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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전쟁은 범죄" 美 법률가 100명의 선전포고

 미국 내 저명한 국제법 전문가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이란 전쟁 수행 방식에 대해 ‘전쟁범죄’ 가능성을 제기하며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100명이 넘는 학자와 전직 관료들은 공개서한을 통해 이번 전쟁이 국제법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있다고 경고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에 강력한 제동을 걸었다.

 

이들은 서한에서 전쟁의 명분 자체가 국제법의 기본 원칙을 위배한다고 지적했다. 유엔 헌장은 임박한 위협에 대한 방어 목적이나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이 있을 때만 무력 사용을 허용하는데, 이번 이란 공격은 두 가지 조건 중 어느 것도 충족하지 못한 명백한 불법 침공이라는 것이다.

 


전쟁의 방식 또한 문제 삼았다. 전문가들은 석유, 가스, 담수화 시설 등 민간 기반시설과 학교, 병원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격이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이란 적십자사와 인권 단체의 보고에 따르면, 전쟁 개시 한 달도 안 돼 어린이 200여 명을 포함한 14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수만 곳의 민간 시설이 파괴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75명의 사망자(대부분 12세 미만 아동)를 낸 이란 남부 미나브 초등학교 폭격 사건을 전쟁범죄의 유력한 증거로 꼽았다. 미군 스스로 표적 오인 가능성을 시사했음에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소행”이라며 책임을 전가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오폭’이라 할지라도, 무모한 작전이었다는 증거가 드러나면 명백한 전쟁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 고위 인사들의 위협적인 발언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적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겠다’는 국방장관의 발언이나, ‘재미 삼아’ 이란을 공격하고 전력 및 수도 시설을 파괴할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그 자체로 국제인도법과 미국 전쟁범죄법이 금지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국제법 준수를 감독하는 군 내 법률 시스템을 의도적으로 무력화시켜왔다고 주장했다. 군사법률가들을 해임하고 민간인 사상자 최소화 팀을 해체하는 등의 조치가 현재의 무분별한 전쟁 수행 방식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이러한 행위가 중동의 비극을 키우고 전 세계의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있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황산벌에 핀 고려의 꿈…개태사 왕건 동상의 비밀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으로, 백제 말기 계백 장군이 이끄는 결사대가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황산벌 전투의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산봉우리가 길게 이어지는 형상 때문에 연산이라는 지명이 붙은 이 일대는 한반도 고대사와 중세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하는 중요한 공간이다.개태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명을 내려 창건한 국가적인 사찰이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 신검의 군대를 이곳 황산벌에서 최종적으로 제압하며 기나긴 전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부처의 은혜와 하늘의 도움으로 통일을 이루었다고 여겨 산의 이름을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의 천호산으로 바꾸고, 태평성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4년의 대공사 끝에 개태사를 완공했다. 이후 이 사찰은 약 450년간 고려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번영을 누렸다.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고려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어진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에 안치된 왕건의 청동상은 의자에 걸터앉아 두 발을 바닥에 내리고 있는 독특한 의좌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불교 미술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언제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미륵보살의 모습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 양식이다. 개태사 어진전의 왕건 동상이 이 같은 자세를 취한 것은 그가 전란을 끝내고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준 구원자이자 태평성대를 이끄는 군주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해석된다.개태사 곳곳에는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고려 초기의 단정하고 안정적인 비례미를 보여주는 오층 석탑과 더불어, 사찰 창건 당시 승려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했던 지름 3미터 크기의 거대한 무쇠 솥인 철확이 눈길을 끈다. 특히 철확은 사찰이 폐허가 된 후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일제강점기 시절 박람회에 전시되는 등 숱한 수난을 겪은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유물로, 개태사의 굴곡진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극락대보전에 모셔진 장중한 규모의 석조여래삼존입상 역시 고려 초기 새 왕조의 강인한 기상과 호국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걸작이다.고려 왕실의 상징이었던 개태사는 조선 시대에 접어들어 억불숭유 정책의 여파로 쇠락의 길을 걷다 결국 폐사지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오랜 세월 텅 빈 벌판으로 방치되었던 절터는 1934년에 이르러서야 옛터의 중심부에 사찰을 다시 세우며 명맥을 잇게 되었다. 현재 복원된 개태사의 규모는 과거 화려했던 고려 시대의 도량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사찰 주변의 넓은 농경지와 마을 땅속에는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고려 시대 개태사의 거대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오랜 세월을 거치며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개태사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찰 입구에 세워진 빛바랜 안내판은 1960년대 초 개태사지에서 발굴되었으나 외부로 유출된 국보 금동대탑의 반환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한 사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물에 대해 사찰 측은 반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1년 법원은 소유권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한 바 있다. 개태사의 옛터에서 출토된 핵심 유물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지역 사회의 역사적 자긍심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