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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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흉물 공사장, 시민 안전은 '각자도생'

 서울 중랑구 중화2동 주민센터 인근 보행로가 갑작스러운 지반 침하로 가로막히면서 주민들이 위험한 우회로로 내몰리고 있다. 지난 15일 새벽, 공사장 가장자리의 땅이 꺼졌다는 신고를 받은 경찰이 긴급 통제선을 설치했으나 사고 발생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민들은 가림막에 둘러싸인 좁은 차도 옆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하고 있다. 휠체어를 탄 노인이나 손수레를 끄는 상인들은 인도를 포기하고 차량이 지나다니는 도로로 내려서며 매일 아침 목숨을 건 통행을 이어가는 실정이다.

 

이번 사고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 곳은 2년 넘게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된 공동주택 건설 현장이다. 당초 청년주택으로 계획됐던 이 건물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난과 경매 절차 등이 겹치며 지하 구조물만 완성된 상태로 멈춰 섰다. 집중호우가 쏟아지자 공사장 내부에 고인 물을 배수하는 과정에서 배관 용량을 초과한 물이 주변 토사를 쓸어내려 지반 침하를 유발한 것으로 파악됐다. 도심 한복판에 흉물처럼 남겨진 방치 건축물이 결국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현장을 목격한 인근 상인들은 예견된 사고였다고 입을 모은다. 사고 당일 지하 2~3층 깊이까지 흙이 쓸려 내려간 모습을 본 주민들은 보도블록 아래가 텅 비어 있어 어린아이들이 빠질까 봐 가슴을 졸여야 했다. 20년 동안 이곳에서 장사해온 한 주민은 공사 중단 이후 도로가 조금씩 가라앉는 느낌을 받아왔는데, 이번 폭우로 그 위험이 눈에 띄게 커졌다고 증언했다. 주민들은 공사가 멈춘 만큼 관리 주체가 더욱 철저하게 현장을 살폈어야 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통계상으로도 이러한 위험 지대는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따르면 서울 내 공사 중단 건축물은 2022년 12곳에서 지난해 22곳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전국적으로도 360곳이 넘는 현장이 자금난이나 소송 문제로 멈춰 서 있다. 이들 중 상당수가 15년 이상 방치된 장기 방치 건축물로 분류되며, 대부분이 안전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건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도심 곳곳에 설치된 안전 펜스가 오히려 위험을 가두는 칸막이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건축주가 현장을 관리할 능력을 상실한 경우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마철과 같은 취약 시기에는 지자체가 중단된 현황을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정밀 안전 점검을 강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서울시가 관리하는 장기 방치 건축물 대부분이 안전조치명령 대상이라는 점은 관리 주체의 부재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단순히 펜스를 치고 모래주머니를 쌓는 임시방편만으로는 반복되는 지반 침하와 붕괴 위험을 막기에 역부족이다.

 

중랑구청은 이번 사고 구간에 대해 콘크리트 보강과 모래주머니 채우기 등 긴급 복구를 마쳤으나 주민들의 불안을 잠재우기엔 부족해 보인다. 구청 측은 향후 외부 전문위원과 함께 정기적인 특별 점검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자금난으로 멈춘 공사장이 전국적으로 속출하는 상황에서 행정력만으로 모든 현장을 촘촘히 관리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도심 속 방치된 공사 현장이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시한폭탄이 되지 않도록 보다 근본적인 정비 계획과 안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판소리와 포크의 만남…구례 가을밤 울린 ‘시인의 마을’

추임새와 박수가 이어졌다. 전통 판소리의 깊은 울림에 이어 익숙한 포크음악이 흐르자 관객들은 노래와 함께 호흡하며 구례의 가을밤을 즐겼다.지난 17일 밤 열린 구례 동편제소리축제에서는 지역 명창들의 판소리와 가수 정태춘·박은옥 부부의 공연이 한자리에서 펼쳐졌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전통 소리와 한국 대중음악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노래가 어우러지며 관객들에게 특별한 무대를 선사했다.이날 구례 명창들의 공연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끈 무대는 박정선 명창의 ‘적벽가’였다. 박 명창은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가 다급하게 달아나는 장면을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 힘 있는 소리로 풀어냈다. 긴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대목에서는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고, 관객들은 추임새와 박수로 소리꾼의 무대에 호응했다. 판소리 특유의 해학과 긴장감이 무대를 채우면서 관객들은 이야기 속 장면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몰입감을 느꼈다. 소리꾼의 목소리와 몸짓에 관객의 반응이 더해지며 공연은 무대 위에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객석과 함께 만들어지는 경험으로 이어졌다.공연의 분위기는 정태춘·박은옥 부부가 무대에 오르면서 또 한 번 달라졌다. 오랜 시간 삶과 시대의 이야기를 노래해 온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자 객석의 시선이 집중됐다. 대표곡 가운데 하나인 ‘시인의 마을’의 연주가 시작되자 관객석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노래의 첫 소절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반응에는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노래에 대한 반가움이 담겼다. 앞선 판소리 무대에서 추임새로 공연에 참여했던 관객들은 이번에는 익숙한 선율을 따라가며 노래가 전하는 감정에 집중했다. 한 곡의 노래가 오랜 세월 쌓인 기억을 불러내고, 무대와 객석 사이에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순간이었다.정태춘·박은옥은 ‘북한강에서’ 등 자신들의 노래를 들려주며 공연의 여운을 이어갔다. 화려한 무대 연출 속에서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결국 노래에 담긴 이야기와 이를 전하는 목소리였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다시 듣고 싶은 노래가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지자 객석은 박수로 화답했다.판소리와 포크음악은 표현 방식과 음악적 형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사람들의 삶과 시대를 이야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판소리는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을 소리와 이야기로 전해왔다. 정태춘·박은옥의 노래 역시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사회의 모습을 담아내며 청중과 소통해 왔다.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이 한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었던 이유다.구례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품은 지역으로, 동편제 판소리 문화가 이어져 온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지역 명창들의 전통 소리를 감상한 뒤 정태춘·박은옥의 노래를 만나는 구성은 이번 축제의 특별한 장면으로 남았다. 지역의 전통문화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가 한자리에서 만났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첨단 조명과 대형 LED 화면이 설치된 무대 위에서는 오래된 판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어 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을 담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전통과 현대를 구분하는 경계보다 서로 다른 음악이 관객에게 어떤 감동을 전하는지가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 무대였다.전통문화는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서만 의미를 찾는 것은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나고 새로운 장르와 어우러질 때, 전통은 또 다른 방식으로 생명력을 얻는다. 판소리의 추임새와 대중가요를 향한 박수가 같은 밤에 이어진 것은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구례 동편제소리축제의 가을밤은 그렇게 전통과 현대의 음악이 함께 만드는 공연장으로 변했다. 명창의 소리에 관객들은 “얼씨구”와 “좋다”를 외쳤고, ‘시인의 마을’이 시작되자 큰 박수로 화답했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장르에서 출발한 음악은 사람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통해 하나로 이어졌고, 관객들은 그 울림을 함께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