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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축제 뒤 비극…태국 95명 사망

태국 최대 명절인 송끄란 축제 기간 교통사고로 인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또다시 발생했다. 연휴가 시작된 지 사흘 만에 전국에서 95명이 목숨을 잃었고, 부상자도 400명을 훌쩍 넘겼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사망자 수는 줄었지만, 축제철마다 반복되는 교통안전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방콕포스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태국 교통안전운영센터(RSOC)는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송끄란 연휴 첫 3일 동안 전국에서 모두 515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 사고로 95명이 숨지고 486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지역별로 보면 사망자는 수도 방콕에서 가장 많이 나왔다. 방콕에서는 6명이 숨졌고, 사고 건수와 부상자 수는 북부 람팡주가 각각 25건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연휴 셋째 날인 12일 하루에만 171건의 사고가 발생해 24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 원인으로는 과속이 전체의 46%를 차지해 가장 큰 비중을 보였다. 음주 운전은 24.5%로 그 뒤를 이었다. 차량 유형별로는 오토바이 사고가 전체의 77%를 차지해 압도적으로 많았고, 사고의 81%는 직선 구간 도로에서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축제 분위기 속에 이동량이 늘어난 데다, 무리한 운전과 음주가 겹치며 피해를 키운 것으로 분석된다.

 

당국의 단속도 이어지고 있다. 사흘 동안 교통법규 위반으로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운전자는 1750명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 92%는 음주 운전 혐의였다. 지역별 음주 운전 적발 건수는 치앙마이가 246건으로 가장 많았다.

 

태국 정부는 송끄란 기간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미성년자 주류 판매 금지, 물놀이 구역 주변 교통 단속 강화 등 각종 대책을 시행 중이다. RSOC는 특히 물총놀이를 하면서 오토바이를 향해 직접 물을 뿌릴 경우 운전자가 중심을 잃고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또 도로 한복판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달리는 픽업트럭 짐칸에 서 있거나 앉는 행위 역시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송끄란은 태국 전통 새해 명절로, 불상에 물을 뿌리며 복을 기원하던 풍습에서 출발해 오늘날에는 서로 물을 뿌리며 액운을 씻고 안녕을 비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도 등재된 대표 문화행사지만, 한편으로는 매년 대형 교통사고가 반복되며 ‘위험한 축제 연휴’라는 오명도 함께 안고 있다. 태국 언론이 축제 전후 일주일을 ‘위험한 7일’로 부르며 사고 현황을 집중 보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해 집중 관리 기간은 10일부터 16일까지다.

 

황산벌에 핀 고려의 꿈…개태사 왕건 동상의 비밀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으로, 백제 말기 계백 장군이 이끄는 결사대가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황산벌 전투의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산봉우리가 길게 이어지는 형상 때문에 연산이라는 지명이 붙은 이 일대는 한반도 고대사와 중세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하는 중요한 공간이다.개태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명을 내려 창건한 국가적인 사찰이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 신검의 군대를 이곳 황산벌에서 최종적으로 제압하며 기나긴 전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부처의 은혜와 하늘의 도움으로 통일을 이루었다고 여겨 산의 이름을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의 천호산으로 바꾸고, 태평성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4년의 대공사 끝에 개태사를 완공했다. 이후 이 사찰은 약 450년간 고려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번영을 누렸다.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고려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어진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에 안치된 왕건의 청동상은 의자에 걸터앉아 두 발을 바닥에 내리고 있는 독특한 의좌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불교 미술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언제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미륵보살의 모습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 양식이다. 개태사 어진전의 왕건 동상이 이 같은 자세를 취한 것은 그가 전란을 끝내고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준 구원자이자 태평성대를 이끄는 군주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해석된다.개태사 곳곳에는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고려 초기의 단정하고 안정적인 비례미를 보여주는 오층 석탑과 더불어, 사찰 창건 당시 승려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했던 지름 3미터 크기의 거대한 무쇠 솥인 철확이 눈길을 끈다. 특히 철확은 사찰이 폐허가 된 후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일제강점기 시절 박람회에 전시되는 등 숱한 수난을 겪은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유물로, 개태사의 굴곡진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극락대보전에 모셔진 장중한 규모의 석조여래삼존입상 역시 고려 초기 새 왕조의 강인한 기상과 호국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걸작이다.고려 왕실의 상징이었던 개태사는 조선 시대에 접어들어 억불숭유 정책의 여파로 쇠락의 길을 걷다 결국 폐사지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오랜 세월 텅 빈 벌판으로 방치되었던 절터는 1934년에 이르러서야 옛터의 중심부에 사찰을 다시 세우며 명맥을 잇게 되었다. 현재 복원된 개태사의 규모는 과거 화려했던 고려 시대의 도량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사찰 주변의 넓은 농경지와 마을 땅속에는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고려 시대 개태사의 거대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오랜 세월을 거치며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개태사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찰 입구에 세워진 빛바랜 안내판은 1960년대 초 개태사지에서 발굴되었으나 외부로 유출된 국보 금동대탑의 반환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한 사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물에 대해 사찰 측은 반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1년 법원은 소유권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한 바 있다. 개태사의 옛터에서 출토된 핵심 유물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지역 사회의 역사적 자긍심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