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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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외로움 상담 4만건 돌파

 서울시가 고립과 외로움에 처한 시민들을 위해 도입한 전담 상담 채널 '외로움안녕120'이 시행 1년을 넘어서며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 서비스는 다산콜센터를 통해 외로움을 느끼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 서울시의 대표적인 복지 모델이다. 최근 서울시는 그간의 상담 기록을 엮은 사례집을 발간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민들의 마음을 돌보는 상담사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공개했다. 상담사들은 단순한 정보 전달자가 아닌, 감정의 공감자로서 시민들의 일상 회복을 돕는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상담사들은 다양한 연령대와 배경을 가진 내담자들을 매일 마주하며 그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인다. 실직으로 실의에 빠진 가장부터 사회와 단절된 은둔 청년, 그리고 자녀를 떠나보낸 홀몸 어르신까지 상담의 스토리는 제각각이다. 상담사들은 매뉴얼에 의존하기보다 날씨나 식사 같은 일상적인 대화로 마음의 문을 여는 방식을 택한다. 이들은 내담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존재 가치의 상실'을 회복시켜 주기 위해 진심 어린 위로와 응원을 건네며 정서적 지지대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실제로 상담을 통해 삶의 의지를 되찾은 사례들이 이어지며 정책의 효용성이 입증되고 있다. 이혼과 사고로 절망에 빠져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민하던 한 중년 남성은 상담사의 권유로 직접 국을 끓여 먹기 시작하며 세상 밖으로 나올 용기를 얻었다. 또한 부모 및 친구와 연락을 끊고 지내던 고립 청년이 상담사의 격려에 힘입어 취업에 성공한 뒤 감사의 인사를 전해온 사례도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타인이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셈이다.

 

물론 상담 과정이 늘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24시간 운영되다 보니 타인에게 당한 억울함을 상담사에게 화풀이하거나 거친 표현을 쏟아내는 내담자들도 존재한다. 상담사들은 이러한 감정 노동의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워 산책을 하거나 차를 마시며 마음을 다스리기도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이용자가 진심으로 자신의 외로움을 토로하고 위로에 고마움을 표하고 있어, 상담사들은 정신적 피로 속에서도 직업적 보람을 찾으며 수화기를 놓지 않고 있다.

 


이용자가 급증함에 따라 서울시는 서비스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운영 효율화 방안도 마련 중이다. 특정 이용자가 하루에 수십 번씩 전화를 걸어 다른 시민들의 상담 기회를 제한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1인당 하루 상담 횟수를 5회로 제한하는 규칙을 도입할 예정이다. 이는 한정된 상담 자원을 보다 많은 시민에게 고루 배분하기 위한 조치다. 현재 외로움안녕120은 이용자 만족도 5점 만점에 4.6점을 기록할 정도로 높은 호응을 얻고 있으며, 이용자의 80% 이상이 상담을 통해 실질적인 위로를 받았다고 답했다.

 

서울시는 향후 이 서비스를 오프라인 공간과 연계하여 더욱 입체적인 복지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하반기에는 상담 거점 공간인 '서울잇다플레이스'를 통해 대면 상담까지 서비스 영역을 넓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외로움을 감기처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으로 규정하고, 이를 사회가 함께 돌봐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관련 인프라는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서울시는 시민들이 주저 없이 전화를 걸어 감정을 나눌 수 있도록 24시간 상담 체계를 더욱 공고히 유지하며 고립 없는 도시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정약용의 500권 저술 산실, 다산초당의 인문학

는 결과가 아니라, 발길 닿는 구간마다 깃든 땅의 역사와 대화하며 천천히 걷는 과정에 있다. 그중에서도 전남 강진을 지나는 남파랑길 83코스는 조선의 대유학자 다산 정약용의 고립과 깊은 사유가 층층이 쌓인 공간으로 여행자들을 이끈다. 약 17.5km에 달하는 이 길의 중심에는 야생 차나무가 무성해 '다산'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만덕산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강진 유배 시절 다산의 삶은 만덕산 자락의 백련사와 그곳에서 만난 혜장선사와의 인연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1805년 봄, 유배객 신분으로 처음 백련사를 찾은 정약용은 주지였던 혜장과 학문적 깊이에 감복하며 신분을 초월한 우정을 쌓기 시작했다. 절망적인 유배 생활 속에서 혜장은 다산에게 지적인 동반자이자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1808년 다산이 백련사 인근의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긴 후 두 사람이 수시로 오갔던 800m의 산길은 오늘날 '우정길'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도보 여행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전한다.다산초당은 단청조차 없는 소박한 목조 건물이지만, 그곳에 머문 11년 동안 정약용은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등 5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유배라는 물리적 억압조차 그의 사유의 깊이를 가둘 수 없었음을 증명하듯, 초당 곳곳에는 선비의 여유와 기품이 흐른다. 만덕산 능선에서 내려다보이는 강진만의 풍경은 고독한 유배객의 시선을 넓혀주었을 것이며, 지천에 널린 야생 차나무는 그의 호가 된 '다산'의 유래가 되어 오늘날까지 그 향기를 전하고 있다.강진을 지나 해남으로 발길을 옮기면 달마산 미황사에서 땅끝탑으로 이어지는 남파랑길 90코스가 여행자를 맞이한다. 이 구간의 하이라이트는 기암괴석 사이에 제비집처럼 자리 잡은 도솔암이다. 정유재란 당시 소실되어 400여 년간 빈터로 남아있던 이곳은 2002년 법조 스님의 원력으로 복원되었다. 헬기조차 접근하기 힘든 험지에 암자를 세우기 위해 산 아래에서 자재를 미리 깎고 단청까지 칠해 올라와 조립한 '사전 제작 방식'의 서사는 수행자의 지독한 정진을 짐작하게 한다.한 칸 남짓한 작은 규모의 도솔암은 거대한 바위 성벽에 둘러싸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은 남해의 일출과 서해의 낙조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천혜의 명당으로, 암자 앞마당에 서면 탁 트인 바다와 달마산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무가 밀려오는 날이면 마치 구름바다 위에 떠 있는 신선의 거처와 같은 풍경을 연출하며 보는 이의 넋을 잃게 만든다. 작은 공간 안에 고요와 수행의 서사를 압축해 놓은 도량의 품격은 길 위에서 지친 여행자의 마음을 정화해 주기에 충분하다.코리아둘레길 남도 구간은 이처럼 유학자의 고뇌와 수행자의 원력이 교차하는 인문학적 성지다. 길은 단순히 흙과 돌로 이루어진 통로가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인물들이 남긴 사유의 흔적을 따라 걷는 시간 여행의 통로가 된다. 완주라는 목표에 매몰되지 않고 발걸음을 늦출 때 비로소 보이는 풍경들은 우리 국토가 간직한 깊은 서사를 들려준다. 만덕산의 차 향기와 달마산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는 이 여정은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휴식과 성찰의 의미가 무엇인지 묵묵히 웅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