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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바오·후이바오, 한국서 마지막 생일잔치

 대한민국 최초의 쌍둥이 자이언트 판다 자매인 루이바오와 후이바오가 한국 땅에서 보내는 마지막 생일잔치를 열었다. 에버랜드 판다월드는 7일 오전, 세 돌을 맞이한 쌍둥이 자매를 축하하기 위해 특별한 생일 파티를 개최하고 국내 팬들과 함께 지난 3년간의 성장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행사는 자이언트 판다 소유권에 관한 국제 협약에 따라 만 4세가 되기 전 중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규정상, 한국에서 대중과 함께하는 사실상 마지막 생일 기념행사가 될 것으로 보여 현장의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이날 생일 파티에는 '판다 할아버지'로 불리는 강철원 주키퍼와 송영관 주키퍼가 참석해 자매를 위한 정성 어린 선물을 공개했다. 주키퍼들은 판다들이 가장 좋아하는 신선한 대나무를 엮어 만든 대형 3단 케이크를 준비했으며, 특히 송영관 주키퍼는 두 자매가 나란히 앉아 쉴 수 있도록 직접 제작한 나무 벤치를 선물해 감동을 더했다. 400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초청된 30여 명의 팬은 생일 축하 노래를 떼창하며, 갓 태어난 꼬물이었던 자매가 어느덧 80kg이 넘는 건강한 판다로 자라준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했다.

 


2023년 7월 7일, 엄마 아이바오와 아빠 러바오 사이에서 태어난 루이바오와 후이바오는 출생 당시 몸무게가 각각 180g과 140g에 불과할 정도로 가냘픈 상태였다. 하지만 에버랜드 사육팀의 헌신적인 관리와 국민적인 응원 속에 두 자매는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며 판다월드의 명실상부한 마스코트로 자리 잡았다. 큰언니 푸바오가 2024년 4월 중국 쓰촨성으로 떠날 때 겪었던 이별의 아픔을 기억하는 팬들은, 이제 루이바오와 후이바오에게도 다가올 이별의 시간을 준비하며 자매의 일거수일투족을 눈과 마음에 담으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에버랜드 측은 쌍둥이 자매의 반환 시점과 관련해 중국 측과 긴밀한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관계자는 판다들의 건강 상태와 적응 능력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가장 안전하고 적합한 시기에 이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 하겠다고 밝혔다. 푸바오의 사례를 비추어 볼 때 내년 상반기 중 이동이 유력시되는 만큼, 판다월드를 찾는 관람객들은 남은 시간 동안 쌍둥이 자매와의 추억을 쌓기 위해 평일에도 긴 대기 줄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자매의 이별 소식에 아쉬움이 크지만, 판다월드에는 새로운 생명의 기운도 가득하다. 지난달 3일 태어난 막내 아기 판다가 엄마 아이바오의 품에서 건강하게 자라며 팬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출생 당시 171g이었던 막내는 한 달 만에 몸무게가 7배 넘게 늘어나는 등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벌써부터 '포바오'나 '막내바오'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언니들의 뒤를 잇는 스타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현재 막내는 한국 주키퍼들과 중국 전문가들의 집중 관리를 받으며 내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

 

에버랜드의 판다 가족은 이별과 만남이 교차하는 드라마틱한 서사를 통해 단순한 동물 전시를 넘어 생명 존중과 보존의 가치를 대중에게 전달하고 있다. 루이바오와 후이바오가 한국에서 보낸 3년의 시간은 기록적인 흥행과 더불어 한중 문화 교류의 상징적인 장면들로 남게 되었다. 쌍둥이 자매가 중국으로 떠난 후에도 에버랜드의 체계적인 사육 시스템과 축적된 데이터는 향후 자이언트 판다의 종 보존 연구에 중요한 지표로 활용될 것으로 보이며, 팬들은 자매가 어디에 있든 건강하고 행복하기만을 기원하고 있다.

 

은과 도자기의 충돌…운암산 가마터의 비극

규모의 분청사기 가마가 밀집해 있었으며, 이는 곧 일본군에게 거부할 수 없는 표적이 되었다. 흔히 임진왜란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개인적 야욕이나 내부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방편으로 이해하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당시 국제 경제의 패권을 쥐고 있던 '은'과 '도자기'를 둘러싼 거대한 충돌이 자리 잡고 있었다.당시 동북아시아의 경제 질서는 명나라를 중심으로 한 조공 무역 체제가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16세기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약탈하듯 캐낸 은은 유럽을 거쳐 명나라로 흘러 들어갔다. 명나라의 비단과 도자기는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최고의 사치품이었고, 은을 기축통화로 사용하던 명나라는 전 세계의 은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 역할을 했다. 세금조차 은으로 납부하게 했던 명나라의 경제 체제는 주변국들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이러한 명 중심의 독점적 무역 구도에 균열을 낸 것은 일본의 비약적인 은 생산량 증가였다. 1526년 일본 시네마현의 이와미 은광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일본은 단숨에 전 세계 은 생산량의 약 30%를 차지하는 은 강국으로 부상했다. 연간 20만kg에 달하는 은을 손에 쥔 일본은 이를 바탕으로 명나라 중심의 경제 질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명나라가 해금 정책을 통해 직접 교역을 통제하자, 일본은 무역로를 확보하고 경제적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한 돌파구로 전쟁을 선택했다.이 거대한 경제 전쟁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었던 것이 바로 도자기다. 당시 도자기는 단순한 그릇을 넘어 오늘날의 반도체와 같은 고부가가치 수출 품목이었다. 일본은 은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고품질의 도자기로 바꿀 기술력이 부족했다. 반면 조선은 고흥 운암산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세계 최고 수준의 분청사기 제작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일본이 임진왜란을 통해 수많은 도공을 납치하고 가마터를 파괴한 것은 경제적 부를 창출할 '기술 자본'을 확보하려는 치밀한 계산이었다.고흥 운암산 가마터는 이러한 비극적 역사의 산증인이다. 왜군은 남해안과 인접한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운암산의 분청사기 생산 기반을 철저히 유린했다. 이곳에서 생산되던 분청사기는 조선 특유의 소박하면서도 역동적인 미감을 갖추고 있어 일본 다도인들 사이에서 보물 대접을 받았다. 전쟁의 이면에 숨겨진 은과 도자기의 상관관계를 이해할 때, 고흥의 가마터가 왜 그토록 처참하게 파괴되고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오늘날 운암산 가마터에 대한 재조명은 임진왜란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한층 넓혀준다. 단순한 침략과 방어의 역사를 넘어,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국제 통화인 은을 매개로 충돌했던 거대한 경제사적 사건으로 전쟁을 재해석하게 한다. 고흥군은 현재 산재한 가마터 유적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그 가치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잊혔던 분청사기의 고향 운암산은 이제 400여 년 전 국제 정세의 파고를 증언하는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거듭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