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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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증명한 '꿀잠' 유도 음식이 있다

 편안한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밤새 뒤척인다면, 저녁 식탁에 올리는 음식부터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하루의 피로를 풀고 다음 날의 컨디션을 결정하는 숙면은 건강한 삶의 필수 조건이며, 저녁에 섭취하는 음식이 그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숙면을 돕는 대표적인 영양소는 수면 호르몬이라 불리는 멜라토닌이다. 아몬드나 호두 같은 견과류는 멜라토닌의 좋은 공급원일 뿐만 아니라, 체내 생체 시계를 조절하는 데 도움을 주는 마그네슘과 비타민 B군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 특히 타트 체리 주스는 멜라토닌 함량이 높아 불면증 완화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멜라토닌의 생성을 촉진하는 아미노산인 트립토판이 풍부한 식품을 섭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칠면조 고기나 우유, 요거트, 코티지치즈 같은 유제품에는 트립토판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졸음을 유도할 수 있다. 실제로 잠들기 전 적당량의 단백질을 섭취하면 밤중에 깨는 횟수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도 있다.

 

연어, 고등어, 참치 같은 등푸른 생선 역시 숙면을 위한 훌륭한 선택지다. 이들 생선에 풍부한 비타민 D와 오메가-3 지방산의 조합은 체내 염증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수면 리듬을 조절하는 세로토닌 생성에 직접적으로 관여해 수면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과일 중에서는 키위가 단연 돋보인다. 키위 속 세로토닌 성분은 수면 주기를 조절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풍부한 항산화 성분과 비타민 C는 신체의 염증 반응을 완화해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도록 돕는다. 따뜻한 패션플라워 차 한 잔은 뇌의 흥분을 가라앉히는 감마아미노부티르산(GABA) 생성을 촉진해 불안감을 줄이고 심신을 이완시켜준다.

 

이 외에도 바나나에 풍부한 마그네슘은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고, 오트밀은 멜라토닌을 함유하고 있어 숙면에 도움을 주는 식품으로 꼽힌다. 잠들기 최소 한 시간 전에 혈당지수가 높은 흰쌀밥을 섭취하는 것이 수면의 질을 높인다는 일부 연구도 있지만, 이는 추가적인 검증이 더 필요한 부분이다.

 

황산벌에 핀 고려의 꿈…개태사 왕건 동상의 비밀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으로, 백제 말기 계백 장군이 이끄는 결사대가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황산벌 전투의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산봉우리가 길게 이어지는 형상 때문에 연산이라는 지명이 붙은 이 일대는 한반도 고대사와 중세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하는 중요한 공간이다.개태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명을 내려 창건한 국가적인 사찰이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 신검의 군대를 이곳 황산벌에서 최종적으로 제압하며 기나긴 전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부처의 은혜와 하늘의 도움으로 통일을 이루었다고 여겨 산의 이름을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의 천호산으로 바꾸고, 태평성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4년의 대공사 끝에 개태사를 완공했다. 이후 이 사찰은 약 450년간 고려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번영을 누렸다.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고려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어진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에 안치된 왕건의 청동상은 의자에 걸터앉아 두 발을 바닥에 내리고 있는 독특한 의좌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불교 미술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언제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미륵보살의 모습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 양식이다. 개태사 어진전의 왕건 동상이 이 같은 자세를 취한 것은 그가 전란을 끝내고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준 구원자이자 태평성대를 이끄는 군주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해석된다.개태사 곳곳에는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고려 초기의 단정하고 안정적인 비례미를 보여주는 오층 석탑과 더불어, 사찰 창건 당시 승려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했던 지름 3미터 크기의 거대한 무쇠 솥인 철확이 눈길을 끈다. 특히 철확은 사찰이 폐허가 된 후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일제강점기 시절 박람회에 전시되는 등 숱한 수난을 겪은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유물로, 개태사의 굴곡진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극락대보전에 모셔진 장중한 규모의 석조여래삼존입상 역시 고려 초기 새 왕조의 강인한 기상과 호국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걸작이다.고려 왕실의 상징이었던 개태사는 조선 시대에 접어들어 억불숭유 정책의 여파로 쇠락의 길을 걷다 결국 폐사지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오랜 세월 텅 빈 벌판으로 방치되었던 절터는 1934년에 이르러서야 옛터의 중심부에 사찰을 다시 세우며 명맥을 잇게 되었다. 현재 복원된 개태사의 규모는 과거 화려했던 고려 시대의 도량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사찰 주변의 넓은 농경지와 마을 땅속에는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고려 시대 개태사의 거대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오랜 세월을 거치며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개태사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찰 입구에 세워진 빛바랜 안내판은 1960년대 초 개태사지에서 발굴되었으나 외부로 유출된 국보 금동대탑의 반환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한 사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물에 대해 사찰 측은 반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1년 법원은 소유권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한 바 있다. 개태사의 옛터에서 출토된 핵심 유물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지역 사회의 역사적 자긍심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