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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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 실수" 선관위 해명에 정치권 거센 반발

 국가 선거 관리의 근간인 사전투표 시스템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투표지 증발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전국 단위로 실시된 5개 선거를 전수 조사한 결과, 관외 사전투표를 마친 유권자 1,088명의 소중한 한 표가 최종 목적지인 지역 선거관리위원회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유권자가 투표함에 봉투를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송 과정이나 관리 단계에서 기록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투표권이 행정적 허술함으로 인해 휴지조각이 되었다는 비판이 거세다.

 

구체적인 누락 현황을 살펴보면 선거의 규모가 클수록 관리 부실의 골도 깊었다.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많은 410표가 사라졌으며, 21대 대선에서도 342표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이어 22대 총선 122표, 8회 지방선거 119표, 6·3 지방선거 95표 순으로 집계됐다. 매 선거마다 적게는 수십 표에서 많게는 수백 표가 유령처럼 증발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단 몇 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기초의원 선거 등에서는 이러한 누락이 결과 자체를 뒤바꿀 수 있는 치명적인 결함으로 작용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러한 사태의 책임을 유권자의 개인적 실수로 돌리는 모양새다. 관외 사전투표자가 회송용 봉투를 사용하지 않고 투표지만 투입하거나, 관외 투표함이 아닌 관내 투표함에 잘못 넣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즉, 시스템의 결함보다는 투표 현장에서 발생하는 시민들의 착오가 배송 불가 사유의 핵심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현장 관리 인력이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모든 책임을 유권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정 편의주의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선관위의 해명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현장 관리 체계의 근본적인 수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조승환 의원은 관내와 관외 투표는 대기 줄부터 동선이 명확히 구분되도록 설계되어 있어 유권자가 혼동할 가능성이 낮다고 강조했다. 투표 장소가 협소해 동선 분리가 어렵다는 선관위의 재반박에 대해서도, 그렇다면 애초에 부적절한 장소를 투표소로 선정한 관리 부실을 자인하는 꼴이라고 몰아세웠다. 현장에서의 안내 미흡이 결국 투표권 박탈로 이어졌다는 논리다.

 


단순한 실수 외에 관리상의 허점도 곳곳에서 포착됐다. 투표 현장에서 동명이인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엉뚱한 사람에게 회송용 봉투를 지급한 사례가 적지 않았으며, 심지어 누락 사유 자체가 기록되지 않은 '불분명' 사례도 최소 8건 이상 발견됐다. 이는 우체국 배송 과정이나 선관위 접수 단계에서 투표지가 분실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만든다. 투표지의 이동 경로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검증할 수 있는 디지털 시스템의 부재가 낳은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선거 관리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관외 사전투표 전 과정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해 보인다. 투표자가 봉투를 투입하는 순간부터 지역 선관위에 접수될 때까지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배송 사고 발생 시 즉각적인 추적이 가능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088표라는 숫자는 단순히 통계상의 누락이 아니라, 국가가 보호해야 할 국민의 참정권이 훼손된 현주소를 보여준다. 선관위는 더 이상 유권자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관리 책임의 무게를 엄중히 인식해야 한다.

 

 

 

판소리와 포크의 만남…구례 가을밤 울린 ‘시인의 마을’

추임새와 박수가 이어졌다. 전통 판소리의 깊은 울림에 이어 익숙한 포크음악이 흐르자 관객들은 노래와 함께 호흡하며 구례의 가을밤을 즐겼다.지난 17일 밤 열린 구례 동편제소리축제에서는 지역 명창들의 판소리와 가수 정태춘·박은옥 부부의 공연이 한자리에서 펼쳐졌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전통 소리와 한국 대중음악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노래가 어우러지며 관객들에게 특별한 무대를 선사했다.이날 구례 명창들의 공연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끈 무대는 박정선 명창의 ‘적벽가’였다. 박 명창은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가 다급하게 달아나는 장면을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 힘 있는 소리로 풀어냈다. 긴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대목에서는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고, 관객들은 추임새와 박수로 소리꾼의 무대에 호응했다. 판소리 특유의 해학과 긴장감이 무대를 채우면서 관객들은 이야기 속 장면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몰입감을 느꼈다. 소리꾼의 목소리와 몸짓에 관객의 반응이 더해지며 공연은 무대 위에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객석과 함께 만들어지는 경험으로 이어졌다.공연의 분위기는 정태춘·박은옥 부부가 무대에 오르면서 또 한 번 달라졌다. 오랜 시간 삶과 시대의 이야기를 노래해 온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자 객석의 시선이 집중됐다. 대표곡 가운데 하나인 ‘시인의 마을’의 연주가 시작되자 관객석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노래의 첫 소절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반응에는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노래에 대한 반가움이 담겼다. 앞선 판소리 무대에서 추임새로 공연에 참여했던 관객들은 이번에는 익숙한 선율을 따라가며 노래가 전하는 감정에 집중했다. 한 곡의 노래가 오랜 세월 쌓인 기억을 불러내고, 무대와 객석 사이에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순간이었다.정태춘·박은옥은 ‘북한강에서’ 등 자신들의 노래를 들려주며 공연의 여운을 이어갔다. 화려한 무대 연출 속에서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결국 노래에 담긴 이야기와 이를 전하는 목소리였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다시 듣고 싶은 노래가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지자 객석은 박수로 화답했다.판소리와 포크음악은 표현 방식과 음악적 형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사람들의 삶과 시대를 이야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판소리는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을 소리와 이야기로 전해왔다. 정태춘·박은옥의 노래 역시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사회의 모습을 담아내며 청중과 소통해 왔다.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이 한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었던 이유다.구례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품은 지역으로, 동편제 판소리 문화가 이어져 온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지역 명창들의 전통 소리를 감상한 뒤 정태춘·박은옥의 노래를 만나는 구성은 이번 축제의 특별한 장면으로 남았다. 지역의 전통문화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가 한자리에서 만났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첨단 조명과 대형 LED 화면이 설치된 무대 위에서는 오래된 판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어 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을 담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전통과 현대를 구분하는 경계보다 서로 다른 음악이 관객에게 어떤 감동을 전하는지가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 무대였다.전통문화는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서만 의미를 찾는 것은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나고 새로운 장르와 어우러질 때, 전통은 또 다른 방식으로 생명력을 얻는다. 판소리의 추임새와 대중가요를 향한 박수가 같은 밤에 이어진 것은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구례 동편제소리축제의 가을밤은 그렇게 전통과 현대의 음악이 함께 만드는 공연장으로 변했다. 명창의 소리에 관객들은 “얼씨구”와 “좋다”를 외쳤고, ‘시인의 마을’이 시작되자 큰 박수로 화답했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장르에서 출발한 음악은 사람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통해 하나로 이어졌고, 관객들은 그 울림을 함께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