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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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 7년, 미프진 도입 지시에 의료계 반발

 이재명 대통령이 임신중지 약물인 '미프진'의 조속한 국내 도입을 전격 지시하면서, 7년 동안 멈춰있던 여성 재생산권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4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임신중지 허용 범위에 대한 입법 논쟁이 길어지는 사이 여성들이 위험한 해외 직구에 내몰리는 현실을 강하게 질타했다. 특히 국회의 대체 입법이 마련되기 전이라도 의료진의 전문적 판단하에 약물을 처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하라고 관계 부처에 주문했다. 이는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입법 공백을 이유로 도입을 미뤄온 정부의 기존 태도를 정면으로 뒤집는 파격적인 행보다.

 

미프진은 이미 세계보건기구가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하고 전 세계 90여 개국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약물이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불법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국내 제약사가 여러 차례 품목 허가를 신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심사를 번번이 반려하거나 지연시켜 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임신중지가 이미 비범죄화된 상태에서 약물 허가를 법 개정과 연계하는 것은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식약처가 이미 외부 법률 자문을 통해 법 개정 없이도 허가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얻었음에도 책임을 회피해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와 국회가 책임을 떠넘기는 사이 여성들의 건강권은 심각한 사각지대에 놓였다. 공식적인 처방 경로가 막히자 많은 여성이 사회관계망서비스나 온라인 암시장을 통해 출처가 불분명한 약물을 구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5년간 적발된 임신중지 의약품 불법 유통 건수만 2,600건을 넘어섰으며, 절박한 심리를 악용한 가짜 약 사기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의사의 복약 지도 없이 음성적으로 약을 복용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나 후유증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는 점에서, 미프진의 제도권 도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대통령의 이번 지시를 환영하며 즉각적인 후속 조치를 요구하고 나섰다. 여성계는 임신중지가 비범죄화된 지 7년이 지난 만큼, 미프진 도입은 법률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의지 문제라고 강조한다. 이미 세계적으로 확립된 가이드라인이 존재하므로 의사의 재량권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보건당국이 명확한 용법과 위해성 관리 계획을 수립해 안전한 투약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약물 도입이 늦어질수록 여성들이 겪는 신체적·경제적 고통이 가중되는 만큼 보건 주권 차원에서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반면 의료계는 대통령의 '의사 재량 처방' 제안에 대해 사법적 책임 소재를 우려하며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등은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약물을 처방했다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의료 사고나 법적 분쟁에서 의사가 독박을 쓸 수 있다고 경고한다. 임신 주수별 허용 기준이나 부작용 발생 시 대응 체계가 법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처방은 의료 현장에 혼란만 가중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러한 의료계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처방 가이드라인 제정과 함께 의료진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병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지시 이후 식약처는 관계 부처와 긴밀한 조율에 착수하며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방치되었던 이 사안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행정부의 결단뿐만 아니라 국회의 입법적 보완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미프진 도입은 단순히 약 하나를 허가하는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가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을 얼마나 존중하는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음성적인 경로에 의존해야 했던 여성들이 안전한 의료 체계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고 실질적인 도입 절차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판소리와 포크의 만남…구례 가을밤 울린 ‘시인의 마을’

추임새와 박수가 이어졌다. 전통 판소리의 깊은 울림에 이어 익숙한 포크음악이 흐르자 관객들은 노래와 함께 호흡하며 구례의 가을밤을 즐겼다.지난 17일 밤 열린 구례 동편제소리축제에서는 지역 명창들의 판소리와 가수 정태춘·박은옥 부부의 공연이 한자리에서 펼쳐졌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전통 소리와 한국 대중음악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노래가 어우러지며 관객들에게 특별한 무대를 선사했다.이날 구례 명창들의 공연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끈 무대는 박정선 명창의 ‘적벽가’였다. 박 명창은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가 다급하게 달아나는 장면을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 힘 있는 소리로 풀어냈다. 긴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대목에서는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고, 관객들은 추임새와 박수로 소리꾼의 무대에 호응했다. 판소리 특유의 해학과 긴장감이 무대를 채우면서 관객들은 이야기 속 장면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몰입감을 느꼈다. 소리꾼의 목소리와 몸짓에 관객의 반응이 더해지며 공연은 무대 위에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객석과 함께 만들어지는 경험으로 이어졌다.공연의 분위기는 정태춘·박은옥 부부가 무대에 오르면서 또 한 번 달라졌다. 오랜 시간 삶과 시대의 이야기를 노래해 온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자 객석의 시선이 집중됐다. 대표곡 가운데 하나인 ‘시인의 마을’의 연주가 시작되자 관객석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노래의 첫 소절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반응에는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노래에 대한 반가움이 담겼다. 앞선 판소리 무대에서 추임새로 공연에 참여했던 관객들은 이번에는 익숙한 선율을 따라가며 노래가 전하는 감정에 집중했다. 한 곡의 노래가 오랜 세월 쌓인 기억을 불러내고, 무대와 객석 사이에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순간이었다.정태춘·박은옥은 ‘북한강에서’ 등 자신들의 노래를 들려주며 공연의 여운을 이어갔다. 화려한 무대 연출 속에서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결국 노래에 담긴 이야기와 이를 전하는 목소리였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다시 듣고 싶은 노래가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지자 객석은 박수로 화답했다.판소리와 포크음악은 표현 방식과 음악적 형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사람들의 삶과 시대를 이야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판소리는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을 소리와 이야기로 전해왔다. 정태춘·박은옥의 노래 역시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사회의 모습을 담아내며 청중과 소통해 왔다.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이 한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었던 이유다.구례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품은 지역으로, 동편제 판소리 문화가 이어져 온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지역 명창들의 전통 소리를 감상한 뒤 정태춘·박은옥의 노래를 만나는 구성은 이번 축제의 특별한 장면으로 남았다. 지역의 전통문화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가 한자리에서 만났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첨단 조명과 대형 LED 화면이 설치된 무대 위에서는 오래된 판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어 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을 담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전통과 현대를 구분하는 경계보다 서로 다른 음악이 관객에게 어떤 감동을 전하는지가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 무대였다.전통문화는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서만 의미를 찾는 것은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나고 새로운 장르와 어우러질 때, 전통은 또 다른 방식으로 생명력을 얻는다. 판소리의 추임새와 대중가요를 향한 박수가 같은 밤에 이어진 것은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구례 동편제소리축제의 가을밤은 그렇게 전통과 현대의 음악이 함께 만드는 공연장으로 변했다. 명창의 소리에 관객들은 “얼씨구”와 “좋다”를 외쳤고, ‘시인의 마을’이 시작되자 큰 박수로 화답했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장르에서 출발한 음악은 사람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통해 하나로 이어졌고, 관객들은 그 울림을 함께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