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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도권 5만원 더…취약계층 고유가 지원금 시작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한부모가족 등 취약계층은 27일부터 고유가 피해지원금 1차 신청을 할 수 있다. 최근 물가 상승과 에너지 비용 부담이 이어지면서 정부가 저소득층 지원에 나선 것이다.

 

이번 1차 지급에서 기초생활수급자는 1인당 55만원, 차상위계층과 한부모가족은 1인당 45만원을 받는다. 비수도권 거주자 또는 인구감소지역 주민에게는 5만원이 추가로 지급돼 개인별 지원액은 최대 60만원까지 늘어난다.

 

신청 기간은 27일 오전 9시부터 5월 8일 오후 6시까지다. 신청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가능하며, 지급 방식은 신용·체크카드, 선불카드, 지역사랑상품권 중에서 고를 수 있다. 다만 첫 주에는 신청자가 한꺼번에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출생연도 끝자리를 기준으로 요일제가 적용된다. 정부는 노동절인 5월 1일이 공휴일인 점을 감안해 전날인 4월 30일에는 끝자리가 4·9인 신청자뿐 아니라 5·0인 신청자도 함께 접수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급 방식에 따라 신청 창구는 달라진다. 카드 충전 형태를 원할 경우 카드사 홈페이지나 앱, 콜센터를 이용하면 된다. 모바일 또는 카드형 지역사랑상품권은 지자체의 상품권 앱이나 누리집에서 신청할 수 있다. 지류형 상품권이나 선불카드를 받으려면 주소지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해야 한다.

 

지원금은 8월 31일까지 사용할 수 있다. 미사용 금액은 이후 자동으로 사라진다. 사용 지역은 주민등록상 주소지 기준으로 제한되며, 특별시·광역시 주민은 해당 시에서, 도 지역 주민은 주소지 시·군에서만 쓸 수 있다. 사용 가능한 곳은 연매출 30억원 이하 소상공인 매장 등으로 제한된다. 온라인 쇼핑몰과 배달앱, 유흥·사행업종, 환금성 업종에서는 결제가 불가능하다. 다만 매장에서 가맹점 단말기로 직접 결제하는 방식은 허용된다.

 


1차 기간에 신청하지 못한 경우에는 5월 18일부터 7월 3일까지 이어지는 2차 지급 기간을 이용할 수 있다. 2차 지급은 1차 대상자를 포함해 소득 하위 70%까지 확대될 예정이며, 세부 기준은 다음 달 초 공개된다. 정부는 사용 가능 매장 정보를 민간 지도앱을 통해 제공하고, 지원 대상이나 금액에 대한 이의신청도 다음 달 18일부터 7월 17일까지 받을 계획이다.

 

황산벌에 핀 고려의 꿈…개태사 왕건 동상의 비밀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으로, 백제 말기 계백 장군이 이끄는 결사대가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황산벌 전투의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산봉우리가 길게 이어지는 형상 때문에 연산이라는 지명이 붙은 이 일대는 한반도 고대사와 중세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하는 중요한 공간이다.개태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명을 내려 창건한 국가적인 사찰이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 신검의 군대를 이곳 황산벌에서 최종적으로 제압하며 기나긴 전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부처의 은혜와 하늘의 도움으로 통일을 이루었다고 여겨 산의 이름을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의 천호산으로 바꾸고, 태평성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4년의 대공사 끝에 개태사를 완공했다. 이후 이 사찰은 약 450년간 고려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번영을 누렸다.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고려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어진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에 안치된 왕건의 청동상은 의자에 걸터앉아 두 발을 바닥에 내리고 있는 독특한 의좌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불교 미술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언제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미륵보살의 모습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 양식이다. 개태사 어진전의 왕건 동상이 이 같은 자세를 취한 것은 그가 전란을 끝내고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준 구원자이자 태평성대를 이끄는 군주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해석된다.개태사 곳곳에는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고려 초기의 단정하고 안정적인 비례미를 보여주는 오층 석탑과 더불어, 사찰 창건 당시 승려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했던 지름 3미터 크기의 거대한 무쇠 솥인 철확이 눈길을 끈다. 특히 철확은 사찰이 폐허가 된 후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일제강점기 시절 박람회에 전시되는 등 숱한 수난을 겪은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유물로, 개태사의 굴곡진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극락대보전에 모셔진 장중한 규모의 석조여래삼존입상 역시 고려 초기 새 왕조의 강인한 기상과 호국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걸작이다.고려 왕실의 상징이었던 개태사는 조선 시대에 접어들어 억불숭유 정책의 여파로 쇠락의 길을 걷다 결국 폐사지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오랜 세월 텅 빈 벌판으로 방치되었던 절터는 1934년에 이르러서야 옛터의 중심부에 사찰을 다시 세우며 명맥을 잇게 되었다. 현재 복원된 개태사의 규모는 과거 화려했던 고려 시대의 도량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사찰 주변의 넓은 농경지와 마을 땅속에는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고려 시대 개태사의 거대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오랜 세월을 거치며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개태사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찰 입구에 세워진 빛바랜 안내판은 1960년대 초 개태사지에서 발굴되었으나 외부로 유출된 국보 금동대탑의 반환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한 사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물에 대해 사찰 측은 반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1년 법원은 소유권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한 바 있다. 개태사의 옛터에서 출토된 핵심 유물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지역 사회의 역사적 자긍심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