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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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서 만나는 '죽음의 요리' 전시 화제

 서울 강남의 번화가 한복판에서 현대 미술의 실험적 정신이 돋보이는 비엔날레급 기획전이 열려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지난 7월 1일 삼성로 지갤러리에서 막을 올린 'Faisandage 세계로 스며드는 죽음'은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3040 여성 작가 3인이 음식과 요리라는 일상적인 매개체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전시다. 이번 전시는 작가 우한나가 직접 기획을 맡아 동료인 최수진, 슈이 차오와 함께 위챗과 줌을 활용한 비대면 협업 끝에 완성한 신작들로 채워졌다. 단순한 미식의 즐거움을 넘어 소화와 변형, 그리고 죽음 이후의 순환을 다루는 총 32점의 작품은 상업 화랑에서 보기 드문 깊이 있는 담론을 형성한다.

 

전시의 핵심 키워드인 '페상다주(Faisandage)'는 사냥한 고기를 즉시 조리하지 않고 일정 기간 숙성시켜 풍미를 끌어올리는 프랑스의 고전 요리법에서 착안했다. 작가들은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조직의 분해와 변형을 단순한 부패가 아닌,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기 위한 필수적인 전환의 시간으로 해석한다. 이는 죽음을 끝이 아닌 또 다른 생명으로 이어지는 순환의 고리로 바라보는 예술적 통찰을 담고 있다. 전시장 입구에서 관객을 압도하는 최수진 작가의 거대한 패브릭 설치물 '밤을 통과하는 레시피'는 이러한 숙성의 시간을 시각화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최수진 작가는 가로 16m에 달하는 거즈 천 위에 염색과 바느질, 뜨개질을 결합해 새벽녘 안갯길을 걷는 듯한 몽환적인 풍경을 구현했다. 평소 캔버스 작업에 집중해온 작가가 처음으로 시도한 대형 설치 작업은 수면 장애를 겪으며 마주했던 밤의 시간들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결과물이다. 그에게 밤은 낮 동안 섭취한 음식물뿐만 아니라 복잡한 감정과 기억들을 삭이고 소화하는 내밀한 공간이다. 작가는 인공지능이 해독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문장을 바느질로 새겨 넣으며, 기계적인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 무의식의 영역을 섬세하게 펼쳐 보였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중국 작가 슈이 차오는 조개껍데기를 활용한 독특한 조각 시리즈를 통해 지구촌의 공존을 이야기한다. 고향 광저우에서 부모님이 보내준 말린 조개껍데기를 재료로 삼아 탄생시킨 혼종 생명체 'Sea Lung'은 이끼와 바다 달팽이가 뒤섞인 기이한 형상을 띠고 있다. 식탁 위의 식재료가 가족의 손길을 거쳐 예술 작품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물리적 거리를 넘어선 정서적 연결과 생태계의 순환을 상징한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 기묘한 생명체들은 국경과 종을 초월해 서로 스며들며 살아가는 현대 사회의 단면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전시장 중앙에 배치된 우한나 작가의 설치 작업 '키친(Kitchen)'은 이번 전시의 주제 의식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공간이다. 주방과 해적선을 결합한 듯한 이 무대에서는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가 뒤집히는 전복의 서사가 펼쳐진다. 나방이 천적인 박쥐를 요리하거나 생선의 혀에 기생하는 벌레의 생태를 다룬 작품들은 우리 사회의 권력 관계를 날카롭게 풍자한다. 작가는 자신의 신장 기형을 발견한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내장의 형상을 조각하며, 생존을 위해 타자를 섭취하고 소화해야만 하는 생명체의 잔혹하면서도 필연적인 운명을 주방이라는 일상적 공간으로 끌어들였다.

 

오는 7월 31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각과 거침없는 상상력이 결합하여 현대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시켜 준다. 요리라는 행위가 지닌 창조와 파괴의 이중성을 통해 죽음과 삶의 경계를 허무는 작가들의 시도는 관람객들에게 강렬한 시각적 경험과 함께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강남 도심 한가운데서 마주하는 이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만찬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식탁이 사실은 거대한 생명의 순환이 일어나는 우주적 공간임을 일깨워주며 성황리에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