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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주현 vs 김호영, 4년 만에 재점화된 '옥장판'

 뮤지컬 배우 옥주현이 4년 전 연예계를 뜨겁게 달궜던 이른바 '옥장판 논란'에 대해 입을 열며 당시의 억울함과 법적 대응의 비화를 공개했다. 지난 5일 팬들과 대화하던 중 옥주현은 그동안 잊고 지내려 노력했던 과거의 사건을 다시 언급하며, 논란의 당사자였던 김호영으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특히 상대측이 해당 게시물을 지인 부친의 사업 홍보용이었다고 해명한 것에 대해 여전히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며 오랜 시간 쌓여온 답답함을 토로했다.

 

옥주현이 당시 동료 배우를 상대로 강경한 법적 대응에 나섰던 배경에는 단순한 감정적 대립을 넘어선 현실적인 경영상의 문제가 얽혀 있었다. 그는 당시 체결했던 다이어트 유산균 광고가 논란 발생 불과 5일 만에 중단되는 위기를 맞았다고 회상했다. 만약 법적으로 자신의 무고함을 입증하지 못할 경우, 광고주 측에 계약금의 세 배에 달하는 막대한 위약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고소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한 유일하고도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털어놨다.

 


법적 분쟁은 옥주현이 고소를 취하하며 일단락되었으나, 그는 이 결정을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 중 하나로 꼽았다. 고소 취하 덕분에 개인적인 위약금 문제는 해결할 수 있었지만, 정작 해당 상품을 기획하고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었던 본사 측은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입게 되었기 때문이다. 옥주현은 자신을 믿고 계약했던 파트너사에 피해를 입혔다는 죄책감과 함께, 끝까지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사건을 덮어버린 것에 대해 깊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동안 옥주현은 자신의 공식 채널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정리해 올리고 싶은 유혹에 수없이 시달렸다고 고백했다. 몇 년 동안 가슴 속에 응어리진 갑갑함을 풀기 위해 대중에게 직접 진실을 알리려 했으나, 그때마다 그를 가장 아끼는 주변 지인들이 만류하며 사건이 확산되는 것을 막았다. 주변의 조언을 받아들여 침묵을 지켜왔지만, 그 사이 대중의 기억 속에는 진실보다는 '옥장판'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만이 남게 된 현실에 대해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논란 이후 옥주현에게 따라붙은 부정적인 별명들은 그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과거 긍정적인 의미로 쓰였던 별명들이 사라지고, 인맥 캐스팅 의혹을 상징하는 '옥장판'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된 것에 대해 그는 슬픈 심경을 남겼다. 뮤지컬계의 정상급 배우로서 쌓아온 커리어가 한순간의 오해와 저격성 게시물로 인해 희화화된 상황은 본인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음을 시사했다. 이번 고백은 단순한 해명을 넘어, 왜곡된 이미지를 바로잡고 싶어 하는 한 예술가의 절규와도 같았다.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2022년 뮤지컬 '엘리자벳' 10주년 공연 캐스팅 논란은 제작사의 해명과 법적 공방 끝에 표면적으로는 마무리된 상태다. 하지만 옥주현의 이번 발언으로 인해 연예계 내의 인맥 논란과 SNS를 통한 저격 문화,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막대한 상업적 피해에 대한 담론이 다시금 형성되고 있다. 옥주현은 고소를 취하했던 과거의 선택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이제라도 진실을 밝힘으로써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온 '옥장판'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