 네 명은 연기 흡입 및 낙상으로 다쳤다. A씨는 화재 현장에서 전신 화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그의 오토바이에서는 두 개의 기름통과 불을 지르기 위해 사용된 농약 살포기가 함께 발견됐다. A씨는 이 아파트에서 지난해까지 거주했으며, 당시 윗집 주민과 반복적인 층간소음 갈등을 겪었다. 실제로 지난해 9월엔 쌍방 폭행으로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지만, 양측 모두 처벌을 원하지 않아 사건은 종결됐다. 이후에도 A씨는 천장을 두드리거나 새벽에 악기를 연주하고, 이웃에게 욕설을 퍼붓는 등 괴상한 행동을 반복했고, 결국 거주기간 2년을 채우지 못하고 강제 퇴거 조치를 받았다.

 

A씨는 이후 모친이 살고 있던 인근 빌라로 거처를 옮겼으나, 그곳에서도 문제를 일으켰다. 이웃들은 A씨가 공사장 소음을 문제 삼아 공사 인부와 다투다 벌금을 냈으며, 지나가는 사람에게 욕을 하거나 창문 밖으로 침을 뱉는 등의 행동으로 악명이 높았다고 전했다. 또한 A씨가 과거 우울증 약을 복용했으나 최근에는 먹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증언도 나왔다. 사건을 분석한 배상훈 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A씨의 방화가 단순한 분노 표출이 아닌, 일종의 '정화 의식'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일반적인 방화와 달리, 농약 살포기를 개조한 도구를 사용하고, 유서를 남긴 채 불을 지른 것은 자살을 앞둔 의식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며 “이는 피해망상과 범죄적 망상이 결합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배 교수는 “이번 사건을 단순히 층간소음 문제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며 “피해자가 층간소음 가해자로 오해받는 프레임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씨가 정신질환 관련 약물을 복용했지만, 증세가 악화되면서 망상이 커지고 결국 극단적인 범행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이 사건은 반복적인 이웃 갈등과 정신질환 관리의 공백, 사회적 안전망 부재가 결합해 벌어진 비극으로, 유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대응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민들은 여전히 충격과 불안 속에 있으며, 아파트 단지 전체가 깊은 침묵에 잠겼다.

 

세종대왕이 가장 아꼈던 아들, 광평대군의 비밀 600년 만에 공개

광평대군 탄신일을 기념해 오는 26일부터 다음 달 22일까지 밀알미술관에서 문화유산 특별전 '필경재가 간직한 600년, 광평대군과 그 후손들'을 개최한다고 밝혔다.광평대군은 세종대왕의 아들 중 특별한 존재였다. 그는 1425년 태어나 1436년 신씨와 혼인했으나, 불과 1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세종실록에는 광평대군의 죽음에 세종대왕이 깊이 슬퍼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광평대군은 죽기 전 1444년 아들 영순군을 얻었지만, 그해 세상을 떠나면서 부인 신씨는 이후 비구니가 되어 불교에 귀의한 것으로 전해진다.이번 전시의 가장 큰 의미는 강남구 수서동 궁마을에 위치한 고택 '필경재'에서 600여 년간 간직해온 문중의 유물이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다는 점이다. 조선 성종 때 건립된 필경재는 강남구에 위치한 유일한 종가 고택으로, 광평대군의 후손들이 대대로 가문의 유산을 보존하며 살아온 역사적 공간이다.전시는 광평대군과 그 후손들의 삶과 정신을 총 6부로 나누어 구성했다. '기억의 공간, 필경재', '광평대군과 신씨', '17세기 이후원과 후손', '17~18세기 초 이유와 후손', '18세기 이최중과 후손', '19세기 초~20세기 초 후손, 가문의 행적' 등 시대별 인물과 그 활동을 중심으로 조선왕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이번에 공개되는 전시유물은 고문서, 교지, 초상화, 병풍, 도자기, 고가구 등 100여 점에 이른다. 모두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진귀한 문화유산으로, 조선왕실 연구에도 높은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특히 주목할 만한 유물로는 광평대군의 부인 신씨가 발원한 '묘법연화경'이 있다. 이는 남편을 일찍 잃고 비구니가 된 신씨의 슬픔과 신앙심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또한 지역 빈민 구휼기구에 대한 기록을 담은 '사창의', 사대부의 재산 상속 문제를 기록한 '화회문기', 과거 시험 급제자의 답안지 등도 함께 전시된다. 이들 유물은 조선시대 왕실 및 양반 가문의 생활과 문화, 사회제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필경재를 세운 정안부정공 이천수의 후손인 이병무 대표는 "선조들의 흔적을 한 점도 놓치지 않겠다는 사명감으로 사료를 수집하고 보존해왔다"고 밝혔다. 이는 한 가문이 6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조상의 유산을 지켜온 노력과 정성을 보여주는 증언이다.조성명 강남구청장은 "한 가문이 지켜온 기록유산은 국가의 역사이자 지역의 자산"이라며 "뜻깊은 유산을 공개해준 필경재에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조선왕실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회가 될 뿐만 아니라, 강남구의 숨겨진 문화적 가치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이번 특별전은 단순한 유물 전시를 넘어, 600년 전 세종대왕의 아들과 그 후손들이 이어온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시간 여행이자, 우리 역사의 소중한 한 페이지를 복원하는 의미 있는 행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