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연예

리센느 첫 1위... 거제 소녀가 만든 기적

 대형 기획사의 자본력이 지배하던 K팝 시장에 중소 기획사 신인 걸그룹 리센느가 균열을 내며 새로운 흥행 공식을 써 내려가고 있다. 리센느는 지난 14일 음악방송 '더쇼'에서 데뷔 후 첫 1위 트로피를 거머쥐며 감격의 눈물을 쏟아냈다. 앞서 국내 최대 음원 플랫폼 멜론에서도 정상에 오르며 실력을 입증한 이들은, 화려한 무대 대신 친근한 소통을 선택한 차별화된 전략으로 대중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특히 멤버들이 선보인 뒤집어진 V자 포즈인 '거제 야호'는 이제 연예계 전반을 아우르는 대세 밈으로 자리 잡으며 리센느 열풍을 증명하고 있다.

 

리센느의 성공 비결은 기존 K팝 아이돌이 추구하던 신비주의나 국제적 보편성 대신 철저하게 '지역성'과 '친밀감'에 집중했다는 점에 있다. 거제도 토박이인 멤버 원이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사투리를 거침없이 구사하며 갯지렁이를 낚싯바늘에 끼우거나 라면을 그릇째 들이키는 소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본인 멤버 미나미 역시 일본 MZ 세대의 '갸루' 문화를 콘셉트로 잡아 독특한 개성을 뽐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거제 소녀와 일본 갸루의 문화적 충돌은 거제 여행 중 탄생한 "야호"라는 구호와 독특한 손동작을 통해 대중적인 밈으로 승화되었다.

 


이들의 마케팅 전략은 단순히 음악을 홍보하는 수준을 넘어 시청자와의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원이는 무려 11개월 동안 삼촌뻘 강사에게 운전 연수를 받는 콘텐츠를 선보이며 3040 세대와 사회초년생들의 폭발적인 공감을 이끌어냈다. 하루 7시간이 넘는 라이브 방송을 통해 멤버들의 진솔한 일상을 가감 없이 드러낸 점도 주효했다. 팬들은 화려한 조명 아래의 아이돌이 아닌,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친근한 소녀들이 고군분투하며 성장하는 과정에 몰입하며 강력한 팬덤인 '리마인'을 형성하게 되었다.

 

음악적 선택 또한 영리했다. 리센느는 누구나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이지 리스닝' 계열의 곡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한 '러브 어택'에 이어 최근 선보인 '프리티 걸'은 18년 전 선배 그룹 카라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과도한 편곡을 배제하고 원곡의 경쾌한 분위기를 살린 이 곡은 카라를 기억하는 3040 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동시에 1020 세대에게는 신선한 매력을 선사했다. 세대를 아우르는 음악적 접근은 리센느가 대중적인 인지도를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리센느의 음악방송 1위 수상은 자본의 열세를 아이디어와 진정성으로 극복했다는 점에서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속사 더뮤즈엔터테인먼트는 최근에야 시리즈A 투자를 마친 신생 기업이지만, 멤버 개개인의 서사를 휴먼 스토리로 치환해 팬들의 응원을 이끌어냈다. 1위 호명 직후 멤버들은 팬들을 향해 큰절을 올리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고, 꿈을 향해 달리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는 소감을 밝혀 뭉클함을 더했다. 리센느의 트로피는 단순한 성과를 넘어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상징이 되었다.

 

이제 리센느의 행보는 중소 기획사 아이돌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이정표가 되고 있다. 톱배우 소지섭과 조승우가 공식 석상에서 '거제 야호' 포즈를 취할 만큼 이들의 영향력은 이미 팬덤의 경계를 넘어섰다. 지역적 특수성을 세계적인 보편성으로 승화시킨 리센느의 독특한 보법은 K팝의 다양성을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데뷔 2년 만에 정상에 선 이들이 앞으로 어떤 새로운 기록을 써 내려갈지, 그리고 '거제 야호' 밈이 어디까지 확산될지 대중문화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판소리와 포크의 만남…구례 가을밤 울린 ‘시인의 마을’

추임새와 박수가 이어졌다. 전통 판소리의 깊은 울림에 이어 익숙한 포크음악이 흐르자 관객들은 노래와 함께 호흡하며 구례의 가을밤을 즐겼다.지난 17일 밤 열린 구례 동편제소리축제에서는 지역 명창들의 판소리와 가수 정태춘·박은옥 부부의 공연이 한자리에서 펼쳐졌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전통 소리와 한국 대중음악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노래가 어우러지며 관객들에게 특별한 무대를 선사했다.이날 구례 명창들의 공연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끈 무대는 박정선 명창의 ‘적벽가’였다. 박 명창은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가 다급하게 달아나는 장면을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 힘 있는 소리로 풀어냈다. 긴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대목에서는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고, 관객들은 추임새와 박수로 소리꾼의 무대에 호응했다. 판소리 특유의 해학과 긴장감이 무대를 채우면서 관객들은 이야기 속 장면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몰입감을 느꼈다. 소리꾼의 목소리와 몸짓에 관객의 반응이 더해지며 공연은 무대 위에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객석과 함께 만들어지는 경험으로 이어졌다.공연의 분위기는 정태춘·박은옥 부부가 무대에 오르면서 또 한 번 달라졌다. 오랜 시간 삶과 시대의 이야기를 노래해 온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자 객석의 시선이 집중됐다. 대표곡 가운데 하나인 ‘시인의 마을’의 연주가 시작되자 관객석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노래의 첫 소절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반응에는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노래에 대한 반가움이 담겼다. 앞선 판소리 무대에서 추임새로 공연에 참여했던 관객들은 이번에는 익숙한 선율을 따라가며 노래가 전하는 감정에 집중했다. 한 곡의 노래가 오랜 세월 쌓인 기억을 불러내고, 무대와 객석 사이에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순간이었다.정태춘·박은옥은 ‘북한강에서’ 등 자신들의 노래를 들려주며 공연의 여운을 이어갔다. 화려한 무대 연출 속에서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결국 노래에 담긴 이야기와 이를 전하는 목소리였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다시 듣고 싶은 노래가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지자 객석은 박수로 화답했다.판소리와 포크음악은 표현 방식과 음악적 형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사람들의 삶과 시대를 이야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판소리는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을 소리와 이야기로 전해왔다. 정태춘·박은옥의 노래 역시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사회의 모습을 담아내며 청중과 소통해 왔다.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이 한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었던 이유다.구례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품은 지역으로, 동편제 판소리 문화가 이어져 온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지역 명창들의 전통 소리를 감상한 뒤 정태춘·박은옥의 노래를 만나는 구성은 이번 축제의 특별한 장면으로 남았다. 지역의 전통문화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가 한자리에서 만났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첨단 조명과 대형 LED 화면이 설치된 무대 위에서는 오래된 판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어 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을 담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전통과 현대를 구분하는 경계보다 서로 다른 음악이 관객에게 어떤 감동을 전하는지가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 무대였다.전통문화는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서만 의미를 찾는 것은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나고 새로운 장르와 어우러질 때, 전통은 또 다른 방식으로 생명력을 얻는다. 판소리의 추임새와 대중가요를 향한 박수가 같은 밤에 이어진 것은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구례 동편제소리축제의 가을밤은 그렇게 전통과 현대의 음악이 함께 만드는 공연장으로 변했다. 명창의 소리에 관객들은 “얼씨구”와 “좋다”를 외쳤고, ‘시인의 마을’이 시작되자 큰 박수로 화답했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장르에서 출발한 음악은 사람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통해 하나로 이어졌고, 관객들은 그 울림을 함께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