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C 예선 흔드는 ‘귀화 전쟁’..갈 길 잃은 베트남 축구

베트남 축구협회(VFF)는 말레이시아전 직후 유럽에서 활동 중인 100명 이상의 베트남계 선수들을 리스트업하고 기술팀이 해당 명단을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김상식 베트남 대표팀 감독은 일부 선수를 직접 모니터링했으며, 합류 가능성도 타진하고 있다. 하지만 베트남 법상 국적 변경을 위해서는 먼저 자국 리그에서 뛰어야 하기 때문에 귀화 절차는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번 말레이시아전에서 베트남이 허용한 4골은 모두 귀화 선수들인 주앙 퍼규레도, 로드리고 홀가도, 라베레 코르뱅-옹, 디온 쿨스에 의해 기록됐다. 이들은 대부분 유럽 출신이며, 말레이시아가 최근 귀화시킨 다국적 선수들 중 일부다. 말레이시아는 지난 3월부터 스페인, 네덜란드, 브라질, 아르헨티나 출신 선수들을 귀화시켜 수비, 미드필더, 공격 전 포지션에 고르게 배치해 전력을 끌어올렸다.
이러한 흐름 속에 김상식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작년 브라질 출신 귀화 선수인 응우옌 쑤안 쏜(하파엘손)의 활약으로 2024 아세안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현재 쏜은 장기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상태다. 현재 대표팀에서 활동 중인 귀화 선수는 체코 출신 골키퍼 응우옌 필립과 프랑스계 풀백 까오 꽝 빈(제이슨 펜던트) 정도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추가적인 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VFF는 대규모 귀화보다는 ‘선별적 귀화’를 지향한다는 입장이다. 쩐 꾸옥 뚜언 회장은 축구의 민족성과 정체성, 유소년 육성 등을 고려해 신중한 귀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VFF는 외국계 선수의 대량 유입이 자칫 자국 축구의 정체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비치고 있다.
한편, 베트남과 경쟁 중인 말레이시아는 귀화 전략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말레이시아계 아르헨티나 선수 37명을 대상으로 귀화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으며, 9월 A매치 소집에 맞춰 6~10명 정도를 추가로 대표팀에 선발할 계획이다. 말레이시아의 이같은 귀화 전략은 10년 만에 베트남을 꺾는 성과로 이어졌고, 본선 진출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의 귀화 정책이 ‘위법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베트남 언론은 말레이시아축구협회가 과거 동티모르처럼 귀화 요건을 위반할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동티모르는 브라질 선수 8명을 혈통서를 위조해 귀화시켰다가 FIFA로부터 2023년 아시안컵 출전 자격 박탈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말레이시아가 유사한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한편, 지난해까지 신태용 감독이 이끌던 인도네시아는 귀화 전략의 ‘성공 모델’로 꼽히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유럽 출신 귀화 선수 20명을 앞세워 월드컵 4차 예선 진출에 성공했다. 특히 네덜란드 출신 공격수 올레 로메니는 중국과 바레인, 호주전에서 득점하며 팀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그의 중국전 골은 중국을 월드컵 예선 탈락으로 몰아넣었다.
앞으로 아시아지역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놓고 펼쳐질 4차 예선은 오는 10월,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다. 인도네시아, 오만, 사우디, 카타르, 이라크, 아랍에미리트 등 6개국이 두 조로 나뉘어 조별 리그를 치른다. 각 조 1위는 본선에 직행하며, 2위는 플레이오프를 거쳐 본선행 티켓을 노리게 된다.
결과적으로 동남아 축구는 귀화를 둘러싼 전략적 전환점에 서 있다. 성적을 위해 다국적 선수를 받아들이는 흐름이 강화되는 한편, 각국은 정체성 유지라는 숙제도 함께 안고 있다. 베트남의 ‘선별 귀화’ 방침과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의 ‘전면 귀화’ 전략이 향후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