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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서 ‘분홍 코끼리’ 화보 촬영 후 폐사 '동물학대' 시끌

러시아 예술가 줄리아 부룰레바가 인도에서 진행한 이른바 ‘분홍색 코끼리’ 화보가 뒤늦게 거센 논란에 휩싸였다. 촬영에 동원된 65세 코끼리가 수개월 뒤 폐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당 연출이 동물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1일(현지시간) 인도타임즈엔터테인먼트 등에 따르면, 부룰레바는 지난해 12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분홍색으로 칠해진 코끼리와 함께 촬영한 사진과 영상을 공개했다. 공개된 콘텐츠에는 온몸이 밝은 분홍색으로 물든 코끼리 위에, 같은 색감으로 몸을 표현한 모델이 올라탄 모습이 담겼다. 이 촬영은 인도에서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논란은 해당 코끼리가 지난 2월 사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본격화됐다. 온라인상에서는 코끼리의 몸에 사용된 염료와 촬영 과정에서의 스트레스가 건강에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확산됐다. 특히 고령의 동물을 상업적 목적의 연출에 동원한 것 자체가 부적절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에 대해 코끼리 주인 샤딕 칸은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촬영은 약 10분간 진행됐고, 해가 없는 유기농 염료를 사용했다”며 “촬영 직후 코끼리를 바로 씻겼다”고 해명했다. 이어 “코끼리는 65세의 고령이었고, 지난 2월 자연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부룰레바 역시 자신의 SNS를 통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촬영이 끝난 뒤 수개월이 지나 코끼리가 사망했다”며 “내 화보 작업이 죽음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해명에도 불구하고 비판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국제동물보호단체 PETA 인도의 정책 담당 부사장 쿠슈부 굽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화보 촬영을 위해 코끼리를 분홍색으로 칠한 뒤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인도 내 코끼리들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심각한 고통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경고”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사례가 단순한 개별 논란을 넘어, 관광과 전시, 촬영 산업에서 동물이 어떤 방식으로 이용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고 지적했다.

 


누리꾼들의 반응도 싸늘하다. “상업적 이익을 위해 동물을 도구처럼 다뤄선 안 된다”, “자연사라고 해도 촬영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무시할 수 없다”, “고령의 코끼리에게 색을 입히고 사람을 태운 연출 자체가 학대”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현재 현지 당국은 사건 경위와 동물보호 규정 위반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이번 논란은 단순한 예술 표현의 범위를 넘어, 인간의 시각적 욕망을 위해 동물을 어디까지 동원할 수 있는지를 다시 묻는 계기가 되고 있다.

 

황산벌에 핀 고려의 꿈…개태사 왕건 동상의 비밀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으로, 백제 말기 계백 장군이 이끄는 결사대가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황산벌 전투의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산봉우리가 길게 이어지는 형상 때문에 연산이라는 지명이 붙은 이 일대는 한반도 고대사와 중세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하는 중요한 공간이다.개태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명을 내려 창건한 국가적인 사찰이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 신검의 군대를 이곳 황산벌에서 최종적으로 제압하며 기나긴 전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부처의 은혜와 하늘의 도움으로 통일을 이루었다고 여겨 산의 이름을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의 천호산으로 바꾸고, 태평성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4년의 대공사 끝에 개태사를 완공했다. 이후 이 사찰은 약 450년간 고려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번영을 누렸다.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고려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어진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에 안치된 왕건의 청동상은 의자에 걸터앉아 두 발을 바닥에 내리고 있는 독특한 의좌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불교 미술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언제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미륵보살의 모습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 양식이다. 개태사 어진전의 왕건 동상이 이 같은 자세를 취한 것은 그가 전란을 끝내고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준 구원자이자 태평성대를 이끄는 군주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해석된다.개태사 곳곳에는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고려 초기의 단정하고 안정적인 비례미를 보여주는 오층 석탑과 더불어, 사찰 창건 당시 승려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했던 지름 3미터 크기의 거대한 무쇠 솥인 철확이 눈길을 끈다. 특히 철확은 사찰이 폐허가 된 후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일제강점기 시절 박람회에 전시되는 등 숱한 수난을 겪은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유물로, 개태사의 굴곡진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극락대보전에 모셔진 장중한 규모의 석조여래삼존입상 역시 고려 초기 새 왕조의 강인한 기상과 호국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걸작이다.고려 왕실의 상징이었던 개태사는 조선 시대에 접어들어 억불숭유 정책의 여파로 쇠락의 길을 걷다 결국 폐사지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오랜 세월 텅 빈 벌판으로 방치되었던 절터는 1934년에 이르러서야 옛터의 중심부에 사찰을 다시 세우며 명맥을 잇게 되었다. 현재 복원된 개태사의 규모는 과거 화려했던 고려 시대의 도량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사찰 주변의 넓은 농경지와 마을 땅속에는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고려 시대 개태사의 거대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오랜 세월을 거치며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개태사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찰 입구에 세워진 빛바랜 안내판은 1960년대 초 개태사지에서 발굴되었으나 외부로 유출된 국보 금동대탑의 반환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한 사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물에 대해 사찰 측은 반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1년 법원은 소유권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한 바 있다. 개태사의 옛터에서 출토된 핵심 유물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지역 사회의 역사적 자긍심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