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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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북갑, 한동훈 '팬덤 유세' 격돌

 부산 북구 갑 보궐선거에 출마한 한동훈 무소속 후보가 사전투표를 앞둔 마지막 연휴 기간 동안 만덕동과 구포동 일대를 누비며 파격적인 유세 행보를 보였다. 한 후보는 유세차 위에서 지역 주민들과 직접 눈을 맞추며 지지를 호소했고, 아파트 단지 베란다에서 손을 흔드는 시민들에게 일일이 화답하며 현장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그는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주민 한 분의 응원이 얼마나 소중한지 체감하고 있다며, 단 한 표가 부족하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선거 운동에 임하고 있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유세 현장 곳곳에서는 기존 정치권에서 보기 드문 팬덤 현상이 목격되기도 했다. 한 후보가 이동하는 동선마다 학생과 주민들이 몰려들어 사진 촬영과 사인을 요청했으며, 일부 청소년들은 길거리에서 묘기를 선보이며 후보를 환영하는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한 후보의 등장이 일종의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특히 과거 특정 정당 지지세가 강했던 지역 정서가 후보 개인의 인지도와 지역 발전 기대감으로 인해 빠르게 재편되는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선거 운동의 또 다른 특징은 자발적으로 모여든 대규모 자원봉사자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이다. 흰색 의상을 맞춰 입은 지지자들은 북구 갑 지역의 주요 교차로와 상권 거점에 포진하여 출근길 인사와 거리 정화 활동을 병행하며 세를 과시했다. 이들은 점조직 형태로 흩어져 활동하다가 집중 유세 시간에는 한곳으로 집결해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열기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지지층의 결집력은 무소속 후보라는 조직적 한계를 극복하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하며 상대 후보 진영을 긴장시키고 있다.

 

경쟁 후보들인 더불어민주당 하정우 후보와 국민의힘 박민식 후보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외지 세력의 유입이라며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이에 대해 한 후보는 유세 현장에서 상대 후보들이 북구를 고립된 섬으로 만들려 한다고 반박하며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그는 외부의 관심과 자본이 유입되는 것이야말로 지역 경기를 살리고 상권의 위상을 높이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폐쇄적인 지역주의 대신 개방적인 발전 모델을 제시하며 유권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안한 셈이다.

 


한 후보가 내세운 핵심 공약의 중심에는 낙동강 변 개발을 골자로 한 ‘낙동강 골든벨트’ 조성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북구가 부산 발전의 새로운 중심축이 될 잠재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간 정체되어 있었다고 지적하며, 자신의 청렴함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이를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치적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는 점을 부각하며 민주당의 독주를 막고 보수 진영의 가치를 재건하는 적임자임을 자처하고 나섰다.

 

선거가 막바지로 향하면서 북구 갑의 민심은 후보들 간의 비전 대결로 압축되는 모양새다. 한 후보는 자신이 당선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미 북구가 전국적인 주목을 받으며 지역 가치가 상승하고 있다는 점을 민심의 반응 근거로 꼽았다. 그는 유세를 마무리하며 주민들이 더 이상 정치 뉴스에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 편안하게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세 후보 간의 치열한 공방 속에 북구 주민들의 선택이 어디로 향할지 전국적인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약용의 500권 저술 산실, 다산초당의 인문학

는 결과가 아니라, 발길 닿는 구간마다 깃든 땅의 역사와 대화하며 천천히 걷는 과정에 있다. 그중에서도 전남 강진을 지나는 남파랑길 83코스는 조선의 대유학자 다산 정약용의 고립과 깊은 사유가 층층이 쌓인 공간으로 여행자들을 이끈다. 약 17.5km에 달하는 이 길의 중심에는 야생 차나무가 무성해 '다산'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만덕산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강진 유배 시절 다산의 삶은 만덕산 자락의 백련사와 그곳에서 만난 혜장선사와의 인연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1805년 봄, 유배객 신분으로 처음 백련사를 찾은 정약용은 주지였던 혜장과 학문적 깊이에 감복하며 신분을 초월한 우정을 쌓기 시작했다. 절망적인 유배 생활 속에서 혜장은 다산에게 지적인 동반자이자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1808년 다산이 백련사 인근의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긴 후 두 사람이 수시로 오갔던 800m의 산길은 오늘날 '우정길'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도보 여행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전한다.다산초당은 단청조차 없는 소박한 목조 건물이지만, 그곳에 머문 11년 동안 정약용은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등 5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유배라는 물리적 억압조차 그의 사유의 깊이를 가둘 수 없었음을 증명하듯, 초당 곳곳에는 선비의 여유와 기품이 흐른다. 만덕산 능선에서 내려다보이는 강진만의 풍경은 고독한 유배객의 시선을 넓혀주었을 것이며, 지천에 널린 야생 차나무는 그의 호가 된 '다산'의 유래가 되어 오늘날까지 그 향기를 전하고 있다.강진을 지나 해남으로 발길을 옮기면 달마산 미황사에서 땅끝탑으로 이어지는 남파랑길 90코스가 여행자를 맞이한다. 이 구간의 하이라이트는 기암괴석 사이에 제비집처럼 자리 잡은 도솔암이다. 정유재란 당시 소실되어 400여 년간 빈터로 남아있던 이곳은 2002년 법조 스님의 원력으로 복원되었다. 헬기조차 접근하기 힘든 험지에 암자를 세우기 위해 산 아래에서 자재를 미리 깎고 단청까지 칠해 올라와 조립한 '사전 제작 방식'의 서사는 수행자의 지독한 정진을 짐작하게 한다.한 칸 남짓한 작은 규모의 도솔암은 거대한 바위 성벽에 둘러싸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은 남해의 일출과 서해의 낙조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천혜의 명당으로, 암자 앞마당에 서면 탁 트인 바다와 달마산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무가 밀려오는 날이면 마치 구름바다 위에 떠 있는 신선의 거처와 같은 풍경을 연출하며 보는 이의 넋을 잃게 만든다. 작은 공간 안에 고요와 수행의 서사를 압축해 놓은 도량의 품격은 길 위에서 지친 여행자의 마음을 정화해 주기에 충분하다.코리아둘레길 남도 구간은 이처럼 유학자의 고뇌와 수행자의 원력이 교차하는 인문학적 성지다. 길은 단순히 흙과 돌로 이루어진 통로가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인물들이 남긴 사유의 흔적을 따라 걷는 시간 여행의 통로가 된다. 완주라는 목표에 매몰되지 않고 발걸음을 늦출 때 비로소 보이는 풍경들은 우리 국토가 간직한 깊은 서사를 들려준다. 만덕산의 차 향기와 달마산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는 이 여정은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휴식과 성찰의 의미가 무엇인지 묵묵히 웅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