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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군, 부끄러운 역사와 정면으로 마주하다…'경호정'의 재발견

 충북 음성군 설성공원 한가운데 자리한 향토문화유산 ‘경호정’의 안내판이 최근 새롭게 교체됐다. 겉보기에는 평화로운 정자이지만, 그 이면에는 일제강점기의 어두운 역사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1934년, 당시 조선총독부 음성군수였던 권종원은 일본 왕세자 아키히토의 탄생을 축하하고 일제에 대한 충성을 과시하기 위해 이 정자를 세웠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정자가 위치한 인공 연못과 섬의 구조가 일장기를 형상화했다는 점이다. 네모난 연못 안에 둥근 섬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교묘하게 일제의 상징을 숨겨 놓은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기존 안내판에는 경호정이 친일 목적의 조형물이라는 설명이 빠져 있어 많은 이들의 비판을 받아왔다. 이번 안내판 교체는 뒤늦게나마 역사를 바로잡고, 부끄러운 과거를 후대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한 음성군의 의지를 보여주는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경호정 건립 과정에서 드러난 일제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500평에 달하는 연못을 파고 그 안에 200평 규모의 섬을 만드는 대규모 공사에는 지역 주민들이 강제로 동원되었다는 사실이 전해진다. 이는 단순한 건축물 건립을 넘어, 당시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억압과 수탈의 역사를 고스란히 증명하는 대목이다. 더욱이 경호정 옆에는 ‘독립기념비’라는 이름의 비석이 서 있는데, 이 또한 본래는 아키히토의 출생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었다. 광복 이후에도 철거되지 못한 채 글씨만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는 이 비석은,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또 하나의 상징물이다. 이처럼 설성공원 곳곳에 남아있는 일제의 흔적들은 우리에게 잊지 말아야 할 아픈 역사를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있다.

 


지역 사회에서는 경호정과 기념비의 처리 문제를 두고 오랜 시간 논쟁이 이어져 왔다. 일제의 잔재물이므로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과, 아픈 역사도 역사이므로 보존하여 후대에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오랜 논의 끝에 음성군은 전문가 자문과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존치’를 결정했다. 단순히 보존하는 것을 넘어, 그 건립 배경과 역사적 의미를 명확히 알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수정된 안내판에 ‘경호정은 친일 인물로 분류되는 권종원이 음성군수로 재임할 때 일본에 충성을 맹세하는 의미로 세운 일제 잔재물이다’라는 문구를 명시한 것은 이러한 결정의 결과물이다. 부끄러운 역사를 감추기보다 정면으로 마주하고, 이를 통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의 표현인 셈이다.

 

이번 음성군의 결정은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는 친일 잔재 청산 문제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무조건적인 철거만이 능사가 아니라, 그 역사적 맥락을 정확히 기록하고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청산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음성군은 앞으로도 지역 내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물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그 성격에 따라 철거 또는 보존의 원칙을 적용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번 경호정 안내판 교체를 시작으로, 우리 주변에 숨어있는 더 많은 친일의 흔적들이 역사의 심판대 위에 오르게 되기를 기대한다. 아픈 과거를 기억하고 되새기는 노력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도쿄, 오사카는 이제 그만"…일본이 한국인에게만 콕 집어 추천한 '진짜 여행지'

코이치 주한 일본대사는 국교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관광이야말로 양국의 신뢰를 다지는 가장 강력한 연결고리라고 강조하며, 이제는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를 넘어 지방 소도시 간의 교류가 새로운 한일 관계의 핵심 축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1965년 연간 1만 명에 불과했던 인적 교류가 지난해 12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폭발적으로 증가한 현 상황에서, 양적 팽창을 넘어 질적 성장을 도모해야 할 시점이라는 문제의식이 깔려있다. 관광을 시작으로 경제, 문화, 청년 세대 교류 전반을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양국 관계의 기반을 더욱 단단하게 다지겠다는 전략이다.실제로 한국인의 일본 사랑은 통계로도 명확히 드러나지만, 그 이면에는 심각한 '쏠림 현상'이라는 과제가 존재한다.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4명 중 1명은 한국인이었으며, 이는 숫자로 881만 명에 달하는 압도적인 1위 기록이다. 한국인 해외 출국자 3명 중 1명이 일본을 택한 셈이다. 하지만 이들의 발길은 특정 지역에 과도하게 집중되었다. 간사이, 후쿠오카, 나리타 등 단 3개 공항을 통해 입국한 비율이 전체의 80%에 육박했으며, 숙박 역시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3대 도시에 60% 이상이 몰렸다. 이는 대부분의 한국인 관광객이 비슷한 동선의 단기 체류형 여행에 머무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은 이러한 편중 현상을 해소하고 지속가능한 관광 성장을 위해 지방 공항의 접근성을 개선하고, 숨겨진 소도시의 매력을 알리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일본은 '알려지지 않은 일본의 소도시'라는 캠페인을 내걸고 구체적인 행동에 나섰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홍보 리셉션에는 이와테, 나가노, 돗토리현 등 무려 12개 현의 지사단이 직접 참석해 한국 여행 및 항공업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뜨거운 '러브콜'을 보냈다. 이들은 각 지역의 특색을 담은 홍보 부스를 마련하고, 일본 최대의 사구를 중심으로 한 체험형 관광(돗토리현), 스키와 온천을 연계한 동계 여행(나가노현), 후지산 인근의 와이너리 투어(야마나시현) 등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채로운 관광 상품을 제안하며 공동 상품 개발을 제안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는 단순한 홍보를 넘어, 한국 시장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맞춤형 전략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겠다는 일본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일본의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히 관광객을 분산시키는 것을 넘어, 2029년까지 인바운드 관광 소비액을 현재의 두 배에 가까운 15조 엔으로 끌어올리려는 거대한 경제적 목표와 맞닿아 있다. 대도시 중심의 쇼핑 관광만으로는 이러한 목표 달성에 한계가 있기에, 일본의 진짜 매력인 현지의 음식과 술, 온천, 청정 자연, 그리고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한 '체류형 여행' 모델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관광객에게는 획일적인 여행에서 벗어나 보다 깊이 있고 다채로운 경험을 할 기회를 제공하고, 일본에게는 지역 경제 활성화와 국가 전체의 균형 발전을 꾀할 수 있는 '윈윈' 전략인 셈이다. 관광을 매개로 한 지방 도시 간의 교류가 활성화될 경우, 양국 청년 세대와 지역 기업 간의 협력으로까지 이어져 한일 관계에 실질적인 시너지를 창출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