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최신

경제최신

더 뉴 아우디 A6, 공기역학 성능 개선

 아우디코리아가 20일 프리미엄 비즈니스 세단 '더 뉴 아우디 A6'를 공식 출시했다. 이번 신형 A6의 가장 큰 특징은 공기역학 성능의 개선으로, 공기저항계수(Cd) 0.23을 기록해 아우디 내연기관 모델 중 역대 최저 수준을 달성했다. 공기저항이 낮아지면 연료 효율성이 높아지고, 고속 주행 시 안정성과 실내 정숙성이 향상된다.

 


신형 A6의 파워트레인은 아우디의 내연기관 전용 플랫폼인 '프리미엄 플랫폼 컴버션(PPC)'을 기반으로 설계되었다. 휘발유 모델은 40 TFSI(203.9마력 전륜), 45 TFSI 콰트로(271.9마력 사륜), 55 TFSI 콰트로(367마력 사륜)로 구성되어 있으며, 경유 모델인 40 TDI 콰트로(204마력)에는 마일드 하이브리드 플러스(MHEV Plus) 시스템이 적용되어 연비와 정숙성을 동시에 강화하였다.

 

공인 복합연비는 디젤 모델이 리터당 15.1㎞로 가장 높으며, 모든 트림에는 7단 S트로닉 변속기가 기본 탑재되어 있다. 실내는 디지털 경험을 강조하여 11.9인치 버추얼 콕핏과 14.5인치 MMI 터치 디스플레이, 최상위 트림 기준의 10.9인치 조수석 디스플레이를 결합한 파노라믹 디스플레이를 적용했다.

 


외관 디자인은 396개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세그먼트로 구성된 2세대 디지털 OLED 후미등을 채택했으며, 전 트림에 뱅앤올룹슨의 16채널 685와트 3차원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이 기본 제공된다. 외장은 어드밴스드와 S-라인 두 가지 스타일로 구분되며, 스위처블 파노라믹 루프와 매트릭스 LED 헤드라이트도 기본 적용되었다.

 

가격은 40 TFSI 컴포트 모델이 6519만원부터 시작하며, 55 TFSI 콰트로 S-라인 모델은 9718만원이다. 아우디코리아는 다음달 20일까지 계약 후 6월 말까지 출고 고객을 대상으로 다양한 구매 혜택을 제공할 예정이다. 아우디코리아 관계자는 "더 뉴 아우디 A6는 아우디 프리미엄 세단의 핵심 가치를 집약한 모델"이라며 "디자인, 공기역학, 디지털 경험에서 완성도를 높였다"고 강조했다.

 

황산벌에 핀 고려의 꿈…개태사 왕건 동상의 비밀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으로, 백제 말기 계백 장군이 이끄는 결사대가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황산벌 전투의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산봉우리가 길게 이어지는 형상 때문에 연산이라는 지명이 붙은 이 일대는 한반도 고대사와 중세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하는 중요한 공간이다.개태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명을 내려 창건한 국가적인 사찰이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 신검의 군대를 이곳 황산벌에서 최종적으로 제압하며 기나긴 전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부처의 은혜와 하늘의 도움으로 통일을 이루었다고 여겨 산의 이름을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의 천호산으로 바꾸고, 태평성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4년의 대공사 끝에 개태사를 완공했다. 이후 이 사찰은 약 450년간 고려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번영을 누렸다.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고려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어진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에 안치된 왕건의 청동상은 의자에 걸터앉아 두 발을 바닥에 내리고 있는 독특한 의좌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불교 미술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언제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미륵보살의 모습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 양식이다. 개태사 어진전의 왕건 동상이 이 같은 자세를 취한 것은 그가 전란을 끝내고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준 구원자이자 태평성대를 이끄는 군주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해석된다.개태사 곳곳에는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고려 초기의 단정하고 안정적인 비례미를 보여주는 오층 석탑과 더불어, 사찰 창건 당시 승려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했던 지름 3미터 크기의 거대한 무쇠 솥인 철확이 눈길을 끈다. 특히 철확은 사찰이 폐허가 된 후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일제강점기 시절 박람회에 전시되는 등 숱한 수난을 겪은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유물로, 개태사의 굴곡진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극락대보전에 모셔진 장중한 규모의 석조여래삼존입상 역시 고려 초기 새 왕조의 강인한 기상과 호국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걸작이다.고려 왕실의 상징이었던 개태사는 조선 시대에 접어들어 억불숭유 정책의 여파로 쇠락의 길을 걷다 결국 폐사지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오랜 세월 텅 빈 벌판으로 방치되었던 절터는 1934년에 이르러서야 옛터의 중심부에 사찰을 다시 세우며 명맥을 잇게 되었다. 현재 복원된 개태사의 규모는 과거 화려했던 고려 시대의 도량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사찰 주변의 넓은 농경지와 마을 땅속에는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고려 시대 개태사의 거대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오랜 세월을 거치며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개태사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찰 입구에 세워진 빛바랜 안내판은 1960년대 초 개태사지에서 발굴되었으나 외부로 유출된 국보 금동대탑의 반환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한 사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물에 대해 사찰 측은 반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1년 법원은 소유권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한 바 있다. 개태사의 옛터에서 출토된 핵심 유물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지역 사회의 역사적 자긍심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