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사회/복지

가족이면 증거인멸도 무죄? 친족 특례 폐지론 확산

 "아무도 믿지마. 엄마가 구해줄게." 영화 '마더'의 포스터 속 이 문구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괴물이 되기를 자처하는 뒤틀린 가족애를 상징한다. 2026년 광주에서 벌어진 여고생 살해 사건은 이 영화적 상상이 현실의 공권력과 결탁했을 때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성폭행을 목적으로 여고생을 살해한 장윤기의 뒤에는 현직 경찰 간부인 그의 아버지가 있었다. 장 경감은 수사팀으로부터 아들의 자취방 비밀번호를 건네받아 범행의 결정적 증거인 리얼돌과 휴대전화를 폐기하며 아들을 구하기 위한 '괴물'이 되기를 선택했다.

 

사건 초기 장윤기는 우발적 범행을 주장하며 성범죄 의도를 부인했으나, 검찰의 보완 수사로 드러난 진실은 참혹했다. 차량에서는 결박용 케이블타이가 발견됐고, 자취방에서는 흉기로 훼손된 리얼돌이 나오며 치밀하게 계획된 성범죄임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경찰이 확보했어야 할 핵심 증거들은 장 경감의 손에 의해 이미 상당 부분 훼손된 상태였다. 현직 경찰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수사 정보를 사적으로 유용하고, 아들의 범죄 흔적을 지우는 데 앞장선 그의 행태는 국가 공권력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처참히 무너뜨렸다.

 


국민들을 더욱 분노케 하는 지점은 이토록 노골적인 수사 방해 행위가 처벌받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우리 형법 제155조 제4항, 이른바 '친족 특례' 조항은 가족이 범죄자를 위해 증거를 인멸한 경우 형사 책임을 묻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1953년 제정 당시부터 유지된 이 법은 자식을 감싸려는 부모의 본능을 국가가 강제로 막을 수 없다는 '기대가능성' 이론에 뿌리를 둔다. 법은 가족의 도리를 저버리면서까지 정의를 실현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는 취지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그 인륜의 방패가 공직자의 범죄 은폐 수단으로 전락했다.

 

실제로 과거 '파주 내연녀 살인사건'에서도 남편의 시신 유기를 도운 아내가 이 특례를 적용받아 증거인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은 전례가 있다. 법원은 배우자를 위한 행위라는 이유로 적극적인 증거 조작 가담조차 면책해 주었다. 그러나 장 경감의 사례는 일반적인 가족의 범위를 넘어선다. 수사 기관의 내부 정보를 이용해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한 행위까지 '인간의 본성'이라는 이름으로 덮어주는 것이 과연 현대 사회의 정의에 부합하느냐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피해자 유가족의 고통보다 가해자 가족의 본능을 우선시하는 법의 태도는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다.

 


해외 주요국들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법 정의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 훨씬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미국과 영국은 부모나 배우자라 할지라도 증거를 숨기거나 없애면 사법 방해죄로 처벌하는 것이 원칙이다. 독일 역시 우리처럼 일률적으로 면책하지 않고 범죄의 중대성에 따라 처벌 여부를 개별적으로 판단한다. 일본이 우리와 유사한 제도를 두고 있지만, 법원의 재량에 따라 면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친족 특례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관대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친족 특례 조항의 전면적인 재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살인이나 성범죄 등 강력 범죄에 대해서는 특례 적용을 제한하고, 공무원이 직무상 권한을 남용해 친족의 범죄를 도운 경우에는 가중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자식을 구하려던 영화 속 어머니의 광기는 슬픈 여운을 남겼지만, 공권력을 이용해 아들의 범죄를 덮으려 한 현실 속 경찰 아버지의 행위는 사법 체계의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법이 본능을 배려할 때, 그 배려가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의를 가로막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TV 없는 리조트, 뇌가 쉬는 '진짜 휴식'

뇌를 끊임없는 과부하 상태로 몰아넣는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최근 여행업계는 고요함을 상품화한 '콰이어트케이션'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영국 BBC가 올해의 핵심 여행 트렌드로 꼽은 개념으로, 외부의 자극을 최소화해 신체와 정신의 회복을 꾀하는 휴식 형태를 의미한다. 소음 노출이 심혈관 질환이나 수면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는 과학적 경고가 잇따르면서, 이제 조용한 휴식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치유 과정으로 인식되고 있다.국내에서는 강원도 홍천 종자산 자락에 위치한 웰니스 리조트 선마을이 이러한 흐름을 선도하고 있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리조트 전역에서 TV와 와이파이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의도적으로 디지털 소음을 차단함으로써 투숙객들이 온전히 자신의 내면과 자연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 실제로 선마을 내부의 소음도를 측정한 결과, 조용한 도서관 수준인 34.3dB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서울 주거지역의 평균 낮 소음도인 57dB보다 현저히 낮은 수치로, 소음 스트레스에 지친 뇌를 안정시키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선마을의 휴식은 기상 방식부터 남다르다. 자극적인 스마트폰 알람 소리에 의존해 억지로 잠에서 깨는 도심의 일상과 달리, 이곳에서는 객실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새소리가 알람 역할을 대신한다. 자연광을 통한 점진적인 기상은 신체의 스트레스 반응을 줄이고 생체리듬을 정상화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이 리조트 측의 설명이다. 인위적인 기계음이 사라진 자리를 자연의 소리가 채우면서, 투숙객들은 평소 인지하지 못했던 바람 소리와 숲의 숨결을 느끼며 깊은 이완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단순히 소음을 없애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심신 회복을 돕는 구체적인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숲길을 걸으며 청각적 감각을 깨우는 '숲 테라피'를 비롯해, 시청각 자극이 제한된 공간에서 싱잉볼의 진동에 몸을 맡기는 '싱잉볼 명상'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활동들은 도시 생활에서 잔뜩 긴장해 있던 교감신경을 안정시키고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해 깊은 휴식을 유도한다. 방문객들 사이에서는 스마트폰 알림이 사라지자 비로소 뇌가 쉬는 기분이 들었다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소음도는 세계보건기구가 권고하는 불쾌감 방지 기준인 50dB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이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심각한 불쾌감'을 유발하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청각 피로가 누적되면 집중력이 저하되고 정서적 불안감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콰이어트케이션은 단순한 관광의 형태를 넘어, 도시 소음으로부터 청각과 뇌를 보호하려는 현대인들의 방어 기제라고 볼 수 있다. 고요함 속에서의 하룻밤이 주는 회복 탄력성은 그 어떤 화려한 관광지에서의 경험보다 강력한 치유력을 발휘한다.결국 콰이어트케이션 트렌드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심각한 자극 과잉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인공적인 소리를 지워낸 공간에서 맞이하는 정적은 현대인들에게 가장 귀한 사치이자 보약이 되고 있다. 선마을과 같은 콰이어트케이션 명소들이 각광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채우는 여행이 아닌 비우는 여행을 통해 진정한 나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여름, 도심의 소음을 뒤로하고 숲속의 고요를 선택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여행의 패러다임은 '보는 것'에서 '듣지 않는 것'으로 진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