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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과 도자기의 충돌…운암산 가마터의 비극

 한반도 전역이 전란의 불길에 휩싸였던 16세기 말, 전남 고흥의 운암산은 왜군이 가장 탐냈던 전략적 요충지 중 하나였다. 해발 484m의 이 산자락에는 당시 조선 최대 규모의 분청사기 가마가 밀집해 있었으며, 이는 곧 일본군에게 거부할 수 없는 표적이 되었다. 흔히 임진왜란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개인적 야욕이나 내부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방편으로 이해하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당시 국제 경제의 패권을 쥐고 있던 '은'과 '도자기'를 둘러싼 거대한 충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동북아시아의 경제 질서는 명나라를 중심으로 한 조공 무역 체제가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16세기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약탈하듯 캐낸 은은 유럽을 거쳐 명나라로 흘러 들어갔다. 명나라의 비단과 도자기는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최고의 사치품이었고, 은을 기축통화로 사용하던 명나라는 전 세계의 은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 역할을 했다. 세금조차 은으로 납부하게 했던 명나라의 경제 체제는 주변국들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러한 명 중심의 독점적 무역 구도에 균열을 낸 것은 일본의 비약적인 은 생산량 증가였다. 1526년 일본 시네마현의 이와미 은광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일본은 단숨에 전 세계 은 생산량의 약 30%를 차지하는 은 강국으로 부상했다. 연간 20만kg에 달하는 은을 손에 쥔 일본은 이를 바탕으로 명나라 중심의 경제 질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명나라가 해금 정책을 통해 직접 교역을 통제하자, 일본은 무역로를 확보하고 경제적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한 돌파구로 전쟁을 선택했다.

 

이 거대한 경제 전쟁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었던 것이 바로 도자기다. 당시 도자기는 단순한 그릇을 넘어 오늘날의 반도체와 같은 고부가가치 수출 품목이었다. 일본은 은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고품질의 도자기로 바꿀 기술력이 부족했다. 반면 조선은 고흥 운암산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세계 최고 수준의 분청사기 제작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일본이 임진왜란을 통해 수많은 도공을 납치하고 가마터를 파괴한 것은 경제적 부를 창출할 '기술 자본'을 확보하려는 치밀한 계산이었다.

 


고흥 운암산 가마터는 이러한 비극적 역사의 산증인이다. 왜군은 남해안과 인접한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운암산의 분청사기 생산 기반을 철저히 유린했다. 이곳에서 생산되던 분청사기는 조선 특유의 소박하면서도 역동적인 미감을 갖추고 있어 일본 다도인들 사이에서 보물 대접을 받았다. 전쟁의 이면에 숨겨진 은과 도자기의 상관관계를 이해할 때, 고흥의 가마터가 왜 그토록 처참하게 파괴되고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

 

오늘날 운암산 가마터에 대한 재조명은 임진왜란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한층 넓혀준다. 단순한 침략과 방어의 역사를 넘어,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국제 통화인 은을 매개로 충돌했던 거대한 경제사적 사건으로 전쟁을 재해석하게 한다. 고흥군은 현재 산재한 가마터 유적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그 가치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잊혔던 분청사기의 고향 운암산은 이제 400여 년 전 국제 정세의 파고를 증언하는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1400년 묵은 동래온천이 다시 뜨겁다

온천 명소를 넘어 치유와 휴식을 즐기는 도심형 온천 여행지로 주목받고 있다.행정안전부는 부산 동래구 동래온천지구 일원을 온천도시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온천도시는 온천 관광과 관련 산업을 육성해 지역 발전과 경제 활성화를 이끌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앞서 충북 충주와 충남 아산, 경남 창녕이 온천도시로 지정됐으며, 동래온천은 전국 네 번째 사례가 됐다.동래온천은 삼국시대 신라 때부터 이용된 것으로 전해지는 유서 깊은 온천이다. 약 1400년의 역사를 품고 있으며, 부산을 대표하는 온천 명소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 특히 최고 70.3℃에 이르는 고온의 실리카 온천수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경남 창녕 부곡온천의 78℃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여행지로서의 가장 큰 장점은 접근성이다. 동래온천지구는 부산 지하철 1·3·4호선과 동해남부선 등 광역 교통망을 갖춘 도심형 온천지다. 부산 시민은 물론 외지 여행객도 대중교통으로 쉽게 찾을 수 있다. 온천장과 숙박시설, 상업시설이 밀집해 있어 하루 일정은 물론 부산 여행 코스에 넣기에도 부담이 적다. 연간 이용객은 약 200만명에 달한다.이번 지정은 동래온천이 가진 온천 자원과 도심형 관광지로서의 성장 가능성이 반영된 결과다. 행안부는 지난 8월 동래구가 제출한 온천도시 계획서를 바탕으로 현장 실사와 전문가 심사를 진행했다. 심사 과정에서 우수한 온천 자원, 편리한 접근성, 주변 관광자원과 연계한 발전 전략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동래구는 앞으로 온천을 단순히 목욕하는 공간이 아니라 치유와 휴식, 체험이 결합된 여행 콘텐츠로 키울 계획이다. 금정산 국립공원 등 주변 관광자원과 온천을 연결하고, 복합 치유 거점인 ‘온천치유원’을 조성해 전문적인 수중 치유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도심 속에서 온천을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는 ‘온천복합체험시설’도 마련한다.지역 상권과 연계한 관광 콘텐츠도 확대된다. ‘동래온천장’ 브랜드를 활용한 특화 상품을 개발하고, ‘동래 온천축제’를 열어 관광객 유입을 늘린다는 구상이다. 온천을 즐긴 뒤 주변 음식점과 카페, 전통시장, 숙박시설로 발걸음이 이어지도록 해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다.동래온천은 뜨거운 온천수와 오랜 역사, 도심 접근성을 모두 갖춘 부산의 대표 온천 여행지다. 이번 온천도시 지정으로 동래온천지구는 ‘잠깐 들르는 목욕 명소’에서 ‘머물며 쉬는 온천 관광지’로 한 단계 더 확장될 전망이다.