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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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어게인' 늪에 빠져버린 국민의힘

 국민의힘이 다가오는 6·3 지방선거에서 대구광역시장 후보로 추경호 의원을 최종 낙점하면서 당 안팎에서 거센 후폭풍이 일고 있다. 보수 진영의 원로급 인사인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이번 공천 결과를 두고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며 당 지도부의 결정에 강한 의구심을 표출했다. 특히 추 의원이 과거 12·3 비상계엄 사태와 연루되어 내란 관련 혐의로 사법 처리 절차를 밟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공천장을 쥐여준 것은 일반적인 상식에 크게 어긋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조 대표는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당 공천관리위원회의 결정이 대구 지역 유권자들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야권의 유력 주자인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와 맞붙어야 하는 중대한 선거에서 중도층의 표심을 잃을 수 있는 인물을 내세운 것은 명백한 패착이라고 분석했다. 유권자들에게 형사 재판을 받는 후보와 야당 후보 중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형국이 되면서 텃밭인 대구 민심의 이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이번 공천 사태의 배후에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조 대표는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여전히 과거 권력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당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이 특정 세력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는 당내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불공정 시비와 맞물려 현 지도부의 리더십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론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충청북도지사 후보 경선 과정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과거 윤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과정에서 법률 대리인을 맡았던 윤갑근 변호사가 본경선 진출자에 포함된 것을 두고 당내 형평성 논란이 일었다. 원래대로라면 공천 배제 대상에 포함되어야 할 인물이 경선 무대에 오른 것은 특혜라는 비판이 나온다. 조 대표는 이를 근거로 현재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후보 선출 과정 전반이 이른바 친윤 세력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규정했다.

 


부산 지역의 선거 구도와 관련해서도 당 지도부를 향한 쓴소리가 이어졌다. 올해 초 당적을 잃고 무소속으로 부산 북구갑 출마를 선언한 한동훈 전 대표의 지역구에 국민의힘이 대항마를 내보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보수 성향의 유권자 표심이 분산될 경우 결과적으로 더불어민주당에 어부지리를 안겨줄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에서다. 조 대표는 한 전 대표가 해당 지역에서 자유롭게 선거전을 치르도록 방치하는 것이 오히려 부산시장 및 경상남도지사 선거 등 부울경 전체 판세에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러한 당 내외의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일정에 따라 지방선거 후보자 등록 절차를 강행할 방침이다. 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적법한 경선 룰에 따라 모든 후보가 결정되었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며 추가적인 이의 제기를 일축했다. 각 지역별 후보자들은 선거대책위원회 구성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본선 체제로 전환하여 유권자들을 만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황산벌에 핀 고려의 꿈…개태사 왕건 동상의 비밀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으로, 백제 말기 계백 장군이 이끄는 결사대가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황산벌 전투의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산봉우리가 길게 이어지는 형상 때문에 연산이라는 지명이 붙은 이 일대는 한반도 고대사와 중세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하는 중요한 공간이다.개태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명을 내려 창건한 국가적인 사찰이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 신검의 군대를 이곳 황산벌에서 최종적으로 제압하며 기나긴 전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부처의 은혜와 하늘의 도움으로 통일을 이루었다고 여겨 산의 이름을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의 천호산으로 바꾸고, 태평성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4년의 대공사 끝에 개태사를 완공했다. 이후 이 사찰은 약 450년간 고려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번영을 누렸다.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고려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어진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에 안치된 왕건의 청동상은 의자에 걸터앉아 두 발을 바닥에 내리고 있는 독특한 의좌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불교 미술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언제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미륵보살의 모습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 양식이다. 개태사 어진전의 왕건 동상이 이 같은 자세를 취한 것은 그가 전란을 끝내고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준 구원자이자 태평성대를 이끄는 군주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해석된다.개태사 곳곳에는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고려 초기의 단정하고 안정적인 비례미를 보여주는 오층 석탑과 더불어, 사찰 창건 당시 승려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했던 지름 3미터 크기의 거대한 무쇠 솥인 철확이 눈길을 끈다. 특히 철확은 사찰이 폐허가 된 후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일제강점기 시절 박람회에 전시되는 등 숱한 수난을 겪은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유물로, 개태사의 굴곡진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극락대보전에 모셔진 장중한 규모의 석조여래삼존입상 역시 고려 초기 새 왕조의 강인한 기상과 호국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걸작이다.고려 왕실의 상징이었던 개태사는 조선 시대에 접어들어 억불숭유 정책의 여파로 쇠락의 길을 걷다 결국 폐사지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오랜 세월 텅 빈 벌판으로 방치되었던 절터는 1934년에 이르러서야 옛터의 중심부에 사찰을 다시 세우며 명맥을 잇게 되었다. 현재 복원된 개태사의 규모는 과거 화려했던 고려 시대의 도량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사찰 주변의 넓은 농경지와 마을 땅속에는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고려 시대 개태사의 거대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오랜 세월을 거치며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개태사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찰 입구에 세워진 빛바랜 안내판은 1960년대 초 개태사지에서 발굴되었으나 외부로 유출된 국보 금동대탑의 반환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한 사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물에 대해 사찰 측은 반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1년 법원은 소유권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한 바 있다. 개태사의 옛터에서 출토된 핵심 유물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지역 사회의 역사적 자긍심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