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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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성지인데… 건물 팔려 문 닫는 한강 서점

 대한민국 문학사의 새 지평을 연 소설가 한강의 손길이 닿은 공간이자, 수많은 독자에게 위로를 건넸던 독립서점 '책방오늘'이 7월 7일을 끝으로 영업을 종료했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 골목에서 손님들을 맞이한 지 정확히 3년이 되는 날에 내려진 결정이다. 서점 측은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양재동 시절부터 서촌에 이르기까지 책들과 함께하며 낭독회와 워크숍을 열었던 소중한 시간들을 회상하며, 정들었던 공간을 떠나게 된 소회를 전했다. 아시아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작가의 명성과 함께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서점이기에, 이곳의 폐업 소식은 국내외 문학 팬들에게 큰 충격과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2018년 서초구 양재동에서 첫발을 뗀 '책방오늘'은 2023년 지금의 서촌 자리로 이전하며 명맥을 이어왔다. 한강 작가는 평소 서점 매대에 놓일 책들을 직접 고르고 소개 글을 손수 작성하는 등 운영 전반에 깊은 애정을 쏟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직후에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한동안 임시 휴업을 결정해야 했을 만큼, 이곳은 단순한 서점을 넘어 작가와 독자가 교감하는 상징적인 장소로 자리 잡았다. 작가의 문학 세계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었던 유일한 오프라인 거점이 사라진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이번 폐업의 결정적인 원인은 서점이 입주해 있던 건물의 매매에 따른 것으로 파악된다. 역설적이게도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이후 서촌 일대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주변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했고, 이것이 오히려 서점의 존립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이른바 '노벨상 특수'가 불러온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작가 본인이 운영하던 문화 공간마저 밀어내는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문화적 자산이 상업적 논리에 의해 얼마나 쉽게 훼손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열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었지만 '책방오늘'이 지녔던 문화적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계절마다 '작가의 서가'를 기획해 숨겨진 양서들을 소개하고, 독자들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독립서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왔기 때문이다. 한강 작가의 수상을 기점으로 한국 문학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고조된 상황에서, 정작 그 발원지 중 하나였던 서점이 문을 닫게 된 현실은 국내 문화 인프라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서촌 골목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어우러졌던 서점의 불빛이 꺼지면서 지역 주민들과 단골 독자들은 상실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서점 측은 향후 영업 재개에 대한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는 않았다. 다만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할 장소와 시기는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고 밝혀, '책방오늘'을 다시 만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이후 대한민국 전역에 불었던 독서 열풍과 문학에 대한 열망을 고려할 때, 이러한 상징적인 공간이 지속 가능하도록 하는 사회적 지원이나 대책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다. 서점의 마지막 날을 지켜본 시민들은 작가의 다음 행보와 함께 서점이 다시 불을 밝힐 날을 기약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한강의 '책방오늘'이 남긴 궤적은 한국 현대 문학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과 맞닿아 있다. 비록 서촌의 물리적인 공간은 사라지지만, 그곳에서 책을 매개로 나누었던 수많은 대화와 작가가 직접 고른 문장들은 독자들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될 것이다. 이번 폐업 사태는 우리 사회가 소중한 문화적 거점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지에 대한 묵직한 과제를 던져주었다. 작가의 고뇌와 독자의 설렘이 교차하던 서촌의 작은 서점은 이제 하나의 전설이 되어, 다시 문을 열게 될 미래의 어느 날을 기약하며 긴 휴식에 들어갔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