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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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위 전격 출범 "한자 가르쳐라" vs "암기일 뿐" 문해력 위기 속 깊어지는 논쟁

 국가교육위원회가 최근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부상한 학생들의 문해력 저하 현상을 진단하고 중장기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문해력 특별위원회’를 공식 출범시켰다.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위촉식 및 첫 회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특위는 교육 현장의 전문가와 학계 인사 등 16명으로 구성되어 향후 6개월간 정책 방안을 논의한다. 이번 특위 구성은 단순히 읽고 쓰는 능력을 넘어, 디지털 환경에서 쏟아지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특위의 활동 방향 중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대목은 단연 한자 교육의 강화 여부다. 이는 전날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우리말 어휘의 상당수가 한자어임을 지적하며 교육 현장에서의 한자 학습 필요성을 직접 언급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대통령은 일상적인 어휘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실태를 우려하며, 가정과 학교에서 한자 교육이 소홀해진 점을 짚었다. 이에 따라 국교위는 한자 교육 문제를 성역 없이 논의 테이블에 올리겠다는 개방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사회적 합의 도출에 나설 계획이다.

 


교육계 내부에서는 한자 교육 강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한문 교육 전문가들은 우리말 단어의 70% 이상이 한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한자를 모르는 상태에서의 국어 학습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초등학교 교과서부터 주요 용어에 한자를 병기하거나 노출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어휘의 의미를 체득하게 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제안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학습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영역에 한자 관련 문항을 직접 포함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까지 제기하며 국가 차원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반면 한자 교육과 문해력 사이의 상관관계가 과장되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어교육 전문가들은 한자 병기 없이도 우리 사회가 수십 년간 원활하게 소통해 왔다는 점을 근거로, 특정 어휘를 모르는 현상을 문해력 전체의 위기로 확대 해석하는 것을 경계한다. 이들은 현대 사회에 필요한 문해력이 단순한 어휘 암기가 아닌 텍스트의 맥락을 파악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사고력에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한자 암기 위주의 교육으로 회귀하기보다는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비판적 읽기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특위는 앞으로 독서 교육의 내실화와 글쓰기 능력 향상, 어휘력 확충 등 문해력 신장을 위한 다각적인 주제를 다룰 예정이다. 김경회 특위 위원장은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학부모와 교사 등 교육 주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한자 교육 문제는 찬반 양론이 팽팽한 만큼, 공청회 등을 통해 폭넓은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국교위는 이번 특위 활동이 학생들의 언어 생활을 풍부하게 하고 기초 학력을 탄탄히 다지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첫 회의에서는 위원들 간의 상견례와 운영 원칙 등 기초적인 논의가 진행되었으나, 향후 회의가 거듭될수록 한자 병기 도입이나 수능 연계 여부 등 민감한 사안들이 본격적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교육부 역시 특위의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수업 방식의 변화와 교육과정 개편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이번 국교위의 행보에 교육계의 모든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디지털 대전환 시대를 맞이한 대한민국 교실이 문해력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언어 교육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을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황산벌에 핀 고려의 꿈…개태사 왕건 동상의 비밀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으로, 백제 말기 계백 장군이 이끄는 결사대가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황산벌 전투의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산봉우리가 길게 이어지는 형상 때문에 연산이라는 지명이 붙은 이 일대는 한반도 고대사와 중세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하는 중요한 공간이다.개태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명을 내려 창건한 국가적인 사찰이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 신검의 군대를 이곳 황산벌에서 최종적으로 제압하며 기나긴 전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부처의 은혜와 하늘의 도움으로 통일을 이루었다고 여겨 산의 이름을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의 천호산으로 바꾸고, 태평성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4년의 대공사 끝에 개태사를 완공했다. 이후 이 사찰은 약 450년간 고려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번영을 누렸다.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고려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어진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에 안치된 왕건의 청동상은 의자에 걸터앉아 두 발을 바닥에 내리고 있는 독특한 의좌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불교 미술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언제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미륵보살의 모습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 양식이다. 개태사 어진전의 왕건 동상이 이 같은 자세를 취한 것은 그가 전란을 끝내고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준 구원자이자 태평성대를 이끄는 군주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해석된다.개태사 곳곳에는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고려 초기의 단정하고 안정적인 비례미를 보여주는 오층 석탑과 더불어, 사찰 창건 당시 승려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했던 지름 3미터 크기의 거대한 무쇠 솥인 철확이 눈길을 끈다. 특히 철확은 사찰이 폐허가 된 후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일제강점기 시절 박람회에 전시되는 등 숱한 수난을 겪은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유물로, 개태사의 굴곡진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극락대보전에 모셔진 장중한 규모의 석조여래삼존입상 역시 고려 초기 새 왕조의 강인한 기상과 호국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걸작이다.고려 왕실의 상징이었던 개태사는 조선 시대에 접어들어 억불숭유 정책의 여파로 쇠락의 길을 걷다 결국 폐사지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오랜 세월 텅 빈 벌판으로 방치되었던 절터는 1934년에 이르러서야 옛터의 중심부에 사찰을 다시 세우며 명맥을 잇게 되었다. 현재 복원된 개태사의 규모는 과거 화려했던 고려 시대의 도량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사찰 주변의 넓은 농경지와 마을 땅속에는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고려 시대 개태사의 거대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오랜 세월을 거치며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개태사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찰 입구에 세워진 빛바랜 안내판은 1960년대 초 개태사지에서 발굴되었으나 외부로 유출된 국보 금동대탑의 반환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한 사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물에 대해 사찰 측은 반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1년 법원은 소유권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한 바 있다. 개태사의 옛터에서 출토된 핵심 유물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지역 사회의 역사적 자긍심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