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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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피두센터 한화, 2만 8천원 관람료 논란 뚫고 개관

 서울의 랜드마크인 여의도 63빌딩이 세계적인 현대미술의 성지로 탈바꿈하며 새로운 문화 지도를 그려내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퐁피두센터가 한화그룹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마침내 한국에 상륙한 것이다. 건축가 장 미셸 빌모트의 손길을 거쳐 리모델링된 63빌딩 별관은 황금빛 본관 옆에서 정제된 미학을 뽐내는 하얀 '빛의 상자'로 거듭났다. 오는 6월 4일 정식 개관을 앞둔 이곳은 20세기 미술사의 거대한 전환점이었던 입체주의를 첫 번째 화두로 던지며 화려한 막을 올린다.

 

개관전의 주인공인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은 1907년부터 1927년까지 파리를 중심으로 전개된 큐비즘의 20년 역사를 8개 섹션으로 정밀하게 조망한다. 파블로 피카소가 아프리카 미술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초기작 '여인의 흉상'부터, 사물의 형태를 완전히 해체해 추상의 영역으로 진입한 '기타 연주자'까지 피카소의 예술적 궤적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여기에 조르주 브라크와 후안 그리스 등 큐비즘을 이끈 거장 43인의 작품 91점이 대거 포함되어 현대미술의 기원을 탐구하는 밀도 높은 여정을 선사한다.

 


이번 전시는 서구의 예술 운동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근대 미술과의 연결 고리를 찾는 시도를 병행한다. 별도로 마련된 '코리아 포커스' 섹션에서는 김환기, 유영국, 박래현 등 한국 미술의 거목 11인이 서구의 아방가르드 정신을 어떻게 수용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변주했는지 살핀다. 이는 퐁피두센터의 방대한 컬렉션과 한국 작가들의 창의적 작업이 만나는 지점을 조명함으로써, 큐비즘이 전 세계 예술가들에게 선사한 시각적 혁신의 파급력을 다각도로 입증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퐁피두센터 한화는 이번 개관전을 시작으로 야수파, 초현실주의, 여성 추상미술 등 현대미술의 주요 흐름을 짚어보는 대규모 기획전을 순차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칸딘스키와 샤갈 등 대중에게 친숙한 거장들의 전시와 함께 디지털 미학의 뿌리를 찾는 '코딩 더 월드' 프로젝트도 준비 중이다. 한화문화재단 측은 당분간 독자적인 소장품 확보보다는 해외 유수 미술관과의 협업을 통해 수준 높은 콘텐츠를 국내에 소개하는 가교 역할에 집중하며 대중과 호흡하는 모델을 지향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화려한 개막 소식 이면에는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공존하고 있다. 전시 공개 당일, 미술관 앞에서는 한화그룹의 방산 사업을 겨냥한 시민단체들의 항의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전쟁 무기를 생산하는 기업이 예술을 이용해 기업 이미지를 세탁하는 '아트워싱'을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퐁피두센터 유치에 투입된 자금의 성격을 강하게 비판했다. 세계적 미술관의 한국 진출이라는 문화적 성취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윤리적 논란이 63빌딩이라는 한 공간에서 격렬하게 충돌하는 모양새다.

 

높은 관람료를 둘러싼 대중의 설왕설래도 여전하다. 성인 기준 2만 8,000원이라는 가격은 국내 국공립 미술관은 물론 웬만한 사립 미술관의 기준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이에 대해 한화 측은 퐁피두센터와의 파트너십 유지 비용과 고품격 전시 기획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문화 향유권의 문턱이 지나치게 높아졌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퐁피두센터 한화는 이러한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시선 속에서 서울의 새로운 문화 엔진으로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58년 만에 열린 안양수목원, '샤' 기 받으러 가볼까

연구를 목적으로 조성된 이후 일반인의 발길을 엄격히 통제해왔던 이곳은 지난해 11월 무료 개방을 결정하며 수도권 최고의 힐링 명소로 떠올랐다. 개방 초기 몰려든 인파로 주변 도로가 마비되는 등 홍역을 치르기도 했으나, 올해 3월부터는 평일 1,500명과 주말 4,000명으로 인원을 제한하는 예약제를 도입해 쾌적한 관람 환경을 구축했다.안양수목원의 가장 큰 매력은 인위적인 조경을 최소화하고 수십 년간 보존해온 자연 그대로의 생태계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요한 수목원장은 화려한 편의시설은 부족할지 몰라도 국내외에서 수집된 희귀 식물과 노거수들이 뿜어내는 원시적인 생명력이 이곳만의 독보적인 가치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관악산 등산로와 연결된 지리적 이점 덕분에 등산객들 사이에서는 이미 '비밀의 정원'으로 통하며, 연구용 숲 특유의 정갈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방문객들을 사로잡고 있다.숲의 깊숙한 곳에 자리한 숙근초원은 식물 애호가들이 가장 열광하는 공간이다. 노르웨이 베르겐 식물원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수목원에서 들여온 이색 식물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계피를 연상시키는 매콤한 향기로 발길을 붙잡는 디푸수스패랭이꽃부터 전구 모양의 독특한 외형을 자랑하는 타래양파까지, 국내 일반 공원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희귀종들이 즐비하다. 연구진의 세심한 관리 속에 자라난 이 식물들은 안양수목원이 단순한 휴식처를 넘어 살아있는 식물 도서관임을 보여준다.대잔디원 한복판에 설치된 서울대 정문 상징물인 '샤' 조형물의 축소판은 이곳의 최고 인기 포토존이다. 서울대의 정기를 받으려는 수험생 가족과 기념사진을 남기려는 관람객들로 늘 활기가 넘친다. 방문객들 사이에서는 이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합격의 기운을 얻을 수 있다는 유쾌한 속설이 퍼지며, 수목원 관람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연구용 부지라는 엄숙함 속에 배치된 위트 있는 조형물은 대학 부속 수목원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정체성을 드러낸다.수목원 측은 단순 관람을 넘어 시민들이 숲과 교감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전문가와 함께 숲의 숨은 이야기를 듣는 숲해설을 비롯해 산림치유, 목공 체험 등 모든 프로그램이 무료로 진행된다. 다만 연구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한정된 인원으로만 운영되다 보니 예약 시작과 동시에 마감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58년 동안 축적된 숲의 지혜를 전문가의 설명과 함께 체험하려는 시민들의 열의는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안양수목원의 전면 개방은 대학의 자산이 지역 사회와 어떻게 상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다. 관악산의 울창한 숲과 습지식물원이 어우러진 이 공간은 도심 속 열섬 현상을 식혀주는 허파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시민들에게는 수준 높은 생태 문화를 향유할 기회를 제공한다. 반세기 넘게 연구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숲이 이제는 시민들의 휴식처로 변모하며, 안양수목원은 자연과 학문 그리고 시민의 삶이 교차하는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안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