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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잘하는 비법, AI에 물어봐"…GS건설, 전 직원에 'AI 레시피' 푼다

 건설업계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업무 혁신 바람이 불고 있다. GS건설은 전사적인 AI 활용 역량을 끌어올리고, 실제 업무 효율성 강화로 이어지는 성공 사례를 발굴·공유하기 위해 'AI 레시피' 경진대회를 개최했다고 9일 밝혔다. 이번 행사는 지난 8월 국내 건설사 중 최초로 오픈AI의 기업용 AI 솔루션인 '챗GPT 엔터프라이즈'를 도입한 이후, 그 활용 노하우를 전 직원이 함께 나누는 첫 공식적인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기술 도입에 그치지 않고, 이를 현업에 실질적으로 뿌리내리게 하려는 회사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이번 경진대회에는 예상보다 뜨거운 관심 속에 총 50여 개의 다채로운 AI 활용 사례가 현업 부서들로부터 접수되었다. 특히 복잡하고 정형화되지 않은 문서 파일명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자동으로 변환해주는 기능이나, 단순 반복적인 업무를 자동화하여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아이디어, 그리고 방대한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분석해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사례 등이 직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각 부서 팀장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은 접수된 사례들을 대상으로 활용도, 혁신성, 타 부서로의 확장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최종 4건의 우수사례를 선발했고, 지난 8일 전 직원을 대상으로 우수사례 시연회를 열어 성공 경험을 확산시켰다.

 


대회에 참여한 한 직원은 "AI를 업무에 효율적으로 활용한 동료들의 사례를 직접 보고 배우면서,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AI 활용에 대한 심리적 진입장벽이 크게 낮아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처럼 GS건설은 이번 경진대회를 일회성 이벤트로 끝내지 않고, 업무 효율을 높이는 AI 우수사례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공유하는 문화를 정착시킬 계획이다. 또한, 이렇게 축적된 실제 성공 사례들을 바탕으로 실용적인 AI 활용 교육 및 지원 프로그램을 더욱 강화하여, 모든 직원이 '더 스마트하게' 일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AI를 미래 성장의 핵심 동력이자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는 경영진의 확고한 철학에 기반한다. 허윤홍 GS건설 대표는 올해 초 임원 워크숍에서 "AI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생존의 문제"라고 강조한 바 있다. GS건설 관계자 역시 "AI 활용은 단순한 신기술 채택이 아닌, 업무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략적 선택"이라며 "직원들이 AI를 자유롭게 활용하고 그 경험을 서로 공유하는 문화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갈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건설업계의 'AI 퍼스트 무버'로서 GS건설이 만들어갈 AI 중심의 업무 혁신 모델이 업계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당신이 몰랐던 '항일의 성지'…이 섬에만 365일 태극기가 휘날린다

표지석처럼, 이곳은 인구 2천 명 남짓한 작은 섬에서 무려 8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저항의 성지다. 분단 이후 '빨갱이 섬'이라는 오명 속에 신음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365일 태극기가 휘날리는 민족의 화산으로 자리 잡은 소안도의 뜨거운 역사는 등대와 학교, 그리고 비석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그 저항 정신의 첫 불꽃은 1909년 외딴섬의 등대에서 타올랐다. 동학군 출신 이준하 등 6인은 일본인들이 세운 당사도 등대를 습격해 시설을 파괴하고 일본인들을 살해했다. 이는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빼앗긴 조선인의 독립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소안도 주민 2천여 명 중 800명이 일제의 감시 대상인 '불량선인'으로 낙인찍혔지만, 저항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건은 소안도의 항일 운동에 거대한 불을 지폈다.소안도의 저항은 무력 투쟁에만 그치지 않았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강탈당한 토지 소유권을 되찾기 위해 13년간의 끈질긴 법정 투쟁을 벌여 마침내 승소했다. 주민들은 이를 기념해 1923년 '사립 소안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민족 교육을 통해 항일 인재를 길러내는 독립운동의 핵심 근거지였다. 교사와 학생들은 비밀결사를 조직하며 항일 운동의 최전선에 섰고, 이는 결국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되는 비운을 맞았지만, 그 정신만큼은 꺾을 수 없었다.이 모든 투쟁의 중심에는 송내호 같은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다. 교사였던 그는 무장투쟁 단체를 조직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이며 시대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했다. 그의 형제 중 셋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는데, 어머니의 간절한 만류에 순사가 된 막내아들의 묘비에만 유일하게 태극기 문양이 없다는 사실은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양반 가문이 없어 신분 갈등이 적었고, 일찍부터 외부 세계에 눈떴으며, 교육열이 높았던 소안도의 독특한 환경은 이 작은 섬이 국내외를 아우르는 강력한 저항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