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Global

도쿄올림픽의 흑역사? '쓰는 양산'이 폭염에 팔려나가는 기적

 2019년, 일본 도쿄도가 2020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야심차게 선보였던 '삿갓형 양산'은 대중의 조롱거리가 되기 십상이었다. 지름 60cm의 넉넉한 크기와 99.99%의 자외선 차단 및 차열 기능, 그리고 머리에 고정하는 벨트 방식까지, 오직 실용성에만 초점을 맞춘 그 디자인은 당시 "촌스럽다"는 혹평을 피할 수 없었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가 직접 홍보에 나섰음에도, 미적 기준을 중시하는 대중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했다. 자원봉사자들의 '햇빛 차단 효과 탁월'이라는 긍정적 평가도 주류 여론을 바꾸지는 못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만에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기록적인 폭염이 일상화되면서, 과거 '촌스러움'의 상징이었던 삿갓형 양산이 이제는 '실용성'의 아이콘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그 시작은 한 초등학생의 등굣길 사진이었다. 머리에 삿갓형 양산을 쓴 채 등교하는 뒷모습이 담긴 사진은 SNS에서 250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머리 쪽 바람이 잘 통해 시원했다"는 아이의 천진난만한 소감은, 디자인보다 기능이 우선시되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처럼 보였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은 아웃도어 브랜드 몽벨의 '엄브렐로' 시리즈 완판 사태로 이어졌다. 2017년 출시된 이 제품은 정수리를 넓게 덮으면서도 통풍이 잘 되는 구조로, '필드 엄브렐로'는 7월 초 이미 품절되어 가을에나 재입고될 예정이다. 몽벨 관계자는 "햇볕을 가리면서 양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인기 요인으로 꼽았다. 이는 과거 손에 드는 양산의 '번거로움'과 모자의 '통풍 한계'를 동시에 해결하는 '쓰는 양산'의 독보적인 강점을 보여준다.

 

이제는 한때 조롱의 대상이었던 도쿄도의 삿갓형 양산마저 "무시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사실 엄청 유능한 물건 아니냐"는 재평가를 받고 있다. 도쿄도는 여전히 해당 양산을 판매하지 않고 자원봉사자들에게 무상 제공하고 있지만,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시대를 앞서간 아이템'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구급의학 전문가 미야케 야스후미 의사는 "열사병 중 중증 사례는 뇌 후유증이 크다"며 "머리를 더위로부터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쓰는 양산이 모자와 일반 양산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며, 햇볕 차단에 매우 효과적이라고 설명한다. 즉, '촌스러움'이라는 미적 기준이 '생존'이라는 실용적 가치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기후 변화로 인한 폭염이 일상화되면서, 우리는 더 이상 아름다움만을 쫓을 수 없게 되었다. 삿갓형 양산의 화려한 부활은, 불편하고 낯설게 느껴졌던 것이 생존을 위한 필수품으로 자리 잡는 '역설의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제 우리는 '예쁜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정약용의 500권 저술 산실, 다산초당의 인문학

는 결과가 아니라, 발길 닿는 구간마다 깃든 땅의 역사와 대화하며 천천히 걷는 과정에 있다. 그중에서도 전남 강진을 지나는 남파랑길 83코스는 조선의 대유학자 다산 정약용의 고립과 깊은 사유가 층층이 쌓인 공간으로 여행자들을 이끈다. 약 17.5km에 달하는 이 길의 중심에는 야생 차나무가 무성해 '다산'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만덕산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강진 유배 시절 다산의 삶은 만덕산 자락의 백련사와 그곳에서 만난 혜장선사와의 인연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1805년 봄, 유배객 신분으로 처음 백련사를 찾은 정약용은 주지였던 혜장과 학문적 깊이에 감복하며 신분을 초월한 우정을 쌓기 시작했다. 절망적인 유배 생활 속에서 혜장은 다산에게 지적인 동반자이자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1808년 다산이 백련사 인근의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긴 후 두 사람이 수시로 오갔던 800m의 산길은 오늘날 '우정길'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도보 여행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전한다.다산초당은 단청조차 없는 소박한 목조 건물이지만, 그곳에 머문 11년 동안 정약용은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등 5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유배라는 물리적 억압조차 그의 사유의 깊이를 가둘 수 없었음을 증명하듯, 초당 곳곳에는 선비의 여유와 기품이 흐른다. 만덕산 능선에서 내려다보이는 강진만의 풍경은 고독한 유배객의 시선을 넓혀주었을 것이며, 지천에 널린 야생 차나무는 그의 호가 된 '다산'의 유래가 되어 오늘날까지 그 향기를 전하고 있다.강진을 지나 해남으로 발길을 옮기면 달마산 미황사에서 땅끝탑으로 이어지는 남파랑길 90코스가 여행자를 맞이한다. 이 구간의 하이라이트는 기암괴석 사이에 제비집처럼 자리 잡은 도솔암이다. 정유재란 당시 소실되어 400여 년간 빈터로 남아있던 이곳은 2002년 법조 스님의 원력으로 복원되었다. 헬기조차 접근하기 힘든 험지에 암자를 세우기 위해 산 아래에서 자재를 미리 깎고 단청까지 칠해 올라와 조립한 '사전 제작 방식'의 서사는 수행자의 지독한 정진을 짐작하게 한다.한 칸 남짓한 작은 규모의 도솔암은 거대한 바위 성벽에 둘러싸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은 남해의 일출과 서해의 낙조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천혜의 명당으로, 암자 앞마당에 서면 탁 트인 바다와 달마산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무가 밀려오는 날이면 마치 구름바다 위에 떠 있는 신선의 거처와 같은 풍경을 연출하며 보는 이의 넋을 잃게 만든다. 작은 공간 안에 고요와 수행의 서사를 압축해 놓은 도량의 품격은 길 위에서 지친 여행자의 마음을 정화해 주기에 충분하다.코리아둘레길 남도 구간은 이처럼 유학자의 고뇌와 수행자의 원력이 교차하는 인문학적 성지다. 길은 단순히 흙과 돌로 이루어진 통로가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인물들이 남긴 사유의 흔적을 따라 걷는 시간 여행의 통로가 된다. 완주라는 목표에 매몰되지 않고 발걸음을 늦출 때 비로소 보이는 풍경들은 우리 국토가 간직한 깊은 서사를 들려준다. 만덕산의 차 향기와 달마산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는 이 여정은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휴식과 성찰의 의미가 무엇인지 묵묵히 웅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