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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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혁 사퇴론 속 국힘 중진 선대위 카드 꺼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기현(5선)·나경원(5선)·안철수(4선) 의원에게 공동선거대책위원장직을 제안한 것으로 26일 파악됐다. 장동혁 대표를 둘러싼 책임론과 사퇴론이 확산하는 가운데, 당 안팎의 불안한 기류를 중진 중심 선대위 체제로 돌파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이번 제안은 송언석 원내대표가 직접 중진 의원들에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송 원내대표는 지난 24일 안철수 의원과 독대한 자리에서 “당이 위기 상황인 만큼 선대위원장을 맡아 달라”는 뜻을 전했고, 안 의원은 지역 선거 준비 상황을 고려해 수락 여부를 고민해보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 원내대표는 이에 앞서 23일 김기현 의원과 만나 같은 제안을 했고, 나경원 의원에게도 최근 비슷한 취지의 요청을 전달했다. 다만 세 의원 모두 즉답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과 나 의원은 아직 확답할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지도부가 중진 의원들을 전면에 세우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최근 당내 리더십 논란과 무관치 않다. 장 대표는 지난 11일부터 20일까지 이어진 방미 일정을 마친 뒤 당 안팎에서 사퇴론에 직면했다. 이에 따라 지도부 체제가 선거를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커졌고, 당 내부에서는 국면 전환을 위한 선대위 조기 출범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대표 사퇴론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당 분위기를 바꾸려면 선대위 발족이 사실상 유일한 카드”라고 말했다. 또 다른 원내 인사 역시 “대선주자급 인지도를 갖춘 중진들이 공동선대위원장을 맡는 구성이 현재로선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라고 전했다.

 

당 사무처도 최근 외부 인사 영입보다는 4선 이상 중진을 포함한 내부 인사 중심의 공동선대위원장 체제를 지도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국민의힘이 승리한 2022년 6월 지방선거 당시에도 이준석 대표가 상임선대위원장을 맡고, 권성동·김기현 의원이 공동선대위원장을 맡는 방식으로 선대위가 꾸려진 바 있다.

 

다만 변수는 장 대표의 역할이다. 당내 일각에서는 장 대표가 상임선대위원장을 맡는 방안에 부정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영남권의 한 중진 의원은 “리더십이 흔들린 대표가 백의종군은커녕 상임선대위원장까지 맡는다면, 중진 의원들 역시 선대위 참여를 주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장 대표는 사퇴 의사가 없다는 뜻을 거듭 내비치고 있다. 박준태 대표 비서실장은 26일 브리핑에서 당내 비판이 지나치다며, 당 구성원 모두가 민주당 견제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장 대표 역시 지난 24일 페이스북을 통해 지방선거를 끝까지 치른 뒤 평가받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한편 공천 작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이날 경기 평택을에 유의동 전 의원을 단수 공천했다. 3선 의원 출신인 유 전 의원은 당 정책위의장과 여의도연구원장을 지낸 인물로, 평택을은 여야와 제3지대 인사들이 거론되는 격전지로 꼽힌다. 선대위 구성이 본격화될 경우, 국민의힘은 지도체제 논란 수습과 공천 마무리를 동시에 추진하며 선거 체제로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황산벌에 핀 고려의 꿈…개태사 왕건 동상의 비밀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으로, 백제 말기 계백 장군이 이끄는 결사대가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황산벌 전투의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산봉우리가 길게 이어지는 형상 때문에 연산이라는 지명이 붙은 이 일대는 한반도 고대사와 중세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하는 중요한 공간이다.개태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명을 내려 창건한 국가적인 사찰이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 신검의 군대를 이곳 황산벌에서 최종적으로 제압하며 기나긴 전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부처의 은혜와 하늘의 도움으로 통일을 이루었다고 여겨 산의 이름을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의 천호산으로 바꾸고, 태평성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4년의 대공사 끝에 개태사를 완공했다. 이후 이 사찰은 약 450년간 고려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번영을 누렸다.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고려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어진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에 안치된 왕건의 청동상은 의자에 걸터앉아 두 발을 바닥에 내리고 있는 독특한 의좌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불교 미술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언제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미륵보살의 모습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 양식이다. 개태사 어진전의 왕건 동상이 이 같은 자세를 취한 것은 그가 전란을 끝내고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준 구원자이자 태평성대를 이끄는 군주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해석된다.개태사 곳곳에는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고려 초기의 단정하고 안정적인 비례미를 보여주는 오층 석탑과 더불어, 사찰 창건 당시 승려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했던 지름 3미터 크기의 거대한 무쇠 솥인 철확이 눈길을 끈다. 특히 철확은 사찰이 폐허가 된 후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일제강점기 시절 박람회에 전시되는 등 숱한 수난을 겪은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유물로, 개태사의 굴곡진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극락대보전에 모셔진 장중한 규모의 석조여래삼존입상 역시 고려 초기 새 왕조의 강인한 기상과 호국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걸작이다.고려 왕실의 상징이었던 개태사는 조선 시대에 접어들어 억불숭유 정책의 여파로 쇠락의 길을 걷다 결국 폐사지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오랜 세월 텅 빈 벌판으로 방치되었던 절터는 1934년에 이르러서야 옛터의 중심부에 사찰을 다시 세우며 명맥을 잇게 되었다. 현재 복원된 개태사의 규모는 과거 화려했던 고려 시대의 도량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사찰 주변의 넓은 농경지와 마을 땅속에는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고려 시대 개태사의 거대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오랜 세월을 거치며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개태사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찰 입구에 세워진 빛바랜 안내판은 1960년대 초 개태사지에서 발굴되었으나 외부로 유출된 국보 금동대탑의 반환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한 사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물에 대해 사찰 측은 반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1년 법원은 소유권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한 바 있다. 개태사의 옛터에서 출토된 핵심 유물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지역 사회의 역사적 자긍심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