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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M7.5 강진 후 '후발 지진 주의보' 발령

 일본 혼슈 동북부 아오모리현 앞바다에서 여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일본 기상청이 향후 1주일 내에 규모 8.0 이상의 '거대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평상시보다 높다고 경고해 현지 주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9일 오전 6시 52분쯤 아오모리현 앞바다에서 규모 6.4로 추정되는 지진이 발생했다. 이는 전날 오후 11시 15분쯤 발생한 규모 7.5 강진의 여진으로, 진원 깊이는 약 10㎞다. 이 지진으로 아오모리현과 이와테현 일부 지역에서는 천장에 매달린 전등이 크게 흔들리는 수준인 진도 4의 흔들림이 감지됐다. NHK는 해수면 변동은 있을 수 있으나 쓰나미 피해 우려는 없다고 전했다.

 

가장 큰 문제는 여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더 큰 규모의 지진이 뒤따를 가능성이다. 일본 기상청은 전날 강진 발생 직후 이례적으로 '홋카이도·산리쿠 앞바다 후발 지진 주의 정보'를 발표했다. 이는 과거 세계 통계에 기반하여, 규모 7.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 뒤 1주일 이내에 규모 8.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확률이 평상시보다 높아진다는 경고다. 기상청은 "100회 중 1회 정도로, 1%의 확률로 규모 8 이상의 지진이 올 수 있다"고 설명하며 경계를 당부했다.

 


이러한 경고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규모 9.0)의 전례를 상정한 것이다. 당시에도 본진 발생 이틀 전 홋카이도·산리쿠 앞바다에서 규모 7.3의 지진이 선행된 바 있다. 

 

일본 기상청 담당자는 NHK에 "앞으로 1주일 안에 일어날 '최악의 경우'로 3.11과 같은 지진이 발생하는 것을 상정하게 된다"며 "당시에는 진원과 멀리 떨어진 지바현에도 높은 쓰나미가 밀려왔던 만큼, 그런 지진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고 생각하고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상청은 당분간 여진 활동이 활발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주민들에게 지진 발생 시 신속하고 안전한 대피를 준비할 것을 촉구했다.

 

당신이 몰랐던 '항일의 성지'…이 섬에만 365일 태극기가 휘날린다

표지석처럼, 이곳은 인구 2천 명 남짓한 작은 섬에서 무려 8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저항의 성지다. 분단 이후 '빨갱이 섬'이라는 오명 속에 신음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365일 태극기가 휘날리는 민족의 화산으로 자리 잡은 소안도의 뜨거운 역사는 등대와 학교, 그리고 비석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그 저항 정신의 첫 불꽃은 1909년 외딴섬의 등대에서 타올랐다. 동학군 출신 이준하 등 6인은 일본인들이 세운 당사도 등대를 습격해 시설을 파괴하고 일본인들을 살해했다. 이는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빼앗긴 조선인의 독립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소안도 주민 2천여 명 중 800명이 일제의 감시 대상인 '불량선인'으로 낙인찍혔지만, 저항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건은 소안도의 항일 운동에 거대한 불을 지폈다.소안도의 저항은 무력 투쟁에만 그치지 않았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강탈당한 토지 소유권을 되찾기 위해 13년간의 끈질긴 법정 투쟁을 벌여 마침내 승소했다. 주민들은 이를 기념해 1923년 '사립 소안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민족 교육을 통해 항일 인재를 길러내는 독립운동의 핵심 근거지였다. 교사와 학생들은 비밀결사를 조직하며 항일 운동의 최전선에 섰고, 이는 결국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되는 비운을 맞았지만, 그 정신만큼은 꺾을 수 없었다.이 모든 투쟁의 중심에는 송내호 같은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다. 교사였던 그는 무장투쟁 단체를 조직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이며 시대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했다. 그의 형제 중 셋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는데, 어머니의 간절한 만류에 순사가 된 막내아들의 묘비에만 유일하게 태극기 문양이 없다는 사실은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양반 가문이 없어 신분 갈등이 적었고, 일찍부터 외부 세계에 눈떴으며, 교육열이 높았던 소안도의 독특한 환경은 이 작은 섬이 국내외를 아우르는 강력한 저항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