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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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불이선란도' 대구 첫 상륙

 대구간송미술관이 무더운 여름을 앞두고 한국 미술사의 거장 추사 김정희의 말년 최고 걸작인 '불이선란도'를 대구 최초로 대중에게 공개했다. 기획전 '추사의 그림 수업'의 일환으로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추사가 70대 완숙기에 도달해 그려낸 내면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최소한의 붓질만으로 문인의 높은 기개와 철학적 경지를 표현한 이 작품은, 기교를 넘어선 무위의 미학을 보여주는 문인화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거장의 숨결이 닿은 묵란의 실물을 직접 확인하려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전시장으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전시의 묘미는 중년의 추사가 완성한 묵란의 교본인 '난맹첩'과 노년의 깨달음이 담긴 '불이선란도'를 한자리에서 비교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시장 중앙에서 두 명작이 서로 마주 보는 배치는 추사 예술의 변화와 성숙 과정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정교한 필치로 난치는 법을 정리한 중년의 열정과, 모든 형식을 내려놓고 마음의 흐름을 따라간 노년의 담백함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관람객들은 추사 예술의 전모를 발견하게 된다. 학계에서는 이번 전시가 추사 묵란의 변천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라고 입을 모은다.

 


상설전시실 역시 여름의 정취를 가득 담은 작품들로 새롭게 단장하여 관람객들에게 청량한 휴식을 선사한다. 심사정, 이인상, 김득신 등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들이 그려낸 산수화와 풍속화는 선조들이 자연 속에서 더위를 식히던 지혜로운 풍경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울창한 숲과 시원한 계곡, 고기잡이의 즐거움이 담긴 그림들은 도심의 무더위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시각적인 위로와 평온한 안식을 제공한다. 거장 장승업과 그의 제자 안중식이 포착한 여름날의 진솔한 일상은 시대를 초월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선조들의 멋과 취향이 깃든 부채 그림 10점도 이번 여름 전시의 관전 포인트다. 단원 김홍도의 '기려원유'를 비롯해 심사정, 이인문 등 거장들의 필치가 담긴 부채들은 단순한 냉방 도구를 넘어 예술적 소장품으로서의 가치를 증명한다. 나귀를 타고 한가로이 강변을 거니는 노인의 모습이나 부채 위에 펼쳐진 화조 사군자는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온도를 낮춰준다. 부채라는 작은 공간 안에 대자연의 섭리와 문인의 풍류를 압축해 넣은 선인들의 예술적 감각은 관람객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선사한다.

 


명품전시실에서는 계절의 역설을 담은 수운 유덕장의 '설죽'이 단독으로 전시되어 서늘한 한기를 뿜어낸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대나무를 그린 이 작품은 놀랍게도 한여름의 무더위를 식혀주기 위해 그려진 것이다. 유덕장이 지인에게 전하고자 했던 시원한 마음이 캔버스를 넘어 전시장 전체로 퍼져나간다. 대형 화면 가득 펼쳐진 설경은 관람객들을 순식간에 겨울 대나무 숲으로 인도하며 일상의 열기를 잊게 만든다. 그림 한 점이 지닌 치유와 위로의 힘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미술관은 전시의 감동을 야간에도 이어갈 수 있도록 '밤의 미술관' 프로그램을 마련해 관람객과의 소통을 강화한다. 오는 24일 운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정규 관람 시간 이후 전시 기획자의 깊이 있는 강연과 함께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12일부터 시작되는 참가 신청은 벌써부터 치열한 예매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대구간송미술관은 이번 여름 개편을 통해 옛 선인들의 풍류와 지혜를 현대적으로 공유하며, 지역 사회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는 도심 속 오아시스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수만리 습지, 파괴 딛고 생태 보고로 부활

과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시킨다. 이곳은 병자호란 당시 의병을 일으켰던 백천 류함의 충절이 깃든 장소로, 탐방객들은 정자에 올라 호수를 바라보며 난세 속에서 선비가 지켰던 대의를 되새긴다. 류함이 남긴 격문 속에는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절박한 심경과 호남의 의로운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단순한 풍경 이상의 무게감을 전달한다.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무돌길 11길의 큰재는 과거와 현재의 삶이 교차하는 길목이다. 무등산 자락 깊은 곳에 위치한 이 고개는 예부터 산촌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광주와 화순을 오가던 소중한 통로였다. 해발 고도가 높은 탓에 겨울철이면 접근이 어려웠던 험로였으나, 오늘날에는 무등산 남사면의 웅장한 능선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조망점으로 변모했다. 고개 마루에서 내려다보이는 수만리 일대의 비경은 '한국의 알프스'라는 별칭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이국적이면서도 평화로운 정취를 자아낸다.큰재 아래 펼쳐진 수만리 생태공원은 인간의 손길로 빚어낸 자연의 휴식처다. 편백나무 숲과 습지원이 조화롭게 배치된 이곳은 맨발 걷기 길과 데크 산책로가 잘 갖춰져 있어 숲이 주는 치유의 힘을 온몸으로 느끼기에 충분하다. 특히 빽빽하게 들어선 편백나무 군락은 한여름의 무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숲 터널을 형성하며 탐방객들에게 여유를 선사한다. 마을 주민들의 생활로였던 이 길은 이제 도시민들의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생태 관광의 핵심 기지로 자리매김했다.해발 409m에 위치한 중지마을은 무등산의 품에 가장 깊숙이 안긴 마을 중 하나다. 18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이 마을은 외지인 없이 고향을 지키는 주민들이 다랑이논을 일구며 살아온 삶의 터전이다. 마을 정자에서 만난 주민들은 과거 산비탈을 깎아 벼농사를 짓던 고단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길손을 반긴다. 장불재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덕분에 중지마을은 예나 지금이나 무등산을 오가는 사람들의 쉼터이자 역사를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중지마을을 지나 너와나목장 방향으로 향하면 자연의 놀라운 회복력을 목격하게 된다. 과거 흑염소 방목으로 인해 황폐해졌던 산비탈은 국립공원공단의 끈질긴 복원 노력 끝에 다시 생명의 습지로 거듭났다. 2022년부터 시작된 지형 복원과 자생식물 식재 사업은 훼손된 식생을 되살렸고, 이제는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는 건강한 생태계의 보고가 되었다. 다랑이논의 흔적을 간직한 채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습지는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육장이다.초여름 햇살을 머금은 숲길은 완만한 내리막을 지나 용연마을 정자에서 그 여정을 마무리한다. 활엽수 잎사귀 사이로 불어오는 산바람은 환산정에서 시작해 큰재를 넘어온 탐방객들의 땀방울을 씻어준다. 역사 속 선비의 절개와 험준한 고개를 넘던 민초들의 삶, 그리고 파괴된 자연을 되살려낸 현대의 노력이 무돌길이라는 하나의 선 위에 촘촘히 엮여 있다. 길 위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은 채 다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마친 용연마을의 고즈넉한 풍경 속으로 잦아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