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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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의 달항아리와 조선의 흙그릇, 수백 년의 시간을 넘어 나누는 비밀스러운 대화

 흙에서 태어난 두 개의 그릇이 한국적 미의 정수를 논한다. 깊은 밤처럼 어둠을 빨아들이는 흑자편호(黑磁扁壺)는 묵묵한 대지를, 그 위로 떠오른 김환기의 그림 속 백자대호(白磁大壺)는 둥근 달처럼 은은한 빛을 발한다. 비움과 충만, 빛과 어둠. 이 상반된 아름다움의 조화는 '한국적 미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된다.

 

서울 삼청동 학고재에서 열리는 그룹전 ‘흙으로부터’는 바로 이 근원적인 물질, '흙'을 통해 우리 미학의 깊이를 탐구하는 자리다. 전시는 조선시대 도자기로부터 시작해, 시대를 초월하여 김환기, 송현숙, 박영하, 이진용, 박광수, 로와정, 지근욱 등 7팀의 작가들이 흙을 매개로 펼쳐낸 다채로운 예술 세계를 조명한다. 특히 세계 미술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키아프리즈' 기간에 맞춰 우리 미학의 깊이를 새롭게 조명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는다. 신리사 학고재 학예실장은 "한국성에 대한 단일한 답을 내리기보다, 흙을 통해 우리가 지닌 고유한 감성과 상상력을 확장하고자 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전통 한옥인 본관은 김환기를 비롯한 원로 작가들의 작품을 조선 도자와 함께 배치해 깊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거친 질감으로 자연의 원초적 생명력을 표현한 박영하의 '내일의 너' 옆에는 회색 태토 위에 백토를 입힌 분청사기가 놓여 소박하면서도 원시적인 미학적 공명을 이룬다. 술의 정취를 노래하되 절제의 미덕을 새긴 '표형문자입주병' 주변으로는 시대를 관통하는 '기호'들이 펼쳐진다. 김환기의 그림에서는 한글 자음과 모음을 닮은 추상 기호들이 떠오르고, 이진용의 대형 설치작 '컨티뉴엄'은 수천 개의 활자가 모여 거대한 문양을 이루며 작은 입자가 세상을 이루는 장관을 연출한다.

 

반면, 신관은 1980년대생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이고 관념적인 접근이 돋보인다. 선배 세대가 흙을 직접적이고 서정적으로 다뤘다면, 이들은 흙이 품은 '개념'에 주목한다. 박광수는 강렬한 색채의 충돌로 하늘과 땅,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흐려진 세계를 표현하며 흙을 모든 존재가 발 딛는 근원으로 삼는다. 듀오 작가 로와정은 '무(無)'의 철학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를 향해 유쾌한 질문을 던진다. 거대한 벽에 박힌 작은 나사못 하나가 작품의 전부인데, 이 나사가 완성하는 수식 '3+1x2÷2-4'의 답은 허무하게도 '0'이다. 지근욱에게 흙은 우주를 구성하는 입자다. 색연필로 무수히 그은 선과 점으로 이루어진 그의 추상화는 중력에서 풀려난 입자가 빛으로 거듭나는 우주적 순간을 포착한다. 전시는 9월 13일까지 계속된다.

 

해운대 모래축제 15일 팡파르, 샌드보드 타고 초여름 속으로

부산의 대표적인 초여름 행사로, 올해는 '모래로 떠나는 부산 시간여행'이라는 주제 아래 더욱 깊이 있는 서사를 선보인다. 2026~2027 문화관광 예비축제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부산의 역사적 기원부터 역동적인 현재의 모습까지를 정교한 모래 예술로 형상화하여 관람객들에게 색다른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이번 축제에는 한국을 포함해 캐나다, 중국, 프랑스, 대만 등 5개국에서 초빙된 11명의 정상급 조각가들이 참여해 기량을 뽐낸다. 작가들은 조선 시대의 외교 사절단이었던 조선통신사부터 한국전쟁 당시 피란 수도였던 부산의 아픈 역사, 그리고 근대화의 상징인 부산항에 이르기까지 부산이 걸어온 길을 17점의 작품에 담아냈다. 역사뿐만 아니라 부산국제영화제의 화려함과 열정적인 야구 응원 문화, 서핑과 온천 등 부산 시민들의 일상적인 즐거움까지 모래라는 부드러운 소재를 통해 입체적으로 재현된다.축제의 백미는 단연 백사장 중앙에 설치되는 대형 파노라마 조형물이다. 해운대의 전경을 압축적으로 담아낸 이 메인 작품은 축제의 정체성을 한눈에 보여준다. 특히 올해는 높이 7m에 달하는 모래 전망대가 별도로 설치되어 관람객들이 높은 곳에서 백사장 전체와 조각 작품들을 조망할 수 있는 특별한 시야를 제공한다. 작가들이 현장에서 직접 모래를 다듬고 조각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은 해운대 모래축제만이 가진 독보적인 매력으로 꼽힌다.관람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풍성하게 마련되었다. 모래 조각의 기초를 배워 직접 작품을 만들어보는 '도전! 나도 모래조각가'는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이며, 가파른 모래 언덕을 타고 내려오는 '날아라 샌드보드'는 어린이들에게 짜릿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외에도 백사장 곳곳에 숨겨진 보물을 찾는 프로그램과 어린이 전용 모래 놀이터 등이 운영되어 남녀노소 누구나 모래와 친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해가 저문 뒤의 해운대는 낮과는 전혀 다른 환상적인 분위기로 탈바꿈한다. 모래 조각 작품 위에 화려한 영상을 투사하는 미디어파사드 기법이 도입되어 조각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백사장 곳곳을 수놓는 경관 조명과 특수 연출이 더해져 야간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빛과 모래가 어우러진 이 이색적인 풍경은 부산의 밤바다를 더욱 낭만적으로 장식하며 축제의 열기를 밤늦게까지 이어가게 할 전망이다.해운대구는 이번 축제를 통해 모래라는 친숙한 소재가 어떻게 부산의 역사와 문화를 전달하는 예술적 매개체가 될 수 있는지를 증명하고자 한다. 축제 본행사는 18일에 마무리되지만, 정성스럽게 제작된 모래 조각 작품들은 6월 14일까지 백사장에 그대로 전시되어 해수욕장을 찾는 이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초여름의 길목에서 해운대를 방문하는 이들은 백사장 위에 새겨진 부산의 시간을 따라 걸으며,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새로운 시선으로 마주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