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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천억 받고 79층 허가…삼표 부지 개발, 서울시와 개발사의 '빅딜' 전말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스카이라인을 바꿀 초고층 랜드마크 개발 계획이 최종 확정되었다. 서울시는 27일 도시건축공동위원회를 열어, 45년간 지역의 해묵은 과제였던 옛 삼표레미콘 부지에 최고 79층 규모의 복합시설을 건립하는 세부개발계획안을 수정 가결했다고 밝혔다. 1977년부터 레미콘 공장으로 운영되며 분진과 소음 문제를 일으켰던 이 부지는 2022년 공장 철거 이후 새로운 변화를 예고해왔으며, 이번 결정으로 서울숲과 한강을 아우르는 서울의 새로운 대표 건축물이자 미래형 복합 공간으로 거듭날 채비를 마치게 되었다.

 

이번 개발은 서울시의 '사전협상제도'를 통해 추진된 대표적인 민관 협력 사업이다. 서울시는 민간 사업자인 SP성수PFV 측에 용적률 인센티브 등을 제공하는 대신, 약 6,054억 원에 달하는 공공기여를 확보했다. 계획안에 따르면, 신축되는 건물은 단순한 주거 시설을 넘어 도시 경쟁력을 강화하는 핵심 거점으로 기능하게 된다. 전체 연면적의 35% 이상을 첨단 산업 분야의 기업들을 유치할 업무시설로 채우고, 이와 연계된 판매, 문화 등 다양한 상업 기능을 도입한다. 또한, 직장과 주거지가 가까운 '직주근접' 환경을 실현하기 위해 전체의 40% 이하 범위에서 최고급 주거시설도 함께 조성될 예정이다.

 


개발에 따른 이익은 대규모 공공기여를 통해 시민들에게 환원된다. 총 6,054억 원 규모의 공공기여금은 서울숲 일대의 고질적인 교통 정체를 해소하기 위한 도로 등 기반 시설 확충에 우선적으로 투입된다. 또한,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스타트업을 종합 지원하는 서울시 '유니콘 창업허브'가 이곳에 조성된다. 이 외에도 사업자는 성동구에 488억 원, 서울시에 1,140억 원의 공공시설 설치 비용을 현금으로 부담하게 된다. 단순한 금전적 기여를 넘어, 단절되었던 서울숲과 부지를 직접 연결하는 입체 보행 공원을 조성하여 시민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쉴 수 있는 녹지 공간을 대폭 확충하는 계획도 포함되었다.

 

'건축혁신형 사전협상' 대상지로 선정된 만큼, 이번 프로젝트는 서울의 도시 건축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혁신적인 디자인을 선보일 전망이다. 서울시는 서울숲과의 유기적인 연계를 위해 입체 보행데크의 건폐율을 최대 90%까지 완화하고, 용적률 역시 최대 104%포인트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파격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이를 통해 시민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하고 즐길 수 있는 개방적인 공유 공간을 품은 창의적인 건축물이 탄생할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시는 내년 1월 중 계획안을 최종 고시하고, 건축 심의 등 관련 인허가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여 이르면 내년 말 착공에 들어간다는 목표다.

 

당신이 몰랐던 '항일의 성지'…이 섬에만 365일 태극기가 휘날린다

표지석처럼, 이곳은 인구 2천 명 남짓한 작은 섬에서 무려 8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저항의 성지다. 분단 이후 '빨갱이 섬'이라는 오명 속에 신음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365일 태극기가 휘날리는 민족의 화산으로 자리 잡은 소안도의 뜨거운 역사는 등대와 학교, 그리고 비석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그 저항 정신의 첫 불꽃은 1909년 외딴섬의 등대에서 타올랐다. 동학군 출신 이준하 등 6인은 일본인들이 세운 당사도 등대를 습격해 시설을 파괴하고 일본인들을 살해했다. 이는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빼앗긴 조선인의 독립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소안도 주민 2천여 명 중 800명이 일제의 감시 대상인 '불량선인'으로 낙인찍혔지만, 저항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건은 소안도의 항일 운동에 거대한 불을 지폈다.소안도의 저항은 무력 투쟁에만 그치지 않았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강탈당한 토지 소유권을 되찾기 위해 13년간의 끈질긴 법정 투쟁을 벌여 마침내 승소했다. 주민들은 이를 기념해 1923년 '사립 소안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민족 교육을 통해 항일 인재를 길러내는 독립운동의 핵심 근거지였다. 교사와 학생들은 비밀결사를 조직하며 항일 운동의 최전선에 섰고, 이는 결국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되는 비운을 맞았지만, 그 정신만큼은 꺾을 수 없었다.이 모든 투쟁의 중심에는 송내호 같은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다. 교사였던 그는 무장투쟁 단체를 조직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이며 시대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했다. 그의 형제 중 셋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는데, 어머니의 간절한 만류에 순사가 된 막내아들의 묘비에만 유일하게 태극기 문양이 없다는 사실은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양반 가문이 없어 신분 갈등이 적었고, 일찍부터 외부 세계에 눈떴으며, 교육열이 높았던 소안도의 독특한 환경은 이 작은 섬이 국내외를 아우르는 강력한 저항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