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타임

정치타임

"활 쏘다 아파서" 김혜경 손 털기 조작 논란

 이재명 대통령 부부의 몽골 국빈 방문 과정에서 포착된 김혜경 여사의 특정 동작을 두고 여야가 '악의적 조작'과 '정당한 비판'이라는 극명한 입장 차를 보이며 정면충돌했다. 논란의 발단은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김 여사가 몽골 대통령과 악수한 직후 손을 터는 장면을 게시하며 외교적 무례라고 비판하면서 시작됐다. 주 의원은 김 여사가 국가의 격식과 예의를 망각한 채 대한민국 국격을 떨어뜨렸다고 맹비난하며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해당 영상이 전후 맥락을 의도적으로 잘라낸 가짜 뉴스라며 즉각적인 법적 대응을 선포하고 나섰다.

 

민주당 황명선 최고위원은 15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주 의원을 향해 국회의원인지 아니면 자극적인 이슈를 쫓는 사이버 레커인지 묻고 싶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황 최고위원은 당시 현장 원본 영상을 근거로 김 여사가 몽골 전통 활의 활시위를 당기려다 장력 때문에 손에 통증을 느껴 악수 전부터 손을 만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즉, 악수 직후 손을 흔든 것은 상대에 대한 결례가 아니라 활쏘기 체험 과정에서 발생한 신체적 통증 때문이었다는 취지다. 민주당은 주 의원이 이러한 사정을 알고도 악수 장면만 짜깁기해 유포한 것은 비열한 선동이라고 힐난했다.

 


실제로 당시 현장을 기록한 한국정책방송원의 전체 영상을 확인해 보면 김 여사의 동작에 대한 전후 사정이 명확히 드러난다. 영상 속 김 여사는 여러 차례 활시위를 당기려 시도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오른손을 두 차례 털며 통증을 가라앉히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 직후 후렐수흐 몽골 대통령이 악수를 청해오자 김 여사는 웃으며 화답한 뒤 다시 손을 서너 차례 흔들었다. 주 의원이 게시한 영상에는 악수 전 활쏘기 장면과 통증을 호소하는 모습이 빠져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 민주당의 주장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번 사건을 명백한 대국민 사기극으로 규정하고 주 의원에 대한 강력한 심판을 예고했다. 박해철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제1야당 의원이 기본적인 사실 확인조차 거치지 않고 허위 정보를 유포해 거짓 선동에 앞장섰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가짜뉴스 방지법을 통해 이러한 사이버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겠다며 주 의원에게 영상 삭제와 진심 어린 사과를 촉구했다. 당 차원에서는 주 의원의 행위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등에 해당한다고 보고 법적 절차를 밟기 위한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진우 의원 역시 민주당의 공세에 물러서지 않고 즉각 반박 입장문을 내며 전면전을 선포했다. 주 의원은 권력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법적 조치로 입막음하려는 시도야말로 독재의 시작이라며 민주당의 법적 대응 예고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오히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가짜뉴스 관련 입법이 국민의 입을 틀어막는 악법이라며, 16일 집단 헌법소송에 돌입하겠다고 맞불을 놓았다. 영부인의 외교 행보에 대한 평가를 조작 선동으로 몰아가는 것은 야당의 견제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의도라는 것이 주 의원 측의 주장이다.

 

몽골 국빈 방문의 성과를 알리려던 시점에 터져 나온 이번 '손 털기' 논란은 여야의 극한 대치 속에 진실 공방을 넘어선 정쟁의 도구가 되고 있다. 민주당은 영부인을 향한 악의적 프레임 씌우기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반면, 국민의힘은 공적인 자리에 있는 인물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한 비판은 자유로워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몽골 전통 축제의 현장에서 발생한 작은 해프닝이 한국 정치권의 가짜뉴스 공방과 표현의 자유 논쟁으로 번지면서, 향후 법적 다툼과 입법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은과 도자기의 충돌…운암산 가마터의 비극

규모의 분청사기 가마가 밀집해 있었으며, 이는 곧 일본군에게 거부할 수 없는 표적이 되었다. 흔히 임진왜란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개인적 야욕이나 내부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방편으로 이해하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당시 국제 경제의 패권을 쥐고 있던 '은'과 '도자기'를 둘러싼 거대한 충돌이 자리 잡고 있었다.당시 동북아시아의 경제 질서는 명나라를 중심으로 한 조공 무역 체제가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16세기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약탈하듯 캐낸 은은 유럽을 거쳐 명나라로 흘러 들어갔다. 명나라의 비단과 도자기는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최고의 사치품이었고, 은을 기축통화로 사용하던 명나라는 전 세계의 은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 역할을 했다. 세금조차 은으로 납부하게 했던 명나라의 경제 체제는 주변국들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이러한 명 중심의 독점적 무역 구도에 균열을 낸 것은 일본의 비약적인 은 생산량 증가였다. 1526년 일본 시네마현의 이와미 은광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일본은 단숨에 전 세계 은 생산량의 약 30%를 차지하는 은 강국으로 부상했다. 연간 20만kg에 달하는 은을 손에 쥔 일본은 이를 바탕으로 명나라 중심의 경제 질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명나라가 해금 정책을 통해 직접 교역을 통제하자, 일본은 무역로를 확보하고 경제적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한 돌파구로 전쟁을 선택했다.이 거대한 경제 전쟁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었던 것이 바로 도자기다. 당시 도자기는 단순한 그릇을 넘어 오늘날의 반도체와 같은 고부가가치 수출 품목이었다. 일본은 은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고품질의 도자기로 바꿀 기술력이 부족했다. 반면 조선은 고흥 운암산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세계 최고 수준의 분청사기 제작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일본이 임진왜란을 통해 수많은 도공을 납치하고 가마터를 파괴한 것은 경제적 부를 창출할 '기술 자본'을 확보하려는 치밀한 계산이었다.고흥 운암산 가마터는 이러한 비극적 역사의 산증인이다. 왜군은 남해안과 인접한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운암산의 분청사기 생산 기반을 철저히 유린했다. 이곳에서 생산되던 분청사기는 조선 특유의 소박하면서도 역동적인 미감을 갖추고 있어 일본 다도인들 사이에서 보물 대접을 받았다. 전쟁의 이면에 숨겨진 은과 도자기의 상관관계를 이해할 때, 고흥의 가마터가 왜 그토록 처참하게 파괴되고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오늘날 운암산 가마터에 대한 재조명은 임진왜란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한층 넓혀준다. 단순한 침략과 방어의 역사를 넘어,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국제 통화인 은을 매개로 충돌했던 거대한 경제사적 사건으로 전쟁을 재해석하게 한다. 고흥군은 현재 산재한 가마터 유적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그 가치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잊혔던 분청사기의 고향 운암산은 이제 400여 년 전 국제 정세의 파고를 증언하는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거듭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