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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던 ‘시카다’ 변이, 한국서 번진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가운데 일명 ‘시카다(Cicada·매미)’로 불리는 BA.3.2 계통이 국내에서 빠르게 확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아직 중증도나 치명률에 대한 충분한 데이터는 확보되지 않았지만, 국내 점유율이 최근 몇 달 사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방역 당국과 의료계의 경계가 커지고 있다.

 

16일(현지시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이달 13일까지 BA.3.2 변이가 보고된 국가는 한국과 일본, 미국 등을 포함해 전 세계 33개국에 달한다. 미국에서는 지난 2월 기준 최소 25개 주에서 감염 사례가 확인된 것으로 집계됐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도쿄에서 지난 1월 19일부터 25일 사이 채취한 검체에서 해당 변이가 처음 검출됐다고 전했다.

 

국내에서도 확산 속도는 뚜렷하다. 질병관리청의 코로나19 바이러스 세부 계통 점유율 자료를 보면 BA.3.2 비중은 지난 1월 3.3%에 그쳤지만 2월 12.2%로 오른 데 이어 3월에는 23.1%까지 상승했다. 불과 석 달 만에 존재감이 크게 커진 셈이다.

 


‘시카다’라는 별칭은 이 변이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몸속에서 비교적 오랜 기간 잠복하다가 뒤늦게 모습을 드러내는 양상이 땅속에서 유충 상태로 오래 지내다 지상으로 나오는 매미를 떠올리게 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BA.3.2는 2024년 11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처음 발견됐다. 이후 지난해 4월 유럽에서 산발적인 감염이 보고됐지만 당시에는 대규모 확산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해 9월을 기점으로 다시 검출 사례가 늘면서 주요 감시 대상 변이로 부상했다.

 

이 변이가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유전자 변이 폭이다. 직전 유행형으로 분류된 JN.1 계열과 비교해 70~75개의 돌연변이가 확인되면서 기존 백신이나 면역 반응의 방어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사토 게이 도쿄대 바이러스학 교수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진화한 뒤 나타난 변이”라며 “백신 접종으로 형성된 항체가 충분한 효과를 내기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12월 BA.3.2를 감시 대상 병원체로 지정했다. 다만 아직 연구가 충분하지 않아 실제 감염 규모와 중증화 위험, 입원율, 사망률 등 핵심 지표는 명확히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전문가들은 BA.3.2가 다시 세계적 대유행을 일으킬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면서도 감염자 수 자체는 당분간 증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고령층과 당뇨병, 고혈압 등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개인 위생 관리와 건강 모니터링에 더 신경 써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황산벌에 핀 고려의 꿈…개태사 왕건 동상의 비밀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으로, 백제 말기 계백 장군이 이끄는 결사대가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황산벌 전투의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산봉우리가 길게 이어지는 형상 때문에 연산이라는 지명이 붙은 이 일대는 한반도 고대사와 중세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하는 중요한 공간이다.개태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명을 내려 창건한 국가적인 사찰이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 신검의 군대를 이곳 황산벌에서 최종적으로 제압하며 기나긴 전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부처의 은혜와 하늘의 도움으로 통일을 이루었다고 여겨 산의 이름을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의 천호산으로 바꾸고, 태평성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4년의 대공사 끝에 개태사를 완공했다. 이후 이 사찰은 약 450년간 고려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번영을 누렸다.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고려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어진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에 안치된 왕건의 청동상은 의자에 걸터앉아 두 발을 바닥에 내리고 있는 독특한 의좌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불교 미술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언제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미륵보살의 모습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 양식이다. 개태사 어진전의 왕건 동상이 이 같은 자세를 취한 것은 그가 전란을 끝내고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준 구원자이자 태평성대를 이끄는 군주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해석된다.개태사 곳곳에는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고려 초기의 단정하고 안정적인 비례미를 보여주는 오층 석탑과 더불어, 사찰 창건 당시 승려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했던 지름 3미터 크기의 거대한 무쇠 솥인 철확이 눈길을 끈다. 특히 철확은 사찰이 폐허가 된 후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일제강점기 시절 박람회에 전시되는 등 숱한 수난을 겪은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유물로, 개태사의 굴곡진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극락대보전에 모셔진 장중한 규모의 석조여래삼존입상 역시 고려 초기 새 왕조의 강인한 기상과 호국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걸작이다.고려 왕실의 상징이었던 개태사는 조선 시대에 접어들어 억불숭유 정책의 여파로 쇠락의 길을 걷다 결국 폐사지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오랜 세월 텅 빈 벌판으로 방치되었던 절터는 1934년에 이르러서야 옛터의 중심부에 사찰을 다시 세우며 명맥을 잇게 되었다. 현재 복원된 개태사의 규모는 과거 화려했던 고려 시대의 도량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사찰 주변의 넓은 농경지와 마을 땅속에는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고려 시대 개태사의 거대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오랜 세월을 거치며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개태사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찰 입구에 세워진 빛바랜 안내판은 1960년대 초 개태사지에서 발굴되었으나 외부로 유출된 국보 금동대탑의 반환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한 사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물에 대해 사찰 측은 반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1년 법원은 소유권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한 바 있다. 개태사의 옛터에서 출토된 핵심 유물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지역 사회의 역사적 자긍심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