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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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참사 뒤 캄보디아행, 이임생의 도피?

 한국 축구가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든 가운데, 대표팀 운영의 핵심축이었던 이임생 전 대한축구협회 기술이사가 돌연 해외 진출을 선언했다. 캄보디아 프로축구팀 나가월드FC는 지난 6일 이임생 전 이사를 구단의 기술 방향을 총괄하는 테크니컬 디렉터로 영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구단 측은 이 전 이사의 풍부한 지도자 경력과 아시아축구연맹에서의 활동 이력을 높이 평가하며 큰 기대감을 드러냈지만, 국내 축구계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한국 축구가 대대적인 인적 쇄신과 혼란에 빠진 시점에 핵심 관계자가 돌연 동남아시아행을 택한 것을 두고 '책임 회피성 이직'이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임생 전 이사는 2024년 당시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을 실질적으로 진두지휘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정해성 전 전력강화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 이후 전권을 위임받은 그는 홍 감독의 전술적 역량과 리더십이 한국 축구에 가장 적합하다며 선임을 강행했다. 특히 그는 한국인 감독도 외국인 감독에 준하는 고액 연봉과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워 파격적인 계약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선임 절차의 공정성을 둘러싼 의혹이 끊이지 않았고, 이는 결국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현안 질의로까지 이어지며 국민적인 공분을 샀다.

 


당시 국회에 출석했던 이 전 이사는 감독 선임 권한과 절차적 정당성을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국민적 눈높이와 동떨어진 답변으로 일관하며 비판의 표적이 됐다. 행정가로서 투명한 절차를 증명하기보다는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강변하는 데 급급했던 그의 태도는 축구 팬들에게 깊은 실망감을 안겼다. 이후에도 그는 공정성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공식 석상을 피하거나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않는 등 책임 있는 행정가와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였다. 이러한 불통의 행정은 결국 월드컵 본선에서의 경기력 저하와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연결되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북중미 월드컵 참사 이후 한국 축구는 정몽규 회장과 홍명보 감독이 동반 사퇴 의사를 밝히는 등 창립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다. 기술 행정의 수장이었던 이 전 이사 역시 성적 부진과 행정 실패에 대한 무거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위치였다. 그러나 그는 사태 수습과 반성 대신 별다른 설명도 없이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축구계 관계자들은 이번 이직이 국내에서 쏟아지는 비난 여론을 잠시 피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 축구의 근간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정작 원인을 제공한 인물은 해외로 떠나버린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나가월드FC는 이 전 이사가 한국과 싱가포르, 중국 등 다양한 무대에서 쌓은 경험이 구단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국내 전문가들은 이 전 이사가 한국 축구 행정에서 보여준 독단적인 의사결정과 불투명한 절차 준수 능력이 과연 해외 구단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지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국가대표팀 운영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던 인사가 실패에 대한 복기나 사과 없이 곧바로 타국 구단의 요직으로 옮겨가는 행태는 한국 축구 행정의 도덕적 해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지적이다.

 

결국 이임생 전 이사의 캄보디아행은 한국 축구 잔혹사의 마침표가 아닌, 또 다른 논란의 시작이 될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팬이 밤잠을 설치며 응원했던 월드컵이 허무하게 끝난 뒤, 그 실패를 책임져야 할 행정가는 멀리 떠나 새로운 출발을 자축하고 있다. 남겨진 한국 축구는 이제 무너진 행정 시스템을 처음부터 다시 세워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어야 한다. 책임지지 않는 권력이 남긴 상처는 고스란히 독자들과 축구 팬들의 몫으로 남게 되었으며, 이번 사태는 향후 축구협회 인적 구성에 있어 전문성만큼이나 책임 의식이 중요하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판소리와 포크의 만남…구례 가을밤 울린 ‘시인의 마을’

추임새와 박수가 이어졌다. 전통 판소리의 깊은 울림에 이어 익숙한 포크음악이 흐르자 관객들은 노래와 함께 호흡하며 구례의 가을밤을 즐겼다.지난 17일 밤 열린 구례 동편제소리축제에서는 지역 명창들의 판소리와 가수 정태춘·박은옥 부부의 공연이 한자리에서 펼쳐졌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전통 소리와 한국 대중음악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노래가 어우러지며 관객들에게 특별한 무대를 선사했다.이날 구례 명창들의 공연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끈 무대는 박정선 명창의 ‘적벽가’였다. 박 명창은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가 다급하게 달아나는 장면을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 힘 있는 소리로 풀어냈다. 긴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대목에서는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고, 관객들은 추임새와 박수로 소리꾼의 무대에 호응했다. 판소리 특유의 해학과 긴장감이 무대를 채우면서 관객들은 이야기 속 장면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몰입감을 느꼈다. 소리꾼의 목소리와 몸짓에 관객의 반응이 더해지며 공연은 무대 위에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객석과 함께 만들어지는 경험으로 이어졌다.공연의 분위기는 정태춘·박은옥 부부가 무대에 오르면서 또 한 번 달라졌다. 오랜 시간 삶과 시대의 이야기를 노래해 온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자 객석의 시선이 집중됐다. 대표곡 가운데 하나인 ‘시인의 마을’의 연주가 시작되자 관객석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노래의 첫 소절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반응에는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노래에 대한 반가움이 담겼다. 앞선 판소리 무대에서 추임새로 공연에 참여했던 관객들은 이번에는 익숙한 선율을 따라가며 노래가 전하는 감정에 집중했다. 한 곡의 노래가 오랜 세월 쌓인 기억을 불러내고, 무대와 객석 사이에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순간이었다.정태춘·박은옥은 ‘북한강에서’ 등 자신들의 노래를 들려주며 공연의 여운을 이어갔다. 화려한 무대 연출 속에서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결국 노래에 담긴 이야기와 이를 전하는 목소리였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다시 듣고 싶은 노래가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지자 객석은 박수로 화답했다.판소리와 포크음악은 표현 방식과 음악적 형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사람들의 삶과 시대를 이야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판소리는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을 소리와 이야기로 전해왔다. 정태춘·박은옥의 노래 역시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사회의 모습을 담아내며 청중과 소통해 왔다.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이 한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었던 이유다.구례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품은 지역으로, 동편제 판소리 문화가 이어져 온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지역 명창들의 전통 소리를 감상한 뒤 정태춘·박은옥의 노래를 만나는 구성은 이번 축제의 특별한 장면으로 남았다. 지역의 전통문화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가 한자리에서 만났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첨단 조명과 대형 LED 화면이 설치된 무대 위에서는 오래된 판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어 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을 담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전통과 현대를 구분하는 경계보다 서로 다른 음악이 관객에게 어떤 감동을 전하는지가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 무대였다.전통문화는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서만 의미를 찾는 것은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나고 새로운 장르와 어우러질 때, 전통은 또 다른 방식으로 생명력을 얻는다. 판소리의 추임새와 대중가요를 향한 박수가 같은 밤에 이어진 것은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구례 동편제소리축제의 가을밤은 그렇게 전통과 현대의 음악이 함께 만드는 공연장으로 변했다. 명창의 소리에 관객들은 “얼씨구”와 “좋다”를 외쳤고, ‘시인의 마을’이 시작되자 큰 박수로 화답했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장르에서 출발한 음악은 사람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통해 하나로 이어졌고, 관객들은 그 울림을 함께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