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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 베일 벗다, 나홍진이 빚은 지옥도

 1980년대 비무장지대 인근의 한적한 어촌마을 호포항을 배경으로 한 영화 <호프>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남긴 참혹한 흔적에서 시작된다. 마을 길가에 쓰러진 거대한 황소의 사체와 그 옆구리에 깊게 패인 기이한 상처는 마을을 덮칠 거대한 재앙의 전조였다. 출장소장 범석은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그의 육촌동생이자 사냥꾼인 성기는 청년들을 모아 산속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들이 마주한 것은 호랑이 같은 맹수가 아닌,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기괴하고 거대한 미지의 존재였다.

 

나홍진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자신의 전작들이 가졌던 강점들을 영리하게 버무려냈다. <곡성>에서 보여준 미지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와 <추격자>의 숨 막히는 속도감, 그리고 <황해>의 처절한 미장센이 영화 전반에 흐른다. 무너진 건물 사이로 도망치는 범석의 사투는 156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내내 관객의 숨통을 조인다. 그러면서도 극 곳곳에 배치된 노인들의 유머 코드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 잠시나마 숨을 쉴 수 있는 틈을 제공하며 상업 영화로서의 미덕을 갖췄다.

 


영화의 중반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외계 생명체는 이 작품의 가장 파격적인 지점이다. 마이클 패스벤더와 알리시아 비칸데르 등 할리우드 톱스타들이 모션 캡처로 완성한 이 존재는 한국 영화에서 본 적 없는 이질적인 공포를 선사한다. 비록 외형에 대해서는 관객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으나, 나홍진 감독은 시각적 충격에만 매몰되지 않고 이를 추격전과 블랙코미디의 문법으로 풀어내며 극의 동력을 유지한다. "대체 무엇을 본 것인가"라는 칸에서의 반응은 바로 이 독특한 장르적 혼종성에서 기인한다.

 

특히 배우 조인성의 등장은 극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국적인 숲을 배경으로 말을 타며 총포를 휘두르는 그의 모습은 한국 영화의 고전적 명장면들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나홍진식 액션의 정점을 보여준다. 봉준호의 <괴물>이나 김지운의 <놈놈놈>이 스치듯 지나가지만, 감독은 이를 오마주에 머물게 하지 않고 자신만의 거칠고 날 선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배우들의 열연은 미지의 존재가 주는 이질감을 상쇄하며 관객을 스크린 속으로 깊숙이 끌어들인다.

 


영화 후반부에 접어들면 이야기는 단순한 사투를 넘어 '믿음'이라는 철학적 화두로 확장된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향해 총을 겨눠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인간들의 믿음과 그에 대응하는 외계 존재의 메시지는 감독이 전작들에서 꾸준히 탐구해온 주제의 집대성이라 할 만하다.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던지는 묵직한 질문들은 화려한 액션 뒤에 숨겨진 영화의 진정한 얼굴을 드러낸다. 이는 단순한 SF 괴수물을 넘어 나홍진 감독이 구축해온 거대한 세계관의 완성을 의미한다.

 

속편을 암시하는 듯한 결말은 <호프>가 단발성 기획이 아닌 거대한 서사의 시작임을 예고한다. 역대급 제작비가 투입된 만큼 흥행에 대한 부담감도 크지만, 영화는 세간의 우려를 비웃듯 자신감 넘치는 전개로 마침표를 찍는다. 위기에 처한 투자 배급사의 재기 여부까지 걸린 이 거대한 도박이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희망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지는 이제 관객의 몫으로 남았다. 나홍진의 10년 공백을 메우기에 충분한 이 압도적인 에너지는 오는 15일 전국 극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실학자 정약용, 이번엔 로봇·패션쇼로 돌아왔다

다. 올해 40회를 맞은 다산정약용문화제는 전통 인물 축제의 틀을 넘어, 과거의 지혜를 오늘의 놀이와 기술로 체험하는 방식으로 관람객을 맞는다.남양주시는 오는 17일부터 18일까지 조안면 정약용유적지와 다산생태공원 일대에서 ‘제40회 다산정약용문화제’를 연다. 주제는 ‘시대를 설계한 정약용, 오늘을 혁신하다’다. 조선 후기 대표 실학자인 정약용의 실사구시 정신을 현대적으로 풀어내고,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축제로 확장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이번 축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체험’이다. 정약용을 기리는 의례 중심의 행사에서 벗어나, 아이와 부모가 함께 움직이고 만들고 생각하는 프로그램이 전면에 배치됐다. 가족 단위 참가자들은 ‘정약용 로봇창작대회’에서 아이디어를 직접 구현해볼 수 있다. 실용을 중시했던 다산의 정신을 오늘날의 창작 활동과 연결한 프로그램이다.‘정약용 미래공방’에서는 인공지능과 로봇을 만날 수 있다. 다산이 살던 시대의 혁신이 수원화성, 거중기, 행정 개혁이었다면, 오늘의 혁신은 AI와 로봇이라는 점에 착안한 구성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실학의 가치를 미래 기술 체험으로 풀어낸다.정약용유적지는 하나의 야외 미션 공간이 된다. 보물찾기 프로그램 ‘다산의 마지막 제자’는 방문객이 유적지를 돌아다니며 단서를 찾고 미션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역사 공간을 조용히 관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걷고 찾고 해결하면서 정약용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게 한다.반대로 속도를 늦추는 프로그램도 있다. ‘디지털 디톡스 유배체험’은 스마트폰과 디지털 기기에서 잠시 벗어나 사색의 시간을 갖는 프로그램이다. 강진 유배 시절 수많은 저술을 남긴 정약용의 시간을 현대인의 쉼과 연결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다산생태공원의 가을 풍경 속에서 생각을 정리해보는 경험이 될 수 있다.전통문화 프로그램도 빠지지 않는다. 한복 체험, 전통놀이, 문예대회, 어린이 퀴즈 프로그램 ‘도전! 장원급제’가 축제장을 채운다.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헌화와 헌다례도 마련돼 문화제 본연의 의미를 살린다. 세대별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나뉘어 있어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함께 머물기 좋은 구성이 됐다.40주년을 기념한 무대도 축제의 관전 포인트다. 남양주시는 시민 참여를 늘리기 위해 개막식 시간을 오후 3시로 옮겼다. 첫날인 17일에는 헌다례와 개막식에 이어 뮤지컬 ‘다산, 물 위의 별’ 갈라쇼가 펼쳐진다. 정약용의 삶을 음악과 무대 언어로 풀어내며 관람객에게 색다른 감동을 전할 예정이다.이상봉 디자이너가 참여하는 기념 패션쇼도 열린다. 이번 패션쇼는 정약용의 혁신 정신과 한국적 미감을 결합한 무대로 꾸며진다. 실학자의 이름을 내건 축제에서 패션쇼가 열린다는 점은 낯설지만, 바로 그 낯섦이 올해 문화제가 지향하는 변화의 방향을 보여준다.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지금의 감각으로 다시 해석하겠다는 의도다.둘째 날인 18일에는 음악으로 축제의 분위기가 이어진다. 어반자카파, HYNN 박혜원, 억스가 출연하는 기념 콘서트가 오후에 열린다. 가을 정취가 깊어지는 다산생태공원에서 열리는 공연인 만큼, 축제의 마지막을 여유롭게 즐기려는 방문객들의 관심이 예상된다.행사장 곳곳에는 거리공연과 버스킹이 마련된다. 지역 농산물을 판매하는 팜마켓도 함께 운영돼 남양주의 먹거리와 농산물을 만날 수 있다. 축제장을 걷다가 공연을 보고, 체험에 참여하고, 지역 농산물을 둘러보는 방식으로 하루 일정을 채울 수 있다.방문객을 위한 교통편도 준비된다. 남양주시는 운길산역과 조안면 체육공원에서 행사장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프로그램별 일정과 공연 시간, 셔틀버스 운행 정보는 다산정약용문화제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남양주시 관계자는 “40회를 맞은 이번 문화제가 정약용 선생의 정신을 되새기고, 여러 세대가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며 “가족, 친구와 함께 다채로운 공연과 체험을 즐기며 가을의 여유를 느껴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