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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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학부모 손잡자 '역사 혐오' 설 자리 잃었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공립 처인고등학교 식당 앞 복도에 지난 20일 특별한 좌판이 꾸려졌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기억하고 부정 세력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된 이 자리에는 학생들의 정성이 담긴 팔찌들이 가지런히 놓였다. 이번 행사는 단순한 물건 판매를 넘어 학교와 학부모, 학생이 삼위일체가 되어 추진한 역사 프로젝트의 결실이었다. 학교는 팔찌 제작을 위한 재료를 지원했고, 학부모들은 직접 팔찌를 엮었으며,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배운 역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프로젝트의 의미를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을 맡았다.

 

행사장 주변은 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역사 학습 결과물로 가득 찼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기리는 삼행시부터 역사 부정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조사 보고서까지, 학생들의 깊은 고민이 담긴 작품들이 전시됐다. 특히 학생들은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역사 희화화나 혐오 표현에 대해 단호한 목소리를 냈다. 올바른 역사 교육을 받은 이들이라면 결코 타인의 고통을 조롱의 도구로 삼지 않을 것이라는 학생들의 강조는 현장을 찾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이끈 이정숙 역사 교사는 인권 교육의 연장선에서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 세계사와 동아시아사를 배우는 학생들과 함께 인권의 소중함을 공부하며, 그 마무리를 '위안부' 바로 알기 프로젝트로 장식한 것이다. 이 교사는 학생들이 단순히 교과서 속 지식을 암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자료를 조사하고 발표하며 몸소 역사를 느끼길 원했다. 이러한 실천적 교육은 학생들이 유튜브 등에서 무분별하게 유포되는 역사 왜곡 정보에 휘둘리지 않는 든든한 방어막이 되어주었다.

 

사실 한국 교육 현장에서 역사 교육은 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예민한 잣대 위에 놓여 있다. 많은 교사가 정상적인 수업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민원이나 오해를 우려해 민감한 현대사 교육을 축소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교사노조의 조사에 따르면 대다수의 교사가 정치적 편향성 논란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처인고의 학부모들은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며 교사의 전문성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지은 학부모회장은 역사 교육이 교사의 수업을 통해 완성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밝혔다. 교과서에 근거한 교육 활동에 대해 학부모가 민원을 제기하는 것은 월권이라는 지적이다. 이러한 학부모들의 지지는 교사가 소신 있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고, 지역 사회와 학교가 역사 인식을 공유하는 긍정적인 선례를 남겼다. 이날 팔찌 판매를 통해 얻은 수익금 전액은 정의기억연대에 기부되어 피해자들을 돕는 데 쓰일 예정이다.

 

처인고의 이번 행사는 역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혐오와 조롱이 만연한 시대에 학생들이 역사를 통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교사는 수업으로 길을 열고, 학부모는 신뢰로 그 길을 다졌으며, 학생들은 실천으로 그 길을 걸었다. 교육 공동체가 힘을 모아 역사 부정에 맞선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일회성 행사를 넘어, 올바른 역사 인식이 우리 사회의 존엄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힘임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은과 도자기의 충돌…운암산 가마터의 비극

규모의 분청사기 가마가 밀집해 있었으며, 이는 곧 일본군에게 거부할 수 없는 표적이 되었다. 흔히 임진왜란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개인적 야욕이나 내부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방편으로 이해하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당시 국제 경제의 패권을 쥐고 있던 '은'과 '도자기'를 둘러싼 거대한 충돌이 자리 잡고 있었다.당시 동북아시아의 경제 질서는 명나라를 중심으로 한 조공 무역 체제가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16세기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약탈하듯 캐낸 은은 유럽을 거쳐 명나라로 흘러 들어갔다. 명나라의 비단과 도자기는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최고의 사치품이었고, 은을 기축통화로 사용하던 명나라는 전 세계의 은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 역할을 했다. 세금조차 은으로 납부하게 했던 명나라의 경제 체제는 주변국들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이러한 명 중심의 독점적 무역 구도에 균열을 낸 것은 일본의 비약적인 은 생산량 증가였다. 1526년 일본 시네마현의 이와미 은광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일본은 단숨에 전 세계 은 생산량의 약 30%를 차지하는 은 강국으로 부상했다. 연간 20만kg에 달하는 은을 손에 쥔 일본은 이를 바탕으로 명나라 중심의 경제 질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명나라가 해금 정책을 통해 직접 교역을 통제하자, 일본은 무역로를 확보하고 경제적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한 돌파구로 전쟁을 선택했다.이 거대한 경제 전쟁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었던 것이 바로 도자기다. 당시 도자기는 단순한 그릇을 넘어 오늘날의 반도체와 같은 고부가가치 수출 품목이었다. 일본은 은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고품질의 도자기로 바꿀 기술력이 부족했다. 반면 조선은 고흥 운암산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세계 최고 수준의 분청사기 제작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일본이 임진왜란을 통해 수많은 도공을 납치하고 가마터를 파괴한 것은 경제적 부를 창출할 '기술 자본'을 확보하려는 치밀한 계산이었다.고흥 운암산 가마터는 이러한 비극적 역사의 산증인이다. 왜군은 남해안과 인접한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운암산의 분청사기 생산 기반을 철저히 유린했다. 이곳에서 생산되던 분청사기는 조선 특유의 소박하면서도 역동적인 미감을 갖추고 있어 일본 다도인들 사이에서 보물 대접을 받았다. 전쟁의 이면에 숨겨진 은과 도자기의 상관관계를 이해할 때, 고흥의 가마터가 왜 그토록 처참하게 파괴되고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오늘날 운암산 가마터에 대한 재조명은 임진왜란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한층 넓혀준다. 단순한 침략과 방어의 역사를 넘어,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국제 통화인 은을 매개로 충돌했던 거대한 경제사적 사건으로 전쟁을 재해석하게 한다. 고흥군은 현재 산재한 가마터 유적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그 가치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잊혔던 분청사기의 고향 운암산은 이제 400여 년 전 국제 정세의 파고를 증언하는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거듭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