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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해상 드론으로 호르무즈 기뢰 제거

 미군이 호르무즈 해협의 기뢰 제거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해상 드론과 훈련된 돌고래 등 다양한 대기뢰 전력을 동원해 상선 통행 재개를 준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이 해협 봉쇄를 완전히 풀지 않은 가운데 미국은 좁은 항로부터 다시 열어 해협 정상화를 노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군은 유·무인 전력을 함께 투입하여 기뢰 제거 작전을 진행하고 있다. 해상 드론은 무인 수상정과 무인 잠수정을 포함해 수중 음파 탐지기로 바닷속 기뢰를 탐지한다. 이는 선원을 위험에 노출하지 않고 기뢰를 찾아내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미 해군은 이러한 무인 전력에 기대를 걸고 있다.

 


미 해군이 로봇을 통해 기뢰 제거 작업을 수행하는 이유는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스콧 사비츠 랜드연구소 연구원은 "일부를 잃더라도 대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기뢰 제거 함정을 점차 퇴역시키고 있는 미 해군은 해상 드론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

 

현재 미 해군이 운용할 수 있는 대기뢰 전력은 해상 드론, 무인 잠수정, 훈련된 돌고래 등으로 다양하다. 미 해군의 돌고래는 기뢰를 직접 폭파하는 것이 아니라 수중에서 위치를 찾아 표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러한 전력은 기뢰 제거 작전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기뢰 제거 작업은 설치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 비교적 값싼 기뢰 몇 발만 있어도 항로 전체를 멈춰 세울 수 있으며, 실제 제거 작업은 수주에서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 이란이 얼마나 많은 기뢰를 설치했는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소형 선박을 이용해 은밀하게 설치했을 경우 탐지와 제거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미국이 기뢰 제거 작업을 서두르는 이유는 안전 문제뿐만 아니라 해협 통행을 단계적으로 재개하기 위해서다. 전쟁 전 하루 약 130척이 오가던 호르무즈 해협은 이제 5~10척만 이동하는 호송 체계로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 정상화까지는 수주 또는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황산벌에 핀 고려의 꿈…개태사 왕건 동상의 비밀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으로, 백제 말기 계백 장군이 이끄는 결사대가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황산벌 전투의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산봉우리가 길게 이어지는 형상 때문에 연산이라는 지명이 붙은 이 일대는 한반도 고대사와 중세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하는 중요한 공간이다.개태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명을 내려 창건한 국가적인 사찰이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 신검의 군대를 이곳 황산벌에서 최종적으로 제압하며 기나긴 전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부처의 은혜와 하늘의 도움으로 통일을 이루었다고 여겨 산의 이름을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의 천호산으로 바꾸고, 태평성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4년의 대공사 끝에 개태사를 완공했다. 이후 이 사찰은 약 450년간 고려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번영을 누렸다.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고려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어진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에 안치된 왕건의 청동상은 의자에 걸터앉아 두 발을 바닥에 내리고 있는 독특한 의좌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불교 미술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언제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미륵보살의 모습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 양식이다. 개태사 어진전의 왕건 동상이 이 같은 자세를 취한 것은 그가 전란을 끝내고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준 구원자이자 태평성대를 이끄는 군주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해석된다.개태사 곳곳에는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고려 초기의 단정하고 안정적인 비례미를 보여주는 오층 석탑과 더불어, 사찰 창건 당시 승려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했던 지름 3미터 크기의 거대한 무쇠 솥인 철확이 눈길을 끈다. 특히 철확은 사찰이 폐허가 된 후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일제강점기 시절 박람회에 전시되는 등 숱한 수난을 겪은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유물로, 개태사의 굴곡진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극락대보전에 모셔진 장중한 규모의 석조여래삼존입상 역시 고려 초기 새 왕조의 강인한 기상과 호국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걸작이다.고려 왕실의 상징이었던 개태사는 조선 시대에 접어들어 억불숭유 정책의 여파로 쇠락의 길을 걷다 결국 폐사지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오랜 세월 텅 빈 벌판으로 방치되었던 절터는 1934년에 이르러서야 옛터의 중심부에 사찰을 다시 세우며 명맥을 잇게 되었다. 현재 복원된 개태사의 규모는 과거 화려했던 고려 시대의 도량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사찰 주변의 넓은 농경지와 마을 땅속에는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고려 시대 개태사의 거대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오랜 세월을 거치며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개태사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찰 입구에 세워진 빛바랜 안내판은 1960년대 초 개태사지에서 발굴되었으나 외부로 유출된 국보 금동대탑의 반환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한 사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물에 대해 사찰 측은 반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1년 법원은 소유권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한 바 있다. 개태사의 옛터에서 출토된 핵심 유물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지역 사회의 역사적 자긍심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