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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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습관 닮는 아이들…손톱 물어뜯기 대물림 주의

 직장인들의 고질적인 스트레스가 무의식적인 신체 손상 행위로 이어지며 가정 내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30대 남편의 지독한 손톱 물어뜯기 습관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아내의 호소가 올라와 누리꾼들의 이목을 끌었다. 남편은 손톱뿐만 아니라 주변 살점까지 피가 날 정도로 뜯어내며, 좋게 타일러도 보고 화도 내봤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는 상황이다. 특히 아빠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기 시작한 아이의 모습은 작성자에게 습관 교정에 대한 절박함을 더하고 있다.

 

이처럼 손톱을 반복적으로 물어뜯는 행위는 의학적으로 '교조증(onychophagia)'이라 불리는 충동조절장애의 일종으로 분류된다. 미국정신의학회(DSM)는 이를 단순한 버릇이 아닌 스트레스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무의식적 행동으로 정의한다. 실제로 사연 속 남편도 회사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증상이 심해진다고 고백했는데, 이는 직장 내 긴장감이 퇴근 후에도 해소되지 않고 신체적 자학 행위로 표출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본인조차 언제 뜯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무의식중에 행해진다는 점이 치료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문제는 이러한 습관이 단순한 미관상의 문제를 넘어 심각한 신체적 감염의 통로가 된다는 점이다. 손톱 주변의 피부 보호막인 큐티클이 손상되면 세균과 바이러스가 침투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된다. 이는 손톱 주위염으로 불리는 조갑주위염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구강 내 세균이 상처를 통해 혈류로 유입될 경우 더 큰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치아 배열이 틀어지는 부정교합이나 잇몸 손상 등 구강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실제로 해외 의료계에서는 만성적인 손톱 물어뜯기가 뼈까지 녹이는 골수염으로 진행된 충격적인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미국 파이크빌 메디컬센터 연구팀에 따르면, 손톱 주변 상처를 반복적으로 뜯던 한 어린이가 내성 황색포도상구균에 감염되어 손가락 뼈까지 세균이 침투하는 급성 골수염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집중 치료를 통해 절단 위기는 넘겼으나, 이는 피부 장벽이 무너진 틈을 타 침입한 세균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등과 같다.

 


전문가들은 가족의 비난이나 강압적인 제지가 오히려 환자의 불안감을 증폭시켜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손가락에 반창고를 감거나 쓴맛이 나는 약을 바르는 등의 물리적 방법은 일시적인 방편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대신 스트레스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 주는 것이 우선이다. 증상이 심각해 일상생활이나 대인관계에 지장을 준다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해 행동치료나 약물치료를 병행하는 전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결국 교조증은 개인의 의지 부족이 아닌 심리적 신호로 이해해야 한다. 가족 구성원들은 환자가 불안을 느끼는 지점을 함께 고민하고, 비난보다는 공감을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또한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면 부모의 행동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더욱 적극적인 치료 의지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한 손가락의 상처를 넘어 마음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노력이 선행될 때 비로소 지독한 습관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