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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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세 김보미, 민주당 당대표 출마 선언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당권을 향한 경쟁이 뜨거워지는 가운데, 36세의 청년 정치인 김보미 후보가 당내 주류인 86세대를 향해 던진 직설적인 비판이 정치권에 거센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전남 강진군의회 의장 출신인 김 후보는 최근 열린 정견발표회에서 과거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었던 화염병과 짱돌을 언급하며, 해당 세대가 수십 년간 당의 의사결정 구조를 독점하고 있는 현실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의 발언은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며 세대교체를 열망하는 당원들의 지지를 끌어내고 있다.

 

김 후보는 만 28세에 기초의회에 입성해 최연소 의장까지 지낸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의정 활동 기간 전국 최초의 육아수당 조례 발의와 업무추진비 공개 등 혁신적인 행보로 주목받았으나, 그 과정에서 기득권 세력과의 마찰도 적지 않았다. 특히 의장 재임 시절 겪었던 관용차 압수수색 사건은 지역구 국회의원과의 갈등설과 맞물리며 청년 정치인이 겪는 현실적인 장벽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러한 경험은 그가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내 불공정 시스템을 고발하는 강력한 동력이 되었다.

 


이번 출마를 결행하며 김 후보는 현재의 민주당을 미래와 청년이 사라진 이른바 '5무(無) 정당'으로 규정했다. 그는 현역 의원이나 거대 조직의 뒷받침이 없는 13년 차 평당원임을 강조하면서도, 당을 살리기 위해서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을 내비쳤다. 특히 지난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 겪은 불투명한 감산 규정과 소명 기회조차 없는 경선 방식을 '블랙박스 사기'에 비유하며, 당원 주권이 구호에 그치고 있는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가장 화제가 된 대목은 86세대를 향한 용퇴 압박이다. 김 후보는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가치는 존중받아야 마땅하지만, 그것이 반세기에 가까운 정치 독점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인공지능(AI) 강국을 논하는 시대에 과거의 투쟁 방식에 매몰된 세대가 여전히 당의 주축으로 남아 있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당내 주류 세력의 인적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대변한 것으로, 전당대회의 핵심 쟁점으로 급부상했다.

 


그는 당권 경쟁자인 정청래 후보를 향해서도 지난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후보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며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김 후보는 인지도 부족에 따른 예비 경선 탈락 우려에 대해, 경쟁 당에서도 30대 당대표를 배출한 전례가 있음을 상기시켰다. 민주당이 청년에게 도전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면 혁신은 요원할 것이라며 당원들의 전략적이고 과감한 선택을 호소했다.

 

김보미 후보의 등장은 단순한 개인의 도전을 넘어 민주당 내 잠재되어 있던 세대 갈등과 시스템 개혁 요구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거대 계파의 지원 없이 오직 목소리 하나로 존재감을 드러낸 그의 행보는 향후 민주당의 인적 쇄신과 공천 개혁 논의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8월 전당대회를 향한 여정에서 김 후보가 보여줄 청년 정치의 파괴력이 어디까지 미칠지 정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