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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에게 물어뜯겨도 "죽은 척"… 中 임신부, 극적 탈출 성공

 중국 칭하이성의 한적한 목축 마을에서 믿기 힘든 생존 드라마가 펼쳐져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임신 14주 차의 한 여성이 맹렬한 흑곰의 습격을 받았으나, 침착하게 '죽은 척'하는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모면하고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태아의 안전을 위해 40시간에 달하는 험난한 여정을 감수하며 숭고한 모성애를 보여주었다.

 

지난달 7일, 칭하이성 위수시의 광활한 초원에서 소를 몰고 집으로 향하던 샤오칭(가명) 씨는 평온했던 일상이 한순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하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뒤돌아보는 찰나, 거대한 흑곰 한 마리가 섬뜩한 울부짖음과 함께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곰은 무자비하게 샤오칭 씨의 머리와 얼굴을 물어뜯기 시작했고, 오른쪽 눈과 왼쪽 귀에서는 선혈이 낭자하게 흘러내렸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그녀는 본능적으로, 그리고 놀랍도록 침착하게 땅바닥에 엎드려 숨을 멈추고 죽은 척했다. 곰은 잠시 그녀의 팔을 발톱으로 건드려 반응을 살폈지만, 미동도 없는 그녀를 확인하고는 이내 자리를 떠났다. 야생의 포식자 앞에서 발휘된 이 순간의 기지가 그녀와 뱃속 아기의 운명을 갈랐다.

 

곰이 사라진 후, 샤오칭 씨는 오른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고 얼굴 전체가 심하게 부어오른 채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그녀는 인근 목동들의 도움을 받아 수백 미터 떨어진 집으로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목축 생활을 하는 시골 마을의 특성상, 가까운 병원에서는 그녀의 심각한 부상을 제대로 치료할 수 없었다. 남편은 절박한 심정으로 아내를 태우고 무려 40시간 동안 육로를 달려 시안시 인민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항공편을 이용하면 훨씬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지만, 고도 변화로 인한 안압 문제가 태아에게 위험을 줄 수 있다는 의료진의 조언에 따라 부부는 고통스러운 육로 이동을 택하는 숭고한 결정을 내렸다. 뱃속의 작은 생명을 지키기 위한 부부의 간절한 마음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병원 도착 후 진료 결과, 샤오칭 씨의 부상은 상상 이상으로 심각했다. 머리에는 다수의 개방성 상처가 있었고, 오른쪽 안구는 심하게 손상되어 시력 상실의 위험이 컸다. 왼쪽 귓바퀴와 외이도는 찢어졌으며 고막까지 파열된 중상이었다. 더욱이 그녀는 임신 14주 차였기에, 의료진은 태아에게 미칠 위험을 최소화하면서도 산모의 생명을 구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숙고 끝에 의료진은 6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강행했고,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수술 직후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던 샤오칭 씨는 지난 18일 기적적으로 퇴원하여 안정을 되찾았다. 수술 후 경과는 양호한 편이며, 무엇보다 뱃속의 태아 또한 무사하다는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다만, 안타깝게도 오른쪽 눈의 시력은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전해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샤오칭 씨의 남편은 아내와 아이가 함께 살아남은 것에 대해 "곰 발톱 아래에서 아내와 아이가 함께 살아남았다"며 깊은 안도감과 함께 "아이를 끝까지 지켜내겠다"는 굳은 의지를 밝혔다. 그는 당국의 정책에 따라 치료비의 90% 이상을 정부 지원으로 환급받을 예정이지만, 시안시에 머무르며 이어지는 생활비와 향후 필요한 후속 치료비로 인해 여전히 큰 경제적 부담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하루 200위안(약 3만9000원)을 벌며 목축으로 생계를 이어오던 이들 부부에게는 앞으로도 험난한 여정이 남아있지만, 야생의 위협 속에서도 굳건히 생명을 지켜낸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삶의 소중함과 인간의 강인한 생명력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정약용의 500권 저술 산실, 다산초당의 인문학

는 결과가 아니라, 발길 닿는 구간마다 깃든 땅의 역사와 대화하며 천천히 걷는 과정에 있다. 그중에서도 전남 강진을 지나는 남파랑길 83코스는 조선의 대유학자 다산 정약용의 고립과 깊은 사유가 층층이 쌓인 공간으로 여행자들을 이끈다. 약 17.5km에 달하는 이 길의 중심에는 야생 차나무가 무성해 '다산'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만덕산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강진 유배 시절 다산의 삶은 만덕산 자락의 백련사와 그곳에서 만난 혜장선사와의 인연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1805년 봄, 유배객 신분으로 처음 백련사를 찾은 정약용은 주지였던 혜장과 학문적 깊이에 감복하며 신분을 초월한 우정을 쌓기 시작했다. 절망적인 유배 생활 속에서 혜장은 다산에게 지적인 동반자이자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1808년 다산이 백련사 인근의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긴 후 두 사람이 수시로 오갔던 800m의 산길은 오늘날 '우정길'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도보 여행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전한다.다산초당은 단청조차 없는 소박한 목조 건물이지만, 그곳에 머문 11년 동안 정약용은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등 5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유배라는 물리적 억압조차 그의 사유의 깊이를 가둘 수 없었음을 증명하듯, 초당 곳곳에는 선비의 여유와 기품이 흐른다. 만덕산 능선에서 내려다보이는 강진만의 풍경은 고독한 유배객의 시선을 넓혀주었을 것이며, 지천에 널린 야생 차나무는 그의 호가 된 '다산'의 유래가 되어 오늘날까지 그 향기를 전하고 있다.강진을 지나 해남으로 발길을 옮기면 달마산 미황사에서 땅끝탑으로 이어지는 남파랑길 90코스가 여행자를 맞이한다. 이 구간의 하이라이트는 기암괴석 사이에 제비집처럼 자리 잡은 도솔암이다. 정유재란 당시 소실되어 400여 년간 빈터로 남아있던 이곳은 2002년 법조 스님의 원력으로 복원되었다. 헬기조차 접근하기 힘든 험지에 암자를 세우기 위해 산 아래에서 자재를 미리 깎고 단청까지 칠해 올라와 조립한 '사전 제작 방식'의 서사는 수행자의 지독한 정진을 짐작하게 한다.한 칸 남짓한 작은 규모의 도솔암은 거대한 바위 성벽에 둘러싸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은 남해의 일출과 서해의 낙조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천혜의 명당으로, 암자 앞마당에 서면 탁 트인 바다와 달마산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무가 밀려오는 날이면 마치 구름바다 위에 떠 있는 신선의 거처와 같은 풍경을 연출하며 보는 이의 넋을 잃게 만든다. 작은 공간 안에 고요와 수행의 서사를 압축해 놓은 도량의 품격은 길 위에서 지친 여행자의 마음을 정화해 주기에 충분하다.코리아둘레길 남도 구간은 이처럼 유학자의 고뇌와 수행자의 원력이 교차하는 인문학적 성지다. 길은 단순히 흙과 돌로 이루어진 통로가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인물들이 남긴 사유의 흔적을 따라 걷는 시간 여행의 통로가 된다. 완주라는 목표에 매몰되지 않고 발걸음을 늦출 때 비로소 보이는 풍경들은 우리 국토가 간직한 깊은 서사를 들려준다. 만덕산의 차 향기와 달마산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는 이 여정은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휴식과 성찰의 의미가 무엇인지 묵묵히 웅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