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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기부 릴레이' 첫 주자는 삼성…'불황'에도 500억 쾌척

 삼성이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도 연말 이웃사랑 성금 500억 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하며 재계의 연말 나눔 릴레이에 가장 먼저 불을 지폈다. 삼성은 1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관에서 성금 전달식을 가졌으며, 이 자리에는 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과 장석훈 삼성사회공헌업무총괄 사장을 비롯해, 서준영, 박종찬 삼성전자 노사협의회 사원대표가 함께 참석해 그 의미를 더했다. 매년 변함없이 이어져 온 삼성의 대규모 기부는 '사회와 함께 성장한다'는 기업의 경영 철학을 실천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보다.

 

이번에 전달된 500억 원의 성금은 단일 기업의 기여를 넘어, 삼성의 여러 관계사가 그룹 차원에서 함께 참여해 마련했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삼성전자를 필두로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삼성전기 등 전자 관계사와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 금융 관계사, 그리고 삼성물산, 삼성엔지니어링 등 총 23개 관계사가 동참하여 재원을 모았다. 이렇게 모인 성금은 우리 사회의 미래인 청소년들의 교육 지원 사업과, 도움이 시급한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데 집중적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이는 삼성이 단순한 자선 활동을 넘어, 사회의 근본적인 성장 동력을 키우고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하고자 하는 고민의 결과로 풀이된다.

 


삼성의 나눔은 단순히 거액의 성금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임직원들의 일상 속에 나눔 문화를 확산시키는 다채로운 활동으로 이어진다. 삼성은 유니세프, 굿네이버스 등 7개의 비정부기구(NGO)와 협력하여 제작한 특별한 사회공헌(CSR) 달력 33만 부를 제작해 전 임직원에게 지급한다. 이 달력에는 삼성이 이들 NGO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취약계층 아동 지원 및 청소년 학습 지원 등 주요 CSR 활동 사진과 이야기가 담겨, 임직원들이 회사의 사회공헌 활동에 대한 이해와 자부심을 높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지난달에는 임직원들이 사원증을 키오스크에 태그하는 간편한 방식으로 소외된 아동들을 위해 성금을 기부할 수 있는 '나눔키오스크'가 설치 10주년을 맞이하기도 하는 등, 나눔을 일상 속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문화를 꾸준히 만들어가고 있다.

 

장석훈 사장은 이날 전달식에서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지만, 삼성은 사회와 함께 성장한다는 원칙을 흔들림 없이 지켜가고 있다"고 강조하며, 이번 성금이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는 경제 상황의 변동과 관계없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삼성의 확고한 약속을 재확인한 것이다. 매년 연말, 가장 먼저 대규모 나눔을 실천하는 삼성의 행보는 다른 기업들의 동참을 유도하며 우리 사회 전체의 온기를 높이는 선한 영향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당신이 몰랐던 '항일의 성지'…이 섬에만 365일 태극기가 휘날린다

표지석처럼, 이곳은 인구 2천 명 남짓한 작은 섬에서 무려 8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저항의 성지다. 분단 이후 '빨갱이 섬'이라는 오명 속에 신음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365일 태극기가 휘날리는 민족의 화산으로 자리 잡은 소안도의 뜨거운 역사는 등대와 학교, 그리고 비석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그 저항 정신의 첫 불꽃은 1909년 외딴섬의 등대에서 타올랐다. 동학군 출신 이준하 등 6인은 일본인들이 세운 당사도 등대를 습격해 시설을 파괴하고 일본인들을 살해했다. 이는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빼앗긴 조선인의 독립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소안도 주민 2천여 명 중 800명이 일제의 감시 대상인 '불량선인'으로 낙인찍혔지만, 저항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건은 소안도의 항일 운동에 거대한 불을 지폈다.소안도의 저항은 무력 투쟁에만 그치지 않았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강탈당한 토지 소유권을 되찾기 위해 13년간의 끈질긴 법정 투쟁을 벌여 마침내 승소했다. 주민들은 이를 기념해 1923년 '사립 소안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민족 교육을 통해 항일 인재를 길러내는 독립운동의 핵심 근거지였다. 교사와 학생들은 비밀결사를 조직하며 항일 운동의 최전선에 섰고, 이는 결국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되는 비운을 맞았지만, 그 정신만큼은 꺾을 수 없었다.이 모든 투쟁의 중심에는 송내호 같은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다. 교사였던 그는 무장투쟁 단체를 조직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이며 시대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했다. 그의 형제 중 셋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는데, 어머니의 간절한 만류에 순사가 된 막내아들의 묘비에만 유일하게 태극기 문양이 없다는 사실은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양반 가문이 없어 신분 갈등이 적었고, 일찍부터 외부 세계에 눈떴으며, 교육열이 높았던 소안도의 독특한 환경은 이 작은 섬이 국내외를 아우르는 강력한 저항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