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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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JCPOA 비판하며 새로운 합의 주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과의 휴전 만료를 앞두고 이란의 새 지도부에 대해 “현명하다면 위대하고 번영하는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종전 협상 타결을 촉구했다. 그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란전쟁에 대한 언론 보도를 비판하며 이란의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초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미군에 압송된 이후 베네수엘라가 트럼프 행정부와의 밀착 속에 석유 수출길이 열리고 대외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란도 같은 미래를 맞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이란과의 합의가 이루어질 경우 경제적 지원이 있을 것이라는 암시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5년 버락 오바마 전임 행정부 때 체결된 이란 핵 합의(JCPOA)에 대해 “역대 최악의 협정 중 하나”라고 비판하며, 자신이 추진 중인 새로운 합의가 훨씬 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될 위험성을 강조하며, 자신이 합의를 파기하지 않았다면 중동 전역에 핵무기가 사용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은 미국의 위협 아래에서는 협상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테이블을 항복의 테이블로 바꾸려 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이란은 전장에서 새로운 카드를 꺼낼 준비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이란 간의 2주 휴전이 임박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JD 밴스 부통령이 이끄는 협상단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로 파견했다. 이란은 아직 공식적으로 대표단을 파견했다는 발표는 하지 않고 있으며, 협상 종료 시한이 다가오고 있어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JCPOA보다 더 강한 조건의 새로운 합의를 협상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란과의 협상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며, 양국 간의 긴장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협상 결과가 주목받고 있다.

 

황산벌에 핀 고려의 꿈…개태사 왕건 동상의 비밀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으로, 백제 말기 계백 장군이 이끄는 결사대가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황산벌 전투의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산봉우리가 길게 이어지는 형상 때문에 연산이라는 지명이 붙은 이 일대는 한반도 고대사와 중세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하는 중요한 공간이다.개태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명을 내려 창건한 국가적인 사찰이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 신검의 군대를 이곳 황산벌에서 최종적으로 제압하며 기나긴 전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부처의 은혜와 하늘의 도움으로 통일을 이루었다고 여겨 산의 이름을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의 천호산으로 바꾸고, 태평성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4년의 대공사 끝에 개태사를 완공했다. 이후 이 사찰은 약 450년간 고려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번영을 누렸다.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고려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어진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에 안치된 왕건의 청동상은 의자에 걸터앉아 두 발을 바닥에 내리고 있는 독특한 의좌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불교 미술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언제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미륵보살의 모습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 양식이다. 개태사 어진전의 왕건 동상이 이 같은 자세를 취한 것은 그가 전란을 끝내고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준 구원자이자 태평성대를 이끄는 군주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해석된다.개태사 곳곳에는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고려 초기의 단정하고 안정적인 비례미를 보여주는 오층 석탑과 더불어, 사찰 창건 당시 승려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했던 지름 3미터 크기의 거대한 무쇠 솥인 철확이 눈길을 끈다. 특히 철확은 사찰이 폐허가 된 후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일제강점기 시절 박람회에 전시되는 등 숱한 수난을 겪은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유물로, 개태사의 굴곡진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극락대보전에 모셔진 장중한 규모의 석조여래삼존입상 역시 고려 초기 새 왕조의 강인한 기상과 호국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걸작이다.고려 왕실의 상징이었던 개태사는 조선 시대에 접어들어 억불숭유 정책의 여파로 쇠락의 길을 걷다 결국 폐사지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오랜 세월 텅 빈 벌판으로 방치되었던 절터는 1934년에 이르러서야 옛터의 중심부에 사찰을 다시 세우며 명맥을 잇게 되었다. 현재 복원된 개태사의 규모는 과거 화려했던 고려 시대의 도량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사찰 주변의 넓은 농경지와 마을 땅속에는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고려 시대 개태사의 거대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오랜 세월을 거치며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개태사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찰 입구에 세워진 빛바랜 안내판은 1960년대 초 개태사지에서 발굴되었으나 외부로 유출된 국보 금동대탑의 반환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한 사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물에 대해 사찰 측은 반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1년 법원은 소유권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한 바 있다. 개태사의 옛터에서 출토된 핵심 유물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지역 사회의 역사적 자긍심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