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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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부산시장 가상대결서 민주당 우세

6·3 지방선거의 최대 승부처로 꼽히는 서울시장·부산시장 선거 가상 양자 대결에서 더불어민주당 유력 주자들이 국민의힘 후보들을 모두 오차범위 밖에서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서울과 부산 모두 정권 견제론보다 안정론이 더 높게 나타났고, 이재명 대통령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도 우세해 여권에 유리한 흐름이 감지된다. 다만 투표 의향층 가운데서도 아직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한 응답이 절반을 넘어 향후 60여 일간의 선거전이 판세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1일 공개된 동아일보·리서치앤리서치 여론조사에 따르면 서울시장 가상 양자 대결에서 민주당 정원오 전 성동구청장은 42.6%의 지지율로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28.0%)을 14.6%포인트 앞섰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과 오 시장의 맞대결에서도 박 의원은 39.6%, 오 시장은 28.2%로 집계돼 11.4%포인트 차이를 보였다. 두 조사 모두 오차범위인 ±3.5%포인트를 넘어서는 격차다.

 

특히 올해 1월 발표된 같은 기관 조사에서는 정 전 구청장과 오 시장, 박 의원과 오 시장이 모두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였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민주당 후보들이 두 자릿수 격차를 기록했다. 서울시장 선거 구도가 최근 3개월 사이 뚜렷하게 민주당 쪽으로 기운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부산시장 선거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확인됐다. 민주당 전재수 의원은 국민의힘 박형준 부산시장과의 가상 양자 대결에서 43.7%를 얻어 27.1%에 그친 박 시장을 16.6%포인트 차로 앞섰다. 전 의원은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과의 대결에서도 45.3%를 기록해 25.5%의 주 의원보다 19.8%포인트 높은 지지를 받았다. 부산 역시 여권 후보들이 모두 오차범위 밖 우세를 보인 셈이다.

 

선거 전반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인식 조사에서도 여권에 우호적인 결과가 나왔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당 후보가 더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정부 안정론은 서울에서 47.2%, 부산에서 42.1%로 나타났다. 반면 ‘야당 후보가 더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정부 견제론은 서울 29.3%, 부산 33.3%였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해서도 서울 66.0%, 부산 64.3%가 긍정 평가해 부정 평가를 두 배 이상 웃돌았다.

 


다만 선거 판세를 섣불리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투표 의향이 있다고 밝힌 응답자 중에서도 아직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했다는 비율이 서울 65.8%, 부산 59.6%에 달했기 때문이다. 부동층 비중이 큰 만큼 후보 확정 과정과 선거 전략, 중앙 정치 이슈에 따라 지지 구도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조사는 동아일보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서울은 3월 29~30일, 부산은 3월 28~29일 각각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했다. 서울은 802명, 부산은 804명이 조사에 참여했으며, 무선 전화면접 100% 방식으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5%포인트다.

 

황산벌에 핀 고려의 꿈…개태사 왕건 동상의 비밀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으로, 백제 말기 계백 장군이 이끄는 결사대가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황산벌 전투의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산봉우리가 길게 이어지는 형상 때문에 연산이라는 지명이 붙은 이 일대는 한반도 고대사와 중세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하는 중요한 공간이다.개태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명을 내려 창건한 국가적인 사찰이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 신검의 군대를 이곳 황산벌에서 최종적으로 제압하며 기나긴 전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부처의 은혜와 하늘의 도움으로 통일을 이루었다고 여겨 산의 이름을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의 천호산으로 바꾸고, 태평성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4년의 대공사 끝에 개태사를 완공했다. 이후 이 사찰은 약 450년간 고려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번영을 누렸다.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고려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어진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에 안치된 왕건의 청동상은 의자에 걸터앉아 두 발을 바닥에 내리고 있는 독특한 의좌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불교 미술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언제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미륵보살의 모습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 양식이다. 개태사 어진전의 왕건 동상이 이 같은 자세를 취한 것은 그가 전란을 끝내고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준 구원자이자 태평성대를 이끄는 군주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해석된다.개태사 곳곳에는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고려 초기의 단정하고 안정적인 비례미를 보여주는 오층 석탑과 더불어, 사찰 창건 당시 승려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했던 지름 3미터 크기의 거대한 무쇠 솥인 철확이 눈길을 끈다. 특히 철확은 사찰이 폐허가 된 후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일제강점기 시절 박람회에 전시되는 등 숱한 수난을 겪은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유물로, 개태사의 굴곡진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극락대보전에 모셔진 장중한 규모의 석조여래삼존입상 역시 고려 초기 새 왕조의 강인한 기상과 호국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걸작이다.고려 왕실의 상징이었던 개태사는 조선 시대에 접어들어 억불숭유 정책의 여파로 쇠락의 길을 걷다 결국 폐사지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오랜 세월 텅 빈 벌판으로 방치되었던 절터는 1934년에 이르러서야 옛터의 중심부에 사찰을 다시 세우며 명맥을 잇게 되었다. 현재 복원된 개태사의 규모는 과거 화려했던 고려 시대의 도량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사찰 주변의 넓은 농경지와 마을 땅속에는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고려 시대 개태사의 거대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오랜 세월을 거치며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개태사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찰 입구에 세워진 빛바랜 안내판은 1960년대 초 개태사지에서 발굴되었으나 외부로 유출된 국보 금동대탑의 반환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한 사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물에 대해 사찰 측은 반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1년 법원은 소유권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한 바 있다. 개태사의 옛터에서 출토된 핵심 유물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지역 사회의 역사적 자긍심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