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샥즈 신작은 '오픈형'… 진동 없이 편안할까?

 기존의 무선 이어폰과는 확연히 다른 외형을 지닌 샥즈의 신제품 '오픈핏 프로'는 처음 귀에 착용할 때 약간의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올바른 위치를 찾으면 금세 편안함을 느낄 수 있으며, 케이스의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스마트폰과 즉시 연결되는 직관적인 조작성을 갖추고 있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이 제품의 가장 큰 특징은 귓구멍을 막지 않는 개방형 구조에서 오는 쾌적함이다. 귀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커널형 이어폰 특유의 답답함이 전혀 없으며, 음악을 감상하는 동시에 주변의 소리나 자연의 바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야외 활동을 즐기는 러너들이나 귀가 막히는 느낌을 꺼리는 소비자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대안이 된다.

 


같은 제조사에서 출시한 기존의 골전도 방식 이어폰들과 비교해 보면 소리를 전달하는 원리의 차이가 명확하게 다가온다. 뼈를 통해 소리를 전달하여 미세한 떨림이 동반되는 골전도 제품과 달리, 이 기기는 공기를 매질로 삼아 소리를 쏘아 보내는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에 피부에 닿는 물리적인 진동에 대한 거부감 없이 깔끔한 청취가 가능하다.

 

새롭게 도입된 소음 저감 기술은 주변 환경음을 완전히 차단하기보다는 불필요한 잡음만을 적절히 걸러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격렬한 달리기나 움직임 속에서도 귀에 단단히 고정되어 흔들림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운동 중에 이어폰이 바닥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없이 온전히 자신의 페이스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통화 품질 보정 기능 역시 일상생활에서 높은 활용도를 보여준다. 시끄러운 도심이나 바람이 부는 야외에서도 사용자의 목소리만을 선명하게 분리해 전달하며, 챗지피티와 같은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와 연동할 경우 길을 걸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외국어 회화를 연습하거나 정보를 검색하는 스마트한 기기로 탈바꿈한다.

 

다만, 걸으면서 볼륨을 조절하는 등의 물리적 조작 방식이 다소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고, 장시간 착용 시 개인에 따라 귀 주변에 미세한 피로감이 발생할 여지가 존재한다. 무엇보다 기존 자사 제품이나 일반 이어폰들에 비해 상당히 높게 책정된 가격대는 소비자들이 선뜻 지갑을 열기 어렵게 만드는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황산벌에 핀 고려의 꿈…개태사 왕건 동상의 비밀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으로, 백제 말기 계백 장군이 이끄는 결사대가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황산벌 전투의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산봉우리가 길게 이어지는 형상 때문에 연산이라는 지명이 붙은 이 일대는 한반도 고대사와 중세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하는 중요한 공간이다.개태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명을 내려 창건한 국가적인 사찰이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 신검의 군대를 이곳 황산벌에서 최종적으로 제압하며 기나긴 전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부처의 은혜와 하늘의 도움으로 통일을 이루었다고 여겨 산의 이름을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의 천호산으로 바꾸고, 태평성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4년의 대공사 끝에 개태사를 완공했다. 이후 이 사찰은 약 450년간 고려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번영을 누렸다.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고려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어진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에 안치된 왕건의 청동상은 의자에 걸터앉아 두 발을 바닥에 내리고 있는 독특한 의좌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불교 미술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언제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미륵보살의 모습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 양식이다. 개태사 어진전의 왕건 동상이 이 같은 자세를 취한 것은 그가 전란을 끝내고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준 구원자이자 태평성대를 이끄는 군주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해석된다.개태사 곳곳에는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고려 초기의 단정하고 안정적인 비례미를 보여주는 오층 석탑과 더불어, 사찰 창건 당시 승려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했던 지름 3미터 크기의 거대한 무쇠 솥인 철확이 눈길을 끈다. 특히 철확은 사찰이 폐허가 된 후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일제강점기 시절 박람회에 전시되는 등 숱한 수난을 겪은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유물로, 개태사의 굴곡진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극락대보전에 모셔진 장중한 규모의 석조여래삼존입상 역시 고려 초기 새 왕조의 강인한 기상과 호국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걸작이다.고려 왕실의 상징이었던 개태사는 조선 시대에 접어들어 억불숭유 정책의 여파로 쇠락의 길을 걷다 결국 폐사지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오랜 세월 텅 빈 벌판으로 방치되었던 절터는 1934년에 이르러서야 옛터의 중심부에 사찰을 다시 세우며 명맥을 잇게 되었다. 현재 복원된 개태사의 규모는 과거 화려했던 고려 시대의 도량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사찰 주변의 넓은 농경지와 마을 땅속에는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고려 시대 개태사의 거대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오랜 세월을 거치며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개태사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찰 입구에 세워진 빛바랜 안내판은 1960년대 초 개태사지에서 발굴되었으나 외부로 유출된 국보 금동대탑의 반환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한 사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물에 대해 사찰 측은 반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1년 법원은 소유권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한 바 있다. 개태사의 옛터에서 출토된 핵심 유물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지역 사회의 역사적 자긍심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